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년일보 】최근 국내 한 중견기업과 대기업간 구리를 얇게 만든 막, 일명 ‘동박’을 생산하기 위한 생산공장 설립을 둘러싼 갈등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해당 중견기업이 국내 최초로 오랜 기간 쌓아온 노하우로 동박 개발 국산화에 성공, 주력사업으로 성장시키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해당 중소기업 공장이 위치한 근접거리에 대규모 신설 공장 설립 계획을 추진하면서 양사간 극심한 마찰을 빚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전형적인 전횡이 답습된 사례라며 비난이 빗발치는 등 논란이 적지않자 정치권까지 나서 진위여부 파악에 나서는 등 논란이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 '동박사업' 성장세에...일진측 공장 바로 옆에 신규공장 설립 추진한 SK넥실리스
13일 정치권 등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일진그룹의 소재계열사인 일진머티리얼즈와 SK그룹의 화학계열사인 SKC 간 동박(銅箔·Copper Foil) 사업을 두고 극심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동박이란, 구리를 얇게 만든 막(膜)으로, 배터리 음극재를 구성하는 핵심소재다. 고도의 공정제어 기술과 설비 경쟁력을 기반으로 얇고 넓고 균일한 표면의 구리 호일을 길게 만드는 것이 핵심으로, 일진측은 오랜기간 쌓아온 노하우로 국산화 개발에 성공했다.

일진측 관계자는 “지난 4년간 기술개발 등 내부적으로 총력을 기울여 사업 기반을 마련한 말레이시아 쿠칭 공장의 바로 옆 부지에 SK그룹의 계열사인 SK넥실리스가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같은 동박 공장을 설립하려고 한다”면서 “이는 해외 동박시장 경쟁에서 국내기업간 비정상적인 경쟁관계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대기업의 갑질이자 횡포”라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수년간의 노력 끝에 결실을 맺으려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자사 공장 지근거리에 동일한 동박 공장을 설립한다는 건 결국 자사의 숙련공과 엔지니어들을 빼내 기술 및 노하우를 탈취하려는 지극히 의도적인 행태로, 이는 전형적인 중소기업 죽이기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진머티리얼즈는 지난 2017년부터 말레이시아 쿠칭시에 동박 생산설비 투자를 통해 1~2공장을 가동중이다. 또한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이 커지면서 추가로 3~4공장을 짓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공장 바로 옆 부지에 동일한 제품의 공장시설을 설립한다는 건 상도의를 져 버린 행태란 지적이다.
일각에서도 SK넥실리스가 일진머티리얼즈의 쿠칭시의 공장시설 바로 옆 부지에 동일한 동박공장 설립을 추진한다는 점에 대해 기술 및 인력 탈취를 위한 의도가 다분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처럼 SK넥실리스의 쿠칭시 동박공장 설립 추진에 대해 대기업의 전형적인 전횡이란 지적이 제기되며 논란이 불거지자, SK측은 동박사업 확대를 위해 원가경쟁력 등을 확보하기 위해 검토하고 있는 여러 지역 중 하나일 뿐 결정된 사안은 없다는 입장이다.
SKC 관계자는 "일진머티리얼즈의 동박 공장 옆 부지는 말레이시아 주정부로부터 제안 받은 부지 중 한곳일 뿐'이라며 "이도 사업 타당성 검토 결과 적합지 않다고 판단한 상태로, 현재 다른 후보지들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검토 중인 부지는 모두 말레이시아 주정부로부터 제안 받은 곳일 뿐"이라며 "이에 검토 중이나, 아직 확정된 바 없으며 올해 안에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형적인 ‘대기업 횡포’ 논란에...정치권 “자국기업간 불필요한 소모전” 확산조짐
일진과 SK간 동박공장 설립을 둘러싼 논란이 심화되자, 정치권도 진위 여부 파악에 나섰다. 해외시장에서의 선의의 경쟁도 부족한 판에 자국기업간 불필요한 분쟁으로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정무위원회 소속 배진교 정의당 의원측은 최근 SK넥실리스와 일진머티리얼즈간 동박공장을 둘러싼 갈등 원인 및 진행상황 등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SKC와 SK그룹 관계자들을 국회로 불렀다.

