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제목에서도 보듯이 널리 쓰인 문장이다. 물이 반쯤 차있는 컵을 보고 누구는 "반 밖에 안 찼네"라고, 어느 누구는 "반이나 차있네"라며 생각할 수 있다는 이야기. 그냥 문맥 그대로 보면 '긍정적·부정적 사고'에 대한 교훈적 글로 보여질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맹점 하나가 숨겨져 있다. '어떤 물'인지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마실 수 있는 물인지, 흙탕물이나 오염된 물인지 등. 물을 담는 컵이나 용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컵인지 아니면 형태가 화려한 머그컵이나 대용량의 텀블러인지도 알 수 없다. 즉,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해석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최근 서울시도 그렇고 지역 혹은 권역별 청년정책네트워크 위원을 선출하는 있는 기간이다. 연초에는 보건복지부 자문단을 비롯한 부처별 중앙위원을 모집하기도 했었고. 필자도 관심이 있어 알아보던 차 모집기간을 놓쳐 다음을 바라보게 됐다. 그만큼 해당 분야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거나 한번이라도 발을 들여놓았다면 관련 내용을 알게 모르게 접하게 된다. 하지만 청년 참여기구 활동 관련하여 잘 모르거나 혹은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 청년일보 】 최근에 들은 말이다. '세대별 사회복지사'라는 용어가 그것이다. 어느 기관, 분야를 막론하고 통용되지 않는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사회복지를 잘 알거나 모르는 사람 전부 굳이 세대를 구분하여 통칭 안하지 않는가.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느껴진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들이 있는데 청년 사회복지사 당사자로서 체감한 부분을 여과 없이 풀어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청년 사회복지사의 정확한 통계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관련 논문은 소수 존재한다. 다만 명칭은 통일되어있지 않다. 어느 논문에서는 신입사회복지사라 표현하기도, 또 어느 논문에서는 저연차 혹은 실무자 및 담당자로 묶는 경우도 봤다. 매해 한국사회복지사협회에서 통계연보를 발간하는데, 분야별 혹은 시설별 종사자의 수는 알 수 있었지만 연령대별 사회복지사 통계는 찾기 여간 힘들지 아니하다. 둘째, 청년 사회복지사 자체에 대한 지원이나 서비스가 매우 미비하다. 오래전부터 국내 복지계에서도 인지는 하고 있었다. 2023년 통계기준, 전국 약 140만 명의 종사자 중에서 청년비율은 앞서 언급했듯이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용시설 혹은 생활시설마다 차이는 있
【 청년일보 】 2023년을 돌아보면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부한다. 청년으로서의 삶, 조형준이라는 개인으로서의 삶 그리고 사회복지사로서의 삶 모두 어느 것 하나 빠질 수 없는 스토리와 에피소드들이 녹여져있다. 하나씩 풀어내기에는 여백이 많지 않음이 아쉬울 따름이고. 그렇게 2023년의 마지막 한 주를 보내며 조용히 소회를 남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겠다. 어느 누구도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 없잖은가. 이유야 어떻든 현재 이 무한경쟁사회에서 두 발 딛고 버텨온 것만으로도 뜨겁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청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장년 그리고 노년에 이르러서도 계속 배우며 성장하고 또 하루하루 바쁘게 움직이며 살 것이다. 최근 서울시에서 주관한 '서울미래인재 아카데미' 2기 과정에 참여했다. '복지·여성' 분과로 또래 청년들과 2달 가까이 대면으로 만나며 소통했던 기억이 난다. 불과 지난주에 수료식을 마쳤으니 따끈따끈하지 않은가? 그들과 교감하며 느낀 점은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 누군가의 시선에는 그렇게 안 보일 수 있다. 내 오래된 지론 중 하나인데, 사회현상이나 문제는 바라보기 나름이고, 대체로 상
【 청년일보 】 올해로 서른넷, 청년 기본법에 근거하면 여전히 '청년'에 속한다. 그러면서 수식어처럼 뒤에 따라붙는 단어 하나가 있다. 바로 '청년위원'. 그렇다. 2019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청년네트워크 사회안전망 소속 청년위원이자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제1기 광진구 청년정책네트워크 부위원장으로 활동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30청년세대들의 세태와 어려움을. 여러 매체를 통해서 혹은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답답한 호소에 마음으로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나 거기까지였다. 몸은 여전히 땅 위에 고정됐다. 조직에 속해있는 '안정감' 그리고 나와는 관계없는 '무관심'이라는 지독함 감기와도 같은 감정들이 공존하고 있어서였다. 그러나 몇 번의 퇴사를 통해 무언가 나의 삶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청년으로서 평소 듣고 느낀 나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정책화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하던 차 내 눈에 들어온 '청년 참여기구'. 나의 참여 권리 활동은 여기서부터 태동됐다.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의 복지 그물망을 구축하고자 뜻 맞는 다른 청년위원들과 치열하게 발로 뛰었다. 참여는 무엇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