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로 대변되는 청년 주거문제는 경제적 자립 기반이 취약한 청년층이 직면해야할 현실로 지난한 청년의 삶에 격랑을 만들고 있다. 한 사람의 청년으로서 그 삶의 과정에서 풍파와 맞서 온 '민달팽이유니온' 지수 위원장을 통해 청년주거문제의 함의와 시사점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上) "청년 주거불평등 해소"...연대 통한 '살권리' 회복
(中) "집=자산 공식 타파"...주거정책 패러다임 전환 촉구
(下) "새정부 주거정책, 공공부지 사유화 우려"...'도시 공공성' 담보 필요
【 청년일보 】 누구나 한 채씩 집을 가지고 있는 달팽이 세계에서 집 없이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세상을 누비는 달팽이가 있다. 바로 집이 없는 '민달팽이'다.
최근 청년세대의 주거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주거 문제에 직면한 청년계층을 집 없이 세상을 정처해야 하는 '민달팽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특히, 경제적 자립 기반이 취약한 청년층에서 이 같은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흔히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로 대표되는 이 같은 청년세대의 주거문제가 본격적으로 제도권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 2016년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재임했던 시기다. 박 시장은 당해 3월 '역세권 2030청년주택(이하 역세권청년주택)'을 시작으로 청년주거문제를 정책적인 차원의 궤도로 올려놓은 바 있다.
이를 시작으로 이른바 '청년주거문제'는 정권이 교체되면서 현시점에서도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다양한 정책적 입안도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과정 속에서 '청년주거문제'를 제도권에서의 논의 주제로 올려 놓기 위해 장시간 힘을 쏟으며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투구해온 단체와 인물이 있다.
집이 없는 '청년 민달팽이'들의 주거권 보장과 불평등 완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민달팽이유니온'과 지수 위원장이다.
◆최근 '청년'이 각종 아젠다의 중심적인 대상으로 자리매김 하면서 각종 이슈가 생성, 논의되고 있다. 지수 위원장은 그 중 어떤 계기로 하필 '청년주거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가?
청년일보가 만나본 민달팽이유니온 지수 위원장은 그 스스로도 '주거불안'을 겪은 직접적인 당사자라고 소개하며 말문을 열었다.
지수 위원장은 "나 자신이 주거불안을 경험해보며, '내가 겪고 있는 주거불안이 온전히 개인 차원의 문제는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 사건들을 겪었다"며 자신이 청년주거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전했다.
그는 "먼저 '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 청년들이 주거정책을 직접 제안하고, 청년층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의하는 공론장에서 활동하며 경험한 사안이 주요했다"면서 "이곳에 참여하며 개인의 문제가 모여 사회의 문제로 자리하게 된다는 점과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바꿔 나가며 개인 차원에서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언급했다.
이어 지수 위원장은 "두번째로는 나 자신이 일반적인 청년이 가지고 있는 금액으로는 굉장히 작고 '희한한 집'들에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도 한몫 했다"며 "이 때문에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갈지'를 고민하던 찰나, 민달팽이유니온에서 운영하는 '달팽이집'에 입주하며 서울에서 살 수 있게 됐다는 점도 개인적인 계기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여기에 지수 위원장은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집값 고공행진' 현상 역시 활동의 주된 원인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서울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집값’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사회초년생 등 청년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며 "왜 이렇게 집값이 납득할 수 없는 수준으로 상승하는지, 부담가능한 주거비로 사람이 살만 한 공간을 얻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민달팽이유니온"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실질적인 당사자인 청년들이 모여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어 저렴한 집을 운용하고, 또 그곳에 직접 살며 효능감도 느끼고, 이 같은 시스템이 사회에 많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 청년주거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고 부연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2014년부터 '달팽이집'이라는 주거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달팽이집은 공공과 함께 협동조합을 통해 건물을 임대하고, 여기에 저렴한 임대료로 청년들이 장기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자체적인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지수 위원장의 설명이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최근 청년주거문제를 다루는 다양한 공론장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정파와 무관하게 정치권과도 자주 접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활동으로 민달팽이유니온이 궁극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와 가치는 무엇인가?
민달팽이유니온은 단체가 성취해야 할 '미션'으로 '주거권 보장'과 ‘주거 불평등 완화’를 제시하고 있다. 지수 위원장 역시 이러한 큰 두가지 '미션'이 민달팽이유니온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종착점이라며 운을 뗐다.
이같은 맥락에서 그는 "한국에서는 사람들에게 모두 동등한 주거권이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당연하듯' 여겨지는 현상이 자주 목격된다"면서 "예를 들어 세입자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임대인으로부터 선약도 없이 마음대로 집에 출입하겠다는 말을 매우 흔히 듣는다"고 말하며, 이에 세입자가 반박할 경우 "내 집을 내가 왜 못가느냐"는 고압적인 핀잔을 듣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토로했다.
아울러 지수 위원장은 "이러한 예시처럼 한국 사회에서의 '세입자의 권리' 실현은 먼 꿈"이라면서 "한국 사회는 오히려 세입자가 겪는 불평등 사례의 해소책으로 "열심히 벌어 집을 사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라"는 목표를 제시해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집을 소유하고 있든 아니든, 그 장소에 실제로 살고 있는 세입자의 권리는 그 자체로 보장되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수 위원장은 청년세대가 겪는 구조적인 '주거 불평등' 문제 역시 청년주거 문제를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간 '노동 소득격차'로 계급차이를 설명해왔다면, 전세계적으로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주거 불평등 역시 심화되고 있다"면서 "흔히 '세습 중산층'이나 '아파트 계급사회'와 같은 단어가 이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주거 불평등'은 결국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격차에 기인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청년 세대 안에서 하위 20%와 상위 20%의 소득격차는 6.5배지만, 자산격차는 35배에 이른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지수 위원장은 "이 같은 상황에서 돈을 덜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공간'에서 사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현상 자체가 이미 '구조적 불평등'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아울러 그는 "돈이 없어 민간임대주택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거주요건을 갖춘 곳에서 살수 있도록 공공임대주택을 20% 수준까지 늘리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면서 "민달팽이유니온은 국가가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거주권을 보장해주기 위한 노력을 촉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구상해 당국에 제의하고, 자체적으로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