배진교 의원측 관계자는 “(SK넥실리스의) 말레이시아 동박공장 설립 논란에 대해 SK측으로부터 진행상황을 묻기 위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물었다”면서 “SK측의 입장은 말레이시아내 몇군데를 공장설립 부지로 물색을 하고 있는 과정에서 논란이 됐는데, 현재 결정된 것은 전혀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진행된 사안일 경우 국내기업간 분쟁 유발 및 SK측이 잘못한 부분은 없는지 등 논란의 진위여부를 명확히 확인하기 위해 국감증인으로 신청해 문제점을 지적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SK측이 (공장부지 및 일정 등)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고 답변해 진행상황만 확인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측도 기술 탈취 등 자국기업간 분쟁으로 인한 소모전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성만 의원측 관계자는 “현재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간 배터리 핵심기술 특허 침해 건으로 소송이 붙어 있는 상태로, 양사간 소송비용으로 4000억원을 지급했다는 등 내부출혈이 극심한 것으로 안다”면서 “해외시장에서 중국 등이 시장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자국기업간 분쟁 등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 해당 부처에서 적극 중재하고 조절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SK와 일진간 동박공장 논란 역시 기존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간 분쟁처럼 소송으로 비화될 것이고, 이로 인한 경쟁력 훼손 등 우려가 있기 때문에 산자부가 적극적으로 자국기업간 분쟁에서 중재역할을 하고, 이 같은 유사사례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관리, 지원하는 등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SK측은 정치권의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으로 비켜간 상태지만, 일진측은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일진 관계자는 “SKC가 인수한 KCFT(현 SK넥실리스) 정읍 동박 공장도 일진머티리얼즈 익산 공장에서 30분 거리로 매우 가까운 편”이라며 “과거에도 인력 수급·유출이나 협력사를 통한 기술노출 문제로 갈등을 겪은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논란이 되자 자사의 쿠칭공장 바로 옆 부지에 신규공장 설립 계획을 변경한 것처럼 보이나, 10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 강 건너 부지에 신설공장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면서 “동박공장 운영의 핵심은 기술과 함께 숙련된 인력들인데 자사공장 바로 옆에 짓는거나,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곳이나 인력유출 우려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SKC 관계자는 "현재 SK넥실리스는 국내 정읍에서 활발하게 동박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전신인 KCFT시절부터 이미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기술 유출 등과 같은 지적에 대해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정 부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현지 정부에서 진출부지를 제안하면 해당 부지의 고객 접근성, 전기요금, 인건비 등 증설 투자에 필요한 조건을 검토한 뒤 최종적으로 투자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진측은 "주정부에서 제안한 부지가 상당히 많은데 굳이 자사공장 근로자들의 생활권내에 공장을 짓겠다는 의도가 불순하다는 것"이라며 "같은 생활권내에서 동박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것은 자사의 숙련공 유출 등 우려하지 않을 수 없고, 이미 현지 일부인력들과 SK측이 접촉한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말레이시아 주정부는 SK넥실리스측에 쿠칭시내 3곳과 그외 지역 등 대여섯 곳의 부지를 제안했으나, SK넥실리스 경영진들은 쿠칭시내에 공장 설립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처럼 양사간 입장차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만큼 SK넥실리스가 신설공장 부지를 전향적으로 바꾸지 않고 쿠칭시내로 확정할 경우 일진머티리얼스측과의 갈등은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대체적이다.
한편 관련업계에서는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동박 시장도 시장잠재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차전지용 동박 세계시장은 지난 2018년 1조5000억원에 불과했으나, 오는 2025년에는 10조원 이상으로 급성장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청년일보=김양규 / 김서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