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년일보 】 노년의 삶은 인간 생애의 마지막 챕터이자, 가장 섬세하고 존중받아야 할 시기다. 우리는 이 시기를 어떻게 맞이하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품위는 물론, 사회의 품격이 결정된다. 고령화가 전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지금, 요양시설의 존재 이유와 본질적 가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요양시설을 단순히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이 ‘머무는 공간’으로만 이해한다. 이는 과거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형성된 기능 중심의 시설 개념에서 비롯된 시각이다. 그러나 오늘날 요양시설은 단순한 보호 공간을 넘어, 노년의 삶을 존중하고 품격 있게 완성해가는 복지의 종합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현대 복지 선진국에서는 이미 요양시설의 기능이 ‘생활의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북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요양시설이 지역 커뮤니티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어르신들이 일상 속에서 여가와 자율성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된다. 미국의 일부 장기요양 모델은 노인 중심의 ‘소규모 가정형 시설(Green House Model)’을 도입하여, 정서적 안정과 자기결정권을 존중받는 생활 환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사례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하나다. 요양시설은 돌봄의 종착지가 아니라, 삶의 연속선상에 놓인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입소자들은 여전히 생각하고 배우며 교류하는 존재이며, 시설은 그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
요양시설이 ‘사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삶의 질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시설의 역할은 단순히 위생과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어르신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맞춤형 생활 지원은 요양시설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영국의 일부 시설은 입소자의 삶의 이력과 취향을 반영한 '개인 서사 기반 케어 플랜'을 적용해, 돌봄을 넘어선 일상 회복을 실현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관계 회복을 위한 구조 설계도 중요하다. 일본의 복지 선진 도시들은 지역민과의 교류, 가족 참여, 세대 간 소통이 가능한 개방형 공간을 통해 요양시설을 지역사회와 연결된 삶의 장으로 재편하고 있다.
요양 종사자의 복지와 전문성 확보 역시 핵심이다. 독일은 요양보호사를 하나의 전문직으로 인정하며, 직업 안정성과 복지 체계를 국가 차원에서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돌봄을 넘어 전문성과 자긍심을 갖는 기반이 된다.
요양시설의 진정한 변화는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인식 전환에서 시작된다. 노년은 소멸의 시간이 아니라, 여전히 성장하고 관계를 맺으며 자신을 실현해나갈 수 있는 ‘또 하나의 인생’이다. 요양시설은 이러한 가능성을 품어내는 공간이 되어야 하며, 이는 모든 세대가 함께 꿈꿀 수 있는 미래의 공동체 모델이기도 하다.
더 이상 요양시설은 ‘이별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누군가의 오늘이 흐르고, 삶의 존엄과 가치가 매 순간 존중받는 ‘살아가는 공간’이다. 머무는 곳이 아니라, 삶이 다시 피어나는 무대다.
지금 우리가 요양시설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면, 그 변화는 머지않아 우리 모두의 내일을 더 따뜻하고 단단하게 감싸줄 것이다.
글 / 장석영 (주)효벤트 대표
동탄 재활요양원 대표
효벤트 (창업 요양원/창업 주간보호센터) 대표
효벤트 웰스 대표
김포대학교 사회복지전공 외래교수
숭실사이버대학교 요양복지학과 외래교수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치매케어 강사
사회복지연구소 인권 강사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 노년학 박사과정
경기도 촉탁의사협의체 위원
치매케어학회 이사
대한치매협회 화성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