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현대자동차 노사가 8년 만에 파업 없이 임금 및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을 도출한 데는 한일 경제 갈등 등 시국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노조는 비상시국에 파업한다는 비난 여론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고, 회사 역시 파업 시 브랜드 이미지 하락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집중교섭 마지막 날인 지난 27일 합의에 이르렀다.
노사는 지난 7년간 끌었던 통상임금 소송과 연계한 임금체계 개편에도 합의하는 성과를 냈다.
노조는 올해 교섭에서 파업권을 획득했으나 파업 결정을 두 차례 유보하고 교섭에 힘을 쏟았다.
현 노조 집행부 성향이 강성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례적으로 관례적 파업에서 벗어난 것이다.
노조는 추석 전 집중교섭에 돌입하면서 일본의 백색 국가(화이트 리스트) 배제 등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에 따른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비상시국에 파업했다가 국민적 비판 여론에 부딪혀 노사 모두에 악영향이 생길 것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사가 이번 교섭에서 채택한 '상생협력을 통한 자동차산업 발전 노사 공동선언문'에는 올해 교섭에서 노사가 느낀 위기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노사는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과 최근 무역 갈등, 보호주의 확산 등 대내외 상황 심각성에 노사가 인식을 같이하고 부품 협력사와 동반성장, 기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마련됐다.
특히, 자동차 관련 첨단 부품 국산화를 통해 최고 품질 차량을 적기에 공급하자는 뜻을 담았다.
950억원 규모 상생협력 운영자금 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협력사 운영과 연구개발을 지원해 첨단 부품 소재 산업 육성과 국산화에 나선다.
회사는 이와 별도로 지난해 2·3차 협력사 1천290개 업체에 상생협력 기금 500억원을 지원한 데 이어 올해도 1000억 규모 저리 대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올해 교섭이 속도는 낸 것은 노조 내부 사정과도 연관이 있다.
노조는 올해 말 집행부 선거를 앞두고 있어 추석 전 타결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사실상 선거 준비 단계로 넘어가 교섭 자체가 다음 집행부로 넘어갈 가능성도 제기됐다.
노사의 대내외 상황이 맞물리면서 무분규 잠정합의안 도출이 가능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노조는 "최근 벌어진 일본 정부의 경제 도발과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GSOMIA·지소미아) 폐기 결정 대응 등 한일 경제전쟁이 이후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리라는 것도 잠정합의에 이르게 한 요소였다"고 밝혔다.
노조는 "불확실한 정치와 경제 상황을 심사숙고해 사회적 고립을 탈피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잠정합의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올해 교섭에선 임금 인상뿐만 아니라 통상임금 문제와 연계한 임금체계 개편이 쟁점이었다.
통상임금 문제는 노조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한다며 2013년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2015년 1월 1심에서 '고정성 결여'를 이유로 노조가 패소했고, 같은 해 11월 2심에서도 항소가 기각됐다.
노조가 상고해 대법원에 계류 중이지만 앞선 판결을 볼 때 노조가 최종 승소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회사는 이와 별도로 최저임금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올해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으로 최저임금 산정 기준이 되는 소정근로시간이 기존 174시간(법원 판단 기준)에서 209시간으로 늘어나면서 직원 시급이 9195원에서 7655원으로 낮아지게 돼 최저임금을 위반한 처지가 된 것이다.
노사 각자 부담을 안으면서 통상임금과 최저임금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임금체계 개편 필요성이 제기됐다.
노사는 현재 두 달에 한 번씩 나눠주는 상여금 일부(기본급의 600%)를 매월 나눠주고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안을 만들었다.
이 방식으로 최저임금 논란과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하고 조합원들에겐 임금체계 개선에 따른 미래 임금 경쟁력 및 법적 안정성 확보 격려금을 근속기간에 따라 200만∼600만원+우리사주 15주를 지급하기로 했다.
노조는 오는 9월 2일 전체 조합원 대상으로 잠정합의안 찬반 투표를 벌인다.
【 청년일보=신화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