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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북풍과 신북풍···데자뷰로 다가오는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북풍은 북한의 도발행위 활용, 신북풍은 남북대화 및 평화무드 인위적 조성
유권자 우선순위는 경제 문제, 학습효과로 이벤트와 쇼는 역풍 초래할 수도

 

【 청년일보 】 선거는 인물, 구도, 바람이라는 말이 있다. 이들 3개 요인이 당락을 가른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인물과 구도는 어느 정도 고정된 변수다. 하지만 바람은 가변적 변수다. 누구에게 유리한 바람이 부느냐 여부가 정치권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민심과 바람은 결이 다르다. 그럼에도 바람은 유권자의 표를 이끌어내는 동인이 될 수 있다. 전세를 뒤집어 놓을 수도 있다.  선동은 물론 각종 이벤트나 쇼 역시 결국은 바람 만들기의 일환이다.

 

우리나라 선거판을 흔드는 바람 가운데 하나가 북풍(北風)이다. 선거 때 등장하는 북한의 도발행위 등을 일컫는 말이다. 북풍은 종종 돌풍이 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이다.

 

KAL 858기는 1987년 11월 29일 북한 공작원 김현희 등에 의해 미얀마의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폭파됐다. 탑승자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 북한 정권에 대한 공분이 하늘을 찔렀다.  

 

더구나 제13대 대통령 선거 전날 김현희가 국내에 압송돼 오는 장면이 보도되면서 선거판을 흔들어 놓았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은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 실패가 주된 요인으로 꼽혔다. 하지만 북풍이 선거에 영향을 미친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북한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군부정권이나 보수정권에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진보정권에게도 활용 가치가 높다. 선거 전 남북대화 및 평화무드를 인위적으로 조성해 진보정권을 지지하도록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이를 신북풍(新北風)이라고 한다.

 

신북풍은 주로 남북정상회담 형태로 나타난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2000년 6월 전용기를 타고 순안공항을 통해 북한을 방문했다. 7년 후인 2008년 10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육로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세 차례나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북풍이나 신북풍이 항상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 결과가 그렇다. 김대중 정부는 16대 총선을 사흘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했지만 야당인 한나라당에 졌다. 2016년에는 20대 총선을 닷새 앞두고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의 탈북 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석 차이로 이겼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남북관계 이슈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 같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북풍부터 그렇다. 핵과 미사일을 앞세운 북한의 도발이 일상화되면서 안보 불감증에 젖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신북풍 역시 파괴력이 약화됐다는 시각이 많다. 이벤트나 쇼에 대한 피로감이 쌓인 탓이다. 그럼에도 분단국가의 특성상 남북관계 이슈는 언제든 바람을 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의 정부여당은 남북대화 및 평화무드 조성으로 신문과 방송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싶어 한다. 야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도 북한에만 매달리는 집권 세력의 안보 불감증을 부각시키는 것에 무게를 둔다. 

 

북한도 한국의 권력 재편기인 내년 대선을 그냥 넘기지는 않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화해 메시지를 보내든, 공포를 조성하든 선거에 개입할 계획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특히 북한은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카드가 필요하다.

 

북한은 지난해 연이은 태풍과 홍수로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다. 전문가들은 올해 폭염으로 가뭄이 이어질 경우 제2의 '고난의 행군'이 닥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을 우려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고 있어 물자 수입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난의 행군은 지난 1990년대 중후반 외화난, 에너지난 등을 겪고 있던 북한에 홍수·냉해·가뭄이 이어지며 수 십만명의 아사자를 낸 경제난을 말한다. 북한으로서는 악몽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남북관계가 다시 활발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27일 남북 통신연락선의 복원이 대표적이다. 북한이 지난해 6월 대북전단을 문제삼아 연락선을 완전 차단한지 1년 1개월 만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부터 수차례 친서를 교환하면서 소통해 온 결과라고 한다. 남북이 동시에 "관계 개선과 발전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조율의 흔적이 느껴진다. 

 

북한은 그동안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연락선을 열고 닫았다. 지난 2018년 1월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비핵화 회담 이벤트를 위해 복구했다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일방적으로 끊었다. 지금 다시 연락선을 복구한 것은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여권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고 임기를 마치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군사적 위협의 제거는 북핵 폐기 없이는 불가능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바라는 것은 북핵은 그대로 보유하면서 대북제재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 같은 목표가 바뀌었다는 징후는 하나도 없다.

 

정치권은 연락선 복원을 내년 대선을 앞둔 집권 세력의 큰 그림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화상을 통한 남북정상회담 추진 얘기가 나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징검다리로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미북, 남북의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란 얘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연락선 복원은 북한의 변화 신호가 아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 남북관계 이슈를 이용하려는 양쪽 정권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년 3월 대선 전 정부여당이 남북관계 이슈를 꺼내들 것이라는 것은 예상돼 왔던 일"이라는 야당의 반응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대외관계에서 비롯된 바람이 국내 정치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992년 제42대 대통령 선거가 대표적이다.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사막의 폭풍작전'을 통해 100시간 만에 이라크에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 인해 지지율이 90%에 달하는 등 재선가도 역시 탄탄해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슬로건 한방에 무너졌다.

 

​내년 대선에서 신북풍이 불면 '강풍'이 될지, 아니면 '역풍'이 될지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유권자들은 남북관계 이슈의 이면을 들여다 볼 안목은 갖추고 있다. 오랜 학습의 결과다. 특히 이벤트와 쇼보다는 당장의 생계 등 경제 문제에 우선순위를 둘 공산이 크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슬로건이 데자뷰로 다가오는 이유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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