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광복절은 과거의 해방을 기념하는 날이자, 청년의 이름으로 시대의 무게를 짊어진 이들을 기억하는 날이다.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 모두 20~30대 청년이었다. 학업과 생업, 가족을 뒤로한 채 독립이라는 더 큰 목표를 위해 삶을 걸었다. 1932년 4월,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 폭음이 울렸다. 윤봉길 의사는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죽는다"는 신념으로 물통모양의 폭탄을 던졌다. 당시 나이 24세였다. 물통모양의 폭탄은 흔히 도시락 폭탄으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매헌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에서 제공된 윤의사 판결문에는 손에 들었던 도시락형 수류탄을 땅에 두고 어깨에 메고 있던 물통형 수류탄을 벗어 그 발화용 끈을 당기는 동시에 단상 근처로 돌진해 단상 좌측 후방으로부터 단상을 겨냥해 수류탄을 투척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봉창 의사는 일본 천황을 향해 거사를 벌였을 때 31세였고,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역에서 "꼬레아 우라(대한제국 만세)"를 외치며 30세에 방아쇠를 당겼다. 그들의 나이를 떠올리면, 오늘날 청년이 인생의 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시기가 과거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청년은 총칼과 제국주의 앞에 서 있지 않다. 그러나 불
【 청년일보 】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어느 날 문득, 혼잣말처럼 툭 튀어나온 이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 한 잔으로 버티며 공부하고, 일과 후에는 영어나 자격증 강의를 듣는다. 때로는 공모전에 도전하고, 운 좋게 인턴을 경험하기도 하는 것이 청년들의 보편화된 일상이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려왔건만, 여전히 내 자리가 어딘지 모르겠다. 그 순간 마음속에 스며드는 감정. 바로 '현타: 현실 자각 타임'이다. '현타'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그것은 청년들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가장 절박한 신호로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다. 열심히 노력했고, 포기하지 않고 달려왔으며, 묵묵히 버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리걸음을 걷는 듯한 감각, 혹은 뒤로 미끄러지는 듯한 불안감 속에서 청년은 "나 지금, 괜찮은 걸까?"라고 묻는다. 이러한 감정은 단순한 개인의 무력감이 아니라, 제도적 경직성과 무관심을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많은 청년들은 "정책은 많은 것 같지만, 내 삶엔 별다른 변화가 없어요"라고 입을 모은다. 창업 지원금, 월세 보조, 심리 상담, 일경험 프로그램 등 목록은 길지만, 그 안에 청년의 삶의 리듬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은
【 청년일보 】 우리는 종종 어떤 사람이 '실력보다 과소평가받고 있다'거나 '운이 좋아서 과대평가받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이는 단지 개인의 역량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이며, 대부분 그 진정한 원인은 종종 그 사람이 처한 환경에 있다. 인간은 고정된 존재 같지만, 그 가치와 평가는 그를 둘러싼 맥락과 구조, 다시 말해 환경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는 간단한 비유가 있다. 한 캔의 음료가 슈퍼마켓에서는 1천원, 일반 식당에서는 2천원,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5천원에 판매된다. 음료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 음료가 놓인 장소, 즉 환경이 가격을 변화시킨다. 소비자는 단순히 음료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의미, 경험까지 함께 소비하는 것이다. 이 원리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를 받게 된다. 특히 지금의 청년 세대는 이 차이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다양한 재능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은 턱없이 부족하다. 높은 집값, 불안정한 고용, 끝없는 경쟁, 학벌 중심 사회,
【 청년일보 】 "대학 졸업 후 뭘 하고 있니?" 일상적인 안부처럼 건네지는 이 질문은, 때로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청년들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처럼 내려앉게 한다. 졸업과 동시에 당연하게 여겨지는 취업, 안정적인 결혼생활, 번듯한 내 집 마련이라는 '정답'의 기준 앞에서, 잠시 멈춰 서거나 다른 길을 걷는 청년들은 불안감과 함께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야 할 때가 많다. 과연 이 사회는 청년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온전히 믿고 있는 걸까? 아니면, 획일적인 틀 안에서 청년들을 평가하고 재단하려 하는 것은 아닐까?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흔히 '청년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청년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기보다는 정해진 시스템 안으로 '관리'하려는 시도가 더 많았던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게 된다. 청년은 그저 보호받고 지원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능동적 주체다.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다. 학벌이라는 단단한 갑옷, 성별이라는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 획일화된 진로라는 좁은 문, 외모라는 또 다른 평가 기준,
【 청년일보 】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희망의 상징으로 통했다. 배경이나 조건이 부족해도 노력과 실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세대를 초월해 청년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곤 했다. 그러나 2020년대 중반, 청년들은 이 말을 점점 현실과 동떨어진 문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평등한 구조, 계층 고착,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과연 오늘날 청년들이 '용'이 될 수 있는 토양은 남아 있는가? 현대 사회는 자산의 대물림 구조가 고착화 되어가고 있다. 수도권의 높은 집값, 과열된 사교육 시장, 취업 준비에 필요한 각종 스펙과 비용은 청년 개인의 의지만으로 극복하기 힘든 벽이다. 특히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청년이 어린시절부터 경험할 수 있는 교육, 문화, 네트워크의 수준이 갈린다는 점에서 출발선 자체가 불공정하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그저 아름다운 용어로 밖에 들릴 수밖에 없다.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높고, 안정된 일자리의 수는 정체되어 있다. 반면 창업이나 도전을 시도하기엔 사회 안전망이 부실하다. 실패에 대한 사회적·경제적 재도전 기회가 적기 때문에, 오히려 청년들은 더 안정적인 길인 공무원 시험, 대기업, 공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