【 청년일보 】 고위공직자에게 주식은 3천만원이라는 엄격한 ‘윤리 장벽’이 존재하지만, 정작 자산의 핵심인 부동산은 20년 넘게 규제의 성역으로 남아있다.
정책 입안자와 서민 간의 자산 괴리가 5배에 달한다는 통계가 ‘공정성’ 화두를 다시 던진 가운데, 국회가 실거주 목적 외 부동산의 처분을 강제하는 입법 카드를 꺼내 들었다.
'공직 윤리 확립'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사유재산권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가 2025년 연말, 다시금 날 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 "내 집은 20억, 국민은 4억"...'자산 괴리'가 키운 정책 불신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이 지난 1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 소속 고위공직자 28명의 신고 부동산 재산은 1인당 평균 20억3천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국민 평균 부동산 자산(4억2천만원)의 4.87배에 달하는 수치다.
특히 조사 대상 중 28.57%인 8명은 2주택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였으며, 서울에 주택을 보유한 12명 중 4명은 해당 주택을 전세 임대하고 있어 실거주 목적이 아닌 투기성 보유(갭투자) 의혹까지 제기됐다.
정부가 대출 규제 등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고위공직자들은 '똘똘한 한 채' 혹은 '다주택'으로 자산을 불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경실련은 "고위공직자들이 강남 4구 등 가격 급등 지역 아파트를 보유한 채 집값 안정 대책을 내놓는다면 정책 신뢰도를 담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 신정훈 위원장 "실거주 외엔 팔거나 맡겨라"... 21대 이어 재발의
이러한 불공정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국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국회 행정안전위원장과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11일 실거주 목적 이외의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도록 하는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 대표 발의했다.
일명 '부동산 백지신탁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고위공직자가 보유한 부동산의 직무 관련성을 심사해, 관련성이 인정되면 실거주 주택을 제외한 나머지 부동산을 의무적으로 매각하거나 신탁하게 하는 것이 골자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3천만원을 초과하는 직무 관련 주식에 대해서만 매각 또는 백지신탁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부동산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개발 정보를 다루는 공직자가 부동산 투기로 사익을 취해도 사전에 막을 장치가 부족했다.
이번 개정안은 21대 국회 당시 폐기된 법안들의 한계를 보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처럼 무조건적인 매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직무 관련성 심사'를 선행하도록 하여, 실제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재산권을 제한하도록 설계했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적용 대상을 대폭 넓혔다.
기존에는 주로 고위공직자나 국토부 일부 공무원에 국한됐던 백지신탁 의무 대상을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 소속 공무원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및 지방공사 직원까지 확대해 부동산 투기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취지다.
신 의원은 "부동산은 투기 대상이 아니라 안정적 주거와 생활의 필수재로 인식되어야 한다"라며 "이런 인식 변화가 공직사회에서부터 시작될 때 비로소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높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부동산으로 이익을 보는 공직자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요구에 국회가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재산권 침해' 반론 넘을까...형평성 논란이 관건
쟁점은 '재산권 침해' 논란을 어떻게 불식시키느냐다.
반대 측에서는 부동산은 주식과 달리 환금성이 떨어져 단기간에 강제 매각할 경우 막대한 손해를 볼 수 있고, 헌법상 보장된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벽에 부딪혀 법안이 폐기된 바 있다.
하지만 찬성 측은 '주식과의 형평성'을 강조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식 보유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공직 투명성을 위해 엄격히 제한하는 것처럼, 한국 가계 자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부동산 역시 동일한 윤리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미국 등 선진국이 운영 중인 '블라인드 트러스트(Blind Trust)' 제도 역시 자산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도 근거로 꼽힌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위헌 논란을 넘어 현실적인 부작용을 우려했다.
직무와 무관한 부동산까지 매각을 강제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헌법상 보장된 '공무담임권'을 사실상 제약해 유능한 민간 전문가들의 공직 진입 자체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공직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충분히 감수해야 할 제한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법무법인 '공정'의 황보윤 대표변호사는 "공직자는 일반 국민과 달리 국가와 '특별권력관계(특수신분관계)'에 있어 공익을 위해 일반인보다 더 높은 수준의 기본권 제한이 용인될 수 있다"며 "긴 안목으로 보면 부동산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진정성 있는 인재가 공직을 맡게 되어 정책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이번 개정안이 '부동산 공화국'의 오명을 벗고 공직 사회의 무너진 신뢰를 다시 세우는 '시금석'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