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나를 다시 시작하게 해준 곳이고, 내가 만들어 가고 싶은 곳" -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후기 중 발췌.
최근 자립 준비 청년과 고립·은둔 청년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자립 준비 청년은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보호받다가 성인이 돼 자립해야 하는 청년들을 말한다. 이들은 보호가 종료된 후 갑작스레 사회적·경제적 부담을 떠안게 되는데, 충분한 사회적 지지나 경제적 지원 없이 자립해야 하기 때문에 고립감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고립청년은 물리적, 정서적으로 타인과 관계망이 단절됐거나 외로움 등의 이유로 일정 기간 고립상태인 청년을 의미한다. 은둔청년은 집 안에서만 지내며 사회와의 교류를 끊고, 최근 6개월 이상 직업이나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청년을 말한다. 사회에서는 이 두 가지 집단을 아울러 '고립·은둔 청년'이라 부른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의 '2023 자립지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립 준비 청년은 약 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지난 2022년 서울시가 발표한 '고립·은둔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청년 중 고립·은둔 청년비율은 4.5%(고립 3.3%, 은둔 1.2%)로, 이는 서울 청년 인구에 대입하면 최대 12만9천여명, 전국적으로는 약 54만명에 이르는 수치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들의 자립과 공생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의 김옥란 센터장을 만나 자립 준비 청년과 고립·은둔 청년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청년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사회적 고립·은둔 청년 지원 나서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는 자립 준비 청년과 고립·은둔 청년 등 사회적으로 위기에 놓인 청년들을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로 보고, 공동체 생활을 통해 공생과 나눔을 배우며 건강하게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이다.
지난 2003년부터 지금까지 김현일·김옥란 부부는 가족이 없거나 여러 사정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립 준비 청년(보호종료아동), 고립 청년과 함께 생활하며 자립을 도왔다. 그러나 취업 불안과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청년들의 우울과 불안이 깊어졌고, 2010년 이후 사회적으로 고립된 청년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바나바하우스'라는 청년 그룹홈을 만들었다.
센터 설립배경에 대해 김 센터장은 "청년들이 수개월에서 길게는 10년 넘게 사회활동 없이 지내, 이들의 취업을 위해 여러 방법으로 구직과정을 도왔지만, 내적인 회복 없이는 사회와 경제활동이 어려웠다. 오히려 실패와 좌절만 반복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에 고립된 청년들이 건강하게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내적 회복을 돕고, 자립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며, 함께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취지로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를 설립했다"고 덧붙였다.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의 이름 또한 센터의 설립 취지를 내포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푸른고래는 물 위로 올라와 호흡해야 하는데, 아프거나 어린 고래가 떠오르지 못하면 다른 고래가 도와준다. 우리 센터도 고립된 청년들이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자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말했다.
고립·은둔 청년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고립·은둔 실태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들이 고립·은둔 상태에 빠진 주요 원인은 대인관계(27%), 가족관계(18.4%), 폭력·괴롭힘(15.4%), 학업(13.0%), 취업(9.1%) 순으로 나타났다. 20대 청년들은 취업(24.1%)과 대인관계(23.5%) 문제가 주 원인이었다.
이에 김 센터장은 "고립·은둔의 원인으로 10대 때부터 이어온 정서, 대인관계를 먼저 주목해야 한다"며 "20대에 조사했지만 대부분 원인이 10대에 발생한 만큼, 근본적으로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고립·은둔 청년들이 병원을 찾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로 병원 치료가 필요하지만, 취업 문제나 타인의 시선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고립된 청년들의 마음을 열다"...다양한 지원 프로그램 운영 및 성공사례 다수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는 청년들에게 사회와 연결될 기회를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공동생활로 고립된 환경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루틴을 형성하며, 수면과 식습관을 바로잡고, 야구단, 러닝, 요가, 산책 등을 통해 신체 건강을 회복하도록 돕고 있다. 또한 예술활동, 미술치료, 심리상담을 통해 정서적 건강을, 자조모임, 쿠킹런치,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관계 건강 회복을 돕고 있다.
이외에도 견학, 글쓰기, 사회봉사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지적 건강을 회복하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대표적으로 전시회, 영화 상영회, 야구단 운영 등을 통해 청년들이 사회에 다시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김 센터장은 "우리들끼리 그림을 그렸으면 전시회를 하고, 단편 영화를 만들면 영화 상영관을 빌려 상영회도 하고, 10월 마지막 주에는 항상 제주도에 가서 야구 전지훈련도 하면서 세상과 연결할 수 있는 통로를 본인 혼자 힘으로는 어려우니 이것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외부로 연결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김 센터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으로 야구단을 꼽았다.
