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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교원들, 사교육업체에 시험문항 제작판매…'관리 부실'에 불신우려

감사원, '문항 거래' 수사·고발 올해 56명 요청
수능 23번 문항 포함…입시 제도 '신뢰도' 훼손
평가원 '검증 부실'·정부 '관리 부실'도 '도마위'

 

【 청년일보 】 사교육 업체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 및 검토에 관여한 교원들에게 돈을 지급한 사실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더 광범위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크나큰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이러한 활동에 참여한 교원들은 동료들을 모집해 모의고사 문항을 제작하고, 이를 사교육 업체에 판매하는 등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사태는 지난 30년간 공정성을 강조해 온 수능 시험의 신뢰도에 대한 타격을 예상케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공개된 이후, 수능 시험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으며, 교육 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들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부터 3개월간 실시한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 실태 점검' 감사 결과, 교원과 학원 관계자 등 56명을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배임수증재 혐의로 경찰에 수사 요청했다고 11일 밝혔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부터 연쇄된 영리 활동에 대한 제보를 받아들여, 사교육 업체와 관련된 현직 교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이 조사에서 수능 및 모의고사 출제에 관여한 4명은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됐다.


수능 및 모의고사 출제 후 사교육 업체에 문제를 판매한 22명(2명 중복)은 청탁금지법 및 '비밀유지의무 위반'으로 수사 의뢰됐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수사 대상자는 교육부 발표보다 30명 이상 많은 인원이 수사 대상으로 지목됐다. 이는 사교육 시장 내에서의 부정행위가 예상보다 훨씬 더 넓게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조사 결과로 현직 교사들의 '문항 거래'에 대한 의심이 높아졌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유명 강사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면서 문항을 구매해 교재를 제작했다고 주장했지만, 감사 결과는 일부 교사가 문항 제작 조직을 직접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수능 및 모의평가 검토위원으로 활동한 고교 교사 A씨는 출제 합숙 중에 8명의 교사를 모아 문항 공급 조직을 구성했으며, 이를 통해 6억6천만원의 금액을 받았다. 또한, 다른 고교 교사 B씨는 배우자가 소유한 출판업체를 이용해 교사 및 학교 교사 등 35명을 섭외해 문항 제작진을 구성했으며, 3년간 18억9천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번 감사 결과로, 1994년 도입된 대학 입시 제도의 신뢰도가 훼손됐다. 2023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수능) 영어 문항이 대형 입시학원에서 유명한 강사들이 제작한 모의고사와 EBS 수능 교재의 감수본과 동일한 것으로 확인돼, 사교육 산업의 부정적 영향이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2023년 1월에 출간 예정이었던 EBS 수능 교재에는 고교 교사인 C씨가 2022년 3월에 출제한 문항인 'Too Much Information'(TMI)이라는 지문이 포함돼 있었다. 대학 교수인 D씨는 2022년 8월에 해당 EBS 교재의 감수를 하면서 TMI 지문을 접했고, 이후 2023년도 수능 영어 출제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를 무단으로 사용해 수능 23번 문항으로 출제했다.


D씨는 EBS의 보안 서약서를 위반해 교재 집필 중 알게 된 정보를 유출했으나, 논란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또한, 모의고사 제작자인 유명 강사인 E씨는 TMI 지문의 원 출제자와 친분이 있는 교사인 F씨를 통해 TMI 지문으로 만든 문항을 받아 9월 말 모의고사로 발간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능 문제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대학 수능 및 EBS 교재의 경력이 있는 교사들과의 거래를 통해 문제가 '적중'된 문제집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C씨와 F씨 사이에서 문제가 공유된 구체적인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더구나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배경에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검증 부실' 또한 문제가 됐다.


평가원은 2021년도와 2022년도 수능에서는 중복 검증을 위해 E씨 모의고사를 계속 구매했지만, 2023년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구매하지 않아 사설 모의고사에 나온 문제를 걸러내지 못했다. 게다가 수능 이후 해당 문항과 관련한 이의 신청이 다수 접수됐음에도 불구하고, 평가원은 해당 문항에 대한 이의 심사를 하지 않았다.


평가원 담당자들은 "지문이 같아도 문제 유형이 다르면 시중 기출문제와 동일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등의 판정 기준을 유리하게 해석해 해당 문항을 이의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이와 같은 문제가 제기되기 전까지 평가원은 판박이 지문 논란에 대해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는 해명만을 내놓았다.

 

 

한편 교육부는 사교육 업체와의 부적절한 거래 등 중대한 비윤리적 행위가 확인된 교원들에 대해 강력한 징계를 요구할 계획이다. 더불어, 입시 부정행위에 가담한 교원들에 대한 징계 시효를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을 추진한다.


또한, 입시 관련 부정행위에 대한 양정 기준을 신설하는 '교육공무원 징계양정에 관한 규칙' 개정안도 3월 중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그러면서 교육부는 "지난해 말 '교원의 사교육업체 관련 겸직 허가 가이드라인'을 발표, 현직 교사가 입시학원에서 돈을 받고 강의하거나 모의고사 문항을 만드는 행위를 일절 금지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수능 출제와 관련해서는, 제기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올해 6월 수능 모의평가부터 적용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예방책이 미리 선행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관행이 진작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근절 노력도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부터 사교육 업체와 현직 교사 간의 부정 거래를 신고할 수 있는 사교육 카르텔 신고 센터를 통해 접수되고 있지만, 교육부는 이전까지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관행이 언제부터 시작됐고,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파악은 여전히 미지수다. 감사원 감사 결과 역시 '빙산의 일각'일 수 있는 셈이다.


또한, 지난해 제기된 수능 영어 23번 문제와 관련해서도 사교육 카르텔 신고 센터에 신고가 이어지자, 지난해 7월에야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사교육 업체는 몸을 낮춘 채 관망하는 모양새다. 사교육 업체는 정부의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현직 교원들로부터 문항을 사들이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에 최대한 따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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