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지난 5월 10일, 지인과 전주로 내려갔다. 한국사회복지행정학회에서 주관하는 <춘계학술대회>가 열려서다. 전북대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렸는데 다른 걸 떠나 주제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함께했다.
<사회복지현장 '라떼'와 '요맘때'의 공존, 가능할까?>, 타이틀만 놓고 보자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커피나 아이스크림 이야기가 아니다. 쉽게 비유하면 M Z세대와 윗세대로 비칠 수 있고 안정과 혁신의 충돌로 여겨질 수도 있다. 세대별 종사자들이 발표도 하고 사례 및 연구성과를 공유하는 등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나 자신이 청년 사회복지사라서가 아니다. 복지현장이 아니어도 비영리섹터나 아르바이트를 해도 우리는 필연적으로 '사람'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업무적인 기술이나 실천경험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쌓인다. 당연히 전문성을 높이고 특화되거나 한두 단계 높은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지만 말이다.
최근에도 뉴스에서 언급되고 있는 '구직 포기 청년'에 대한 소식. 우리나라에서는 청년백수로, 일본은 '사토리 세대', 중국은 '탕핑족'이라 일컫는다. 세 나라 모두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한다지만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사실 실효성을 언급할 단계는 지났다고 본다.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다 못해 만연한지 오래인 작금의 상황에서 아무리 유인책을 내놓는다 해도 잠깐 발만 담그는 정도다. 다시 본연의 삶으로 돌아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들에게 사회적 잣대를 들어 '왜 그러고 사냐' 비난할 수도 없다. 사회구조가 그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지 않는다.
열심히 구직활동하며 신규 혹은 재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최소한 그들은 어느 정도의 대비를 한 상태에서 나름의 목표를 갖고 움직인다. 출발선도 다르지만 게임으로 치면 두르고 있는 장비들도 다르다. 몇 차례 환생한 꼴이다. 그런 이들과 평범한 삶을 산 '누군가'와 경쟁상대로 붙이는 건 너무 잔혹하다.
내가 학부생이던 10년 전과 지금을 돌아보면, 오늘날 모든 청년들이 노력 안 하지 않는다. 방향성은 다를지언정 자신이 희망하는 진로나 직업 관련 기본적인 정보나 지식은 갖추고 있다. 또 객관화된 지표도 나름 갖추고 있다. 어떤 이는 정성적, 정량적으로 나눠 자신의 현 상황을 평가하거나 꾸준히 포트폴리오를 쌓아 업데이트하기도 한다. 2024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년들은 절대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왜 만나는 청년들마다 불안하고 준비가 안 되어있다 느끼는 걸까? 오히려 취업을 해도 금방 나가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어 결국 구직을 포기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원인은 그들에게 있는가 아니면 사회인가. 난 개인적으로 양쪽에 원인과 이유가 있다고 보지만 비율로 치면 사회 쪽에 더 살을 붙이고 싶다.
본 칼럼의 제목처럼 '라떼'와 '요맘떼'가 계속적으로 충돌하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집중하여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그들에 대한 배려나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적성에 안 맞아 그만두는 경우를 제외하고, 어떻게든 현장에 남아 경력도 쌓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들을 채용하고 받아줬으면 거기서 끝내야 하는 거 아닌가.
과거의 방식 중 바꿔야 하는 부분을 그대로 답습한 채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라고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 없이 슈퍼비전을 준다면 도대체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배우고 또 적응하라는 말인가.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이해함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그 한계를 인정하지 않은 채 '젊으니까', '우리 때는 이랬어'라는 식으로 선을 긋거나 '대화가 안 통해', '말해도 반영이 안되네'라며 침묵으로 일관하는 요즘 세대와의 간극, 인재 육성의 걸림돌이자 청년 고용의 악재라고 생각한다.
그만 강요하자. '라떼'와 '요맘떼'의 공존보다 더 우선시 되는 건 그들 스스로 사규를 수용하고 자발적으로 지키도록 적절한 보상과 지지, 인격적인 존중이다. 그럼 다음 공준이나 조화, 변화를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글 / 팀스토리액팅 조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