그는 "야구는 협동과 배려, 예의를 지키고 때로는 인내와 희생이 필요한 운동"이라며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연습을 할 때는 항상 주변을 살펴야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 시선이 넓어지고, 내적 불안감과 두려움들도 점차 해소된다. 이 점에서 야구가 프로그램에 큰 의미를 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야구 프로그램을 하면서 캐치볼을 할 때, 공을 주고받으면서 내 무력감, 우울감, 불안감, 두려움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상대방의 두려움도 내가 잘 받아들이는 과정에 의미를 둔다"고 전했다.
야구공은 내 두려움이 담긴 딱딱한 공과 같지만, 내가 이 두려움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고, 상대방의 두려움을 내가 잘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이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 센터장은 "이 과정에 가끔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드럽게 공을 던지는 법을 가르쳐 주며, 내 감정을 상대방이 잘 받을 수 있도록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방망이를 휘둘러 공을 맞히는 경험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내 두려움을 날려버리는 방법을 배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센터는 공동생활을 통해 청년들이 하루 일상 루틴을 회복하고, 자기 관리를 시작하며 사회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고립된 환경에서 벗어난 새로운 생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회복한 청년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센터장은 "게임 속에서만 3년을 보냈던 청년이 약 1년반째 센터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편식을 하던 친구였지만, 이제는 완전히 자립해 쿠킹런치 코치로 일하고 있다"며 "현재는 자신도 다른 청년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회복지 상담심리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생활은 24시간 함께 지내다 보니 이 친구들의 습관, 버릇, 장점 등을 서로 알게 되고 일상의 루틴이 형성됐다. 그러면서 이들 스스로 의지를 가지게 되고, 조금씩 발전해 나간다"고 공동생활의 장점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공동생활은 1년 동안 이루어지며, 필요에 따라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다. 실제로 5년까지 거주한 청년도 있었다"며 "청년들의 자립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생을 배우는 것"이라며 "공동생활이 끝나도 친구들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 "보육원 퇴소 후 어려움 겪는 청년들 많아"...자립 준비 청년 위한 셰어하우스 지원
자립 준비 청년은 24세까지 시설에 머물 수 있지만, 퇴소 후에는 외부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김 센터장은 "보육원에 있는 동안 현금을 다뤄본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퇴소할 때 몇백만원의 큰 돈을 받지만, 그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즉시 필요한 것들을 사다 보면 금세 돈을 탕진하기도 하고, 사기에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며 독립적인 생활을 원해도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에 리커버리센터는 강원도 춘천 지역에 여성 자립 준비 청년을 위한 셰어하우스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다.
보증금과 임차료 없이 관리비와 공과금만 부담하면 되는 이 셰어하우스는, 거주 기간 동안 저축을 통해 자립을 준비할 여성 자립 준비 청년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김 센터장은 "본인이 저축을 해서 안정된 집으로 이사할 때까지, 1년이든 3년이든 거주 기한은 정해져 있지 않다"며 "춘천 지역에서 활동 중인 봉사자들이 저희와 연결돼 입주자들의 안전, 취업, 멘토링 등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외 고립·은둔 청년들이 제주도에서 일정 기간 공동생활을 하며 점진적으로 회복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제주 리커버리 하우스'도 모집 중이다.
김 센터장은 "쿠킹런치, 야구, 요가, 기지개모임 등 리커버리센터만이 할 수 있는 특색있는 프로그램을 모두 적용하고, 제주도 현지에서만 가능한 수영, 낚시, 올레길 걷기, 스노쿨링 등 레저 프로그램 등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중 올레길을 완주하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고립·은둔 청년들을 위해 제주 올레길 완주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현재 제주에 있는 친구들이 먼저 걷고 가이드가 되기 위해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걷고 있다"고 덧붙였다.
◆ "사회적 약자는 누구나 될 수 있어"...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 개선 필요해
김 센터장은 고립·은둔 청년들에 대한 실태조사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실상 추측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이러한 실태조사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되는데, 정작 고립·은둔 청년들은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조사 문항들에 대한 답변이 어렵고 고립감이 심한 힘겨운 경우에는 참여하다가 중단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돈되지 않고, 지난해까지는 지자체 몇곳에서만 진행했으며 지원사업 역시 단기간에 그치는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올해 서울시와 복지부가 고립·은둔 청년 지원에 나섰지만 장기적으로 청년의 고립문제가 중장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지속가능한 지원이 중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아동이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보호자가 없거나 폭력에 노출된 아동은 보호해야 하듯, 20대가 돼도 마찬가지다.
김 센터장은 "사회적 약자는 누구나 될 수 있으며, 청년 시기에 회복이 이루어져야 건강한 중장년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는 센터 내 청년들의 회복·자립뿐만 아니라, 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크루들로 하여금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뜻깊은 곳이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서 김 센터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센터 내 청년들의 후기 중 하나로 '나를 다시 시작하게 해준 곳이고,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곳이다'라는 문장을 꼽으며 "이를 읽고 나니 그 동안의 고생과 수고가 모두 잊혀지고 행복으로 가득 찼다"며 미소를 지었다.
【 청년일보=권하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