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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조희연 교육감 공수처 불똥?···"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격"

공수처 수사 1호 사건, 권력형 비리 아닌 직권남용···기소권도 없어
권력의 부정부패 척결해야 하지만 국민은 '검찰 무력화' 원치 않아

 

【 청년일보 】 지난 1월 20일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세 곳 모두에서 업무 지휘를 받지 않는다. 국회, 대법원, 청와대로부터 독립돼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더불어 사실상의 준(準)헌법기관이다.

 

출발점은 지난 1996년이다. 당시 참여연대가 부패방지법 제정을 위한 입법운동 과정에서 기존 공직자윤리법의 보완과 함께 부패 수사를 전담하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의 도입을 주장한 것이다. 그해 12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의원 7명이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의 설치를 포함한 부패방지법을 발의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공직비리수사처'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불발됐다. 김대중 정부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폐지하고 공직비리수사처를 신설할 계획이었지만 검찰의 반발로 무위에 그친 것이다. 결국 지난 2001년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가 제외된 부패방지법만 최종적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공약으로 '공직부패수사처'를 제시하고, 2004년 9월에는 '공직부패수사처의 설치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공직부패수사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실패 요인으로 야당은 물론 여당 국회의원도 거론했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기 어려운 것이 정치인이라서 그런지 행정자치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이 미적미적 심의를 미뤘다는 것이다.

 

공수처는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개혁 공약 1호이기도 하다. 2012년 대선에 이어 2017년 대선에서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다. 공수처에 대한 관심은 자서전 '운명'에서도 엿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정수석을 두 번 하면서 끝내지 못한 일, 그래서 아쉬움으로 남는 일"이라고 말한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 공직비리수사처 → 공직부패수사처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으로 명칭이 바뀌는 동안 내용도 변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공수처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노무현 정부의 공수처는 수사권만 있고 기소권은 없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공수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는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을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이라고 비난하면서 지속적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를 주장해 왔다. 그럼에도 공수처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부여했다. 그토록 비난하던 검찰보다 더 큰 무소불위의 권력을 만들어 낸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공수처는 수사한 사건이 무혐의라고 하더라도 이를 지체없이 관할 검찰청에 송치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는 검찰이 공수처에 대한 통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한마디로 검찰과 공수처가 '수사의 올바름'을 경쟁하며 상호 견제토록 한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공수처는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인지한 경우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 특히 공수처가 이첩을 요구할 경우 이에 응해야 한다. 권력기관의 총량을 증가시키는 옥상옥(屋上屋)이란 비판과 함께 수사 지휘 등에서 갈등이 빚어질 여지를 만든 것이다. 

 

더구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2월 야당의 거부권(비토권)을 무력화 시키는 내용의 공수처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지난 2019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공수처법에 정치색을 잔뜩 입힌 것이다. 

 

기존 공수처법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 7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찬성해야 최종 후보 2명을 추천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후보 추천 과정에서 잇따라 충돌한 더불어민주당은 ‘6명 이상’을 ‘재적 위원 3분의 2 이상', 즉 5명 이상으로 고쳤다.

이로써 야당 측 추천위원 2명의 비토권이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야당 몫 추천위원 2명이 동시에 반대해도 여당 몫 추천위원 2명과 법무장관ㆍ법원행정처장ㆍ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등 당연직 추천위원 3명의 찬성으로 최종 후보를 의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수처법 개정안은 특히 '국회의장이 10일 이내의 기한을 정해 후보 추천을 요청하면 교섭단체는 응해야 한다'는 조항도 추가해 야당의 지연 전술을 사전에 차단했다. 공수처 검사의 자격 요건도 변호사 자격 10년에서 7년으로 문턱을 낮췄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어떤 견제도 없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공수처장 후보를 임명할 수 있다.

 

공수처는 독립된 준헌법기관이다. 하지만 공수처장은 후보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2명의 후보 가운데 대통령이 지명한다. 초대 공수처장에는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 헌법연구원이 임명됐지만 정치에 휘둘리기 쉬운 구조여서 중립성과 공정성이 최대 화두가 됐다. '정권의 홍위병'이 될 수 있다는 의혹이 따라다니고 있는 것이다.  

 

실제 김진욱 공수처장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황제 조사' 논란으로 불신을 키웠다. 피의자인 이성윤 지검장에게 자신의 관용차를 내주는 것은 물론 면담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황제 조사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허위 보도자료를 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특히 수사는 검찰이 하되 기소 여부는 공수처가 판단하겠다는 '공소권 유보부 이첩' 개념도 만들어 냈다. 이로 인해 울산시장 선거 공작과 청와대 개입 의혹,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 등 정권에 부담이 되는 사건은 모두 공수처에서 틀어쥐고 결국 유야무야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공수처 수사 1호 사건이 정치권과 법조계는 물론 국민의 관심을 모은 것은 바로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이는 공수처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결정짓는 것은 물론 중립성과 공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지난 10일 수사 1호 사건으로 점찍은 것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전교조 해직 교사 특별채용 의혹이다. 조희연 교육감은 지난 201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자신을 도운 전교조 출신 해직 교사 5명을 부당하게 채용한 혐의로 지난달 23일 감사원으로부터 고발됐다.

 

감사원은 조희연 교육감을 경찰에 고발하면서 공수처에도 수사 관련 참고자료를 보냈다. 사건을 맡은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4일 조희연 교육감 사건을 공수처에 넘겼다. 당시 경찰은 "공수처의 요청으로 공수처법에 따라 이첩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수사하면 될 일을 공수처가 억지로 넘겨 받은 셈이다. 

 

조희연 교육감은 당초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공수처는 국가공무원법 위반이 자체 수사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 범죄에 해당하지 않아 직권남용 혐의로 입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 검사, 경무관 이상 의 경찰공무원과는 달리 교육감에 대해서는 공수처의 기소권이 없다는 점도 변수다. 공수처가 수사를 하더라도 기소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검찰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여론은 부정적이다. 조희연 교육감 사건이 검찰개혁이란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고 출범한 공수처의 수사 1호 사건이 될 만큼 비중 있느냐는 것이다. 법리적으로도 직권남용 성립을 둘러싼 논란이지 권력형 비리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검찰 등 다른 수사기관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정치적 부담이 덜한 사건을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전형적인 눈치보기 수사이자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것이다.

 

공수처는 논의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권력의 비리를 파헤치는 것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정작 검찰이 이 같은 역할을 하려고 하자 아예 검찰의 칼을 빼앗는 차원으로 변질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80석 의석의 독주(獨走)가 위력을 발휘한 셈인데,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검수완박'이라는 말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막상 만들어 놓은 문재인 정부의 공수처는 정권 의도와는 다소 결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공수처가 상징성이 큰 첫 수사 대상으로 진보진영 인사의 신상 의혹을 택한 것에 여권 인사들이 13일 일제히 비난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표현이 현재의 여권 분위기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은 권력형 비리의 척결을 원하지만 정권 보위용 사법체계는 원치 않는다. 국민은 검찰개혁을 지지하지만 법무장관 등을 통한 검찰 무력화는 방관하지 않는다. 공수처도 마찬가지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도끼 날을 만든 자와 벼린 자가 있겠지만 정작 도끼 날이 누구의 발등을 찍을지는 모르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얘기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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