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금융당국이 청년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을 우선과제로 내세우면서 금융권도 채용확대에 적극 동참했다. 하지만 올해 채용규모는 지난해에 크게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은행과 보험권은 작년 사상 최대의 실적에도 불구하고 홍콩 ELS 손실여파와 성장동력 부재 등의 이유로 신규인력 채용에 주저하는 모양새다. 증권사들은 디지털과 리테일 등 특정분야의 인력만 채용하고 있다. 이에 올 상반기 은행·증권·보험권의 채용계획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上) 홍콩 ELS 손실에 수익성 '뚝'...올해 은행권 채용시장 '찬바람'
(中) "리테일이 대세"....증권가, IT·리테일 인력 강화에 방점
(下) 주요 보험사 절반 이상 신입 공채 미정...올해 보험권 일자리 '먹구름'
【 청년일보 】 국내 은행들이 지난해 상반기에만 2천300명을 채용하는 등 모처럼 은행 채용시장에 훈풍이 불었지만, 올 상반기 은행권은 실적악화를 예상하는 분위기 속에 다시 채용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특히 올해 초 은행권을 강타하고 있는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여파로 올 1분기 국내 4대 금융지주는 6천억원의 손실이 예상되는 가운데 은행권의 채용축소는 심화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다만 국내 은행들은 디지털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디지털·ICT 인재들의 경우 상시채용을 통해 인력 확보에 나서는 모습이다.
◆ 尹 대통령 엄포에...은행권, 지난해 상반기에만 2천300명 채용
지난 2022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는 등 은행권을 향한 '이자장사' 비판이 거세지자 국내 은행권은 채용확대를 통해 비판적 여론 달래기에 나섰다.
은행권의 채용확대는 지난해 초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들의 '돈 잔치'를 거론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지난해 초 윤석열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들께서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당국은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윤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라며 "수익을 어려운 국민,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에게 이른바 상생금융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향후 금융시장 불안정성에 대비해 충당금을 튼튼하게 쌓는 데에 쓰는 것이 적합하다"고 지적했다.
이러자 실제로 지난해 국내 20개 은행은 상반기에만 2천300명을 채용했다. 이는 전년과 비교해 700명 이상이 늘어난 규모다.
하반기 채용인원까지 더해 지난해 은행권은 3천700명 수준의 인력을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2018년 3천121명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특히 KB국민은행 등 국내 5대 은행(신한·하나·우리·NH농협)들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1천500명을 채용하며 은행권의 채용시장을 이끌었다.
◆ 홍콩 ELS發 실적악화에...인력채용 줄이는 은행권
하지만 1년 새 은행권의 채용규모는 확 쪼그라든 모습이다. 대형 은행들 중심으로 채용이 이뤄지긴 하지만, 채용규모는 작년에 비해 절반 이상으로 줄었다.
국내 5대 은행의 올 상반기 채용규모는 NH농협은행이 530명의 6급 신입직원을 뽑으면서 가장 많았다. 이어 우리은행이 180명, 하나은행 150명,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채용은 100명 수준이었다. 이는 지난해와 비교해 70% 수준에 그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채용계획의 경우 은행이 필요한 인력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해마다 채용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윤 대통령과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역대급을 기록했던 은행권의 채용확대는 1년짜리 '반짝 채용'에 그쳐 지난 2022년(1천600명) 수준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지난해 채용이 늘어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채용확대를 압박한 것이 사실상 크게 작용했다"라며 "실제로 최근 은행 점포가 감소추세에 있는 만큼, 은행권의 인력보강도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NH농협은행을 제외한 4대 은행의 점포 수는 2천818개로, 지난 2019년 말 3천527개와 비교해 700개가 넘게 줄었다.
이 같은 은행들의 채용축소는 올해 초 발생한 홍콩 ELS 대규모 투자손실과도 맞닿아 있다.
앞으로 홍콩 H지수의 큰 변화가 없다면 올 상반기에만 5대 은행의 배상규모는 총 2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들이 당장 1분기부터 이를 영업외비용으로 회계처리하면 실적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또한, 올해 들어 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이 지속 하락하고 있다는 점도 은행 실적을 갈아먹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실적이 감소하면 기업은 실적 방어를 위해 비용을 줄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신규 채용규모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행원은 줄여도...디지털 인재 영입은 계속
이 같은 채용 감소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디지털전환이라는 '역점사업'을 위해 디지털 인재 영입에는 속도를 내고 있다. 은행들은 공개채용뿐만 아니라 상시채용을 통해 필요한 디지털 인재 확보에 나서는 모습이다.
올해 대형 은행들의 채용 트렌트를 살펴보면, IT 등 디지털 분야의 채용을 일반 행원과는 분리, 진행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은 '2024년도 상반기 공개채용'을 일반분야와 IT분야로 나눠서 실시했으며, 총 540명 중 25명을 IT 인재로 선발했다. IBK기업은행도 올 상반기 신입행원 모집분야를 금융일반 외에 디지털 금융분야를 디지털과 IT로 세분화해 진행했다.
우리금융지주 역시 정보기술(IT) 계열사인 우리에프아이에스에서 관리하던 IT 개발·운영 관련 인력과 자산을 우리은행 한 곳으로 모았다. 이는 은행 내에 IT 사업 기획과 서비스 개발, 시스템 운영 등을 담당하는 통합 조직을 신설해 IT 개발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신속한 IT 개발로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고, 디지털 경쟁력이 한단계 레벱 업할 것"이라며 "더 나은 고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디지털 금융 인재 선발은 인터넷은행에서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 경우 내부 IT 개발 인력 비율은 전체 직원의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인터넷은행 관계자는 "디지털 경쟁력 확보는 이제 은행들의 필수조건으로 자리잡았다"면서 "앞으로 은행들 역시 디지털과 일반 행원으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모두 갖춘 멀티 플레이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더욱 높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청년일보=이나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