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석구석: 공간에 새겨진 도시 변화의 서사> 시리즈는 서울의 역동적인 변화를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프리즘으로 분석한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도시의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 그 현장의 모습과 변화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도시의 물리적 변화가 개인의 일상, 경제, 문화, 심지어 정치적 지형까지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살펴봄으로써,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 첫 번째 장소로, 산업화의 추억과 금융 도시의 현재가 공존하는 '변화의 교차로', 영등포구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서울 남서쪽에 자리한 영등포는 산업화의 유산과 도시의 명암이 선명하게 교차하는 복합도시다.
경부선과 경인선이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서울의 전략적 배후지였던 영등포는, 공업단지에서 여의도 금융 중심지와 문래동 예술 창작촌으로 공간을 급진적으로 재구성하며 서울의 생활과 정책 변화를 선도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 뒤편에는 낡은 구도심 상권의 노후화, 극심한 주거 불균형,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과제 역시 그림자처럼 공존한다.
◆산업과 공간 확장의 역사
일제강점기 시절 영등포는 철도와 군사 인프라가 집중된 산업지였다.
당시 일제는 영등포 일대에 군수용 금속·기계 공장을 집중적으로 건설해 군수품 생산 기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이는 영등포가 경부선과 경인선이 만나는 서울 남중심의 통로이자 ‘남경성’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경제와 교통의 허브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영등포의 중요성을 알았던 일제는 1936년 경성부 확장으로 영등포·동작 일대가 서울에 편입했고, 이후 행정·생활·정치적 변화의 중심축이 되었다.
과거 영등포의 영향권은 강서, 강남, 동작, 성동까지 뻗었고, 현재도 강남에는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의미로 ‘영동’과 같은 옛 지명도 남아있다.
인접 동네의 학교, 학군, 상권, 정치적 변동에도 영등포의 영향력이 깊게 작용했고, 행정구역 개편, 분화, 생활권 변동이 이어지며 서울 서남부의 성격을 만들어왔다.
◆환경적 특성과 도시의 재편
영등포는 한강과 맞닿았음에도 수변 공간 활용도가 낮고, 공공·상업·자연의 경계가 뚜렷하다.
한강 하상계수(유량변동성) 탓에 홍수와 치수 정책이 오랜 도시 과제였으며, 한강대교·공원 일대는 홍수주의보 및 환경 재해가 반복됐다.
여의도의 탄생은 이러한 환경적 어려움 속에서 고안된 치수 정책의 산물이었다.
상습적으로 침수되던 여의도(당시 땅콩밭과 모래톱)는 1968년 한강 개발 계획에 따라 높이 16m에 달하는 윤중제(제방)를 쌓아 홍수를 막으면서 대규모 택지로 변모했다.
이 치수 사업을 통해 안정적인 개발 공간을 확보하자 국회의사당, 증권거래소 등 국가 주요 시설이 들어섰고, 이는 자연스레 금융사들을 집적시키며 여의도를 명동에 이은 국제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시키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
공업단지, 방직공장, 맥주회사 등이 지역 경제를 이끌던 시기가 지나자, 영등포와 여의도는 IFC를 비롯해 대규모 상업·금융지구로 탈바꿈했다.
문래창작촌 등 과거 철공소 밀집지에는 예술가·창작자가 유입되며 도시재생의 모델이 등장했다.
다만, 영등포역 구도심 상권은 여전히 낡은 건물과 노후화된 유흥시설, 쪽방촌 등이 혼재해 대형 복합 쇼핑몰과 대비되는 이중 구조를 형성했다.
이에 영등포구는 영등포역 일대의 낙후된 집창촌 및 상업지역에 대해 도시정비형 재개발을 추진 중이며 상업·업무 중심의 고밀 주상복합단지로의 재편을 통해 상권을 현대화하고 과거의 위상을 회복할 계획이다.
◆주거 불평등, 인구 변화와 사회적 성격
영등포 일대는 주거 형태의 밀도가 매우 복합적이다.
여의도의 고가 아파트 단지부터 영등포 본동, 문래동 일대의 빌라와 노후 주택, 그리고 원룸 건물이 혼재하면서 주택 가격 격차가 극심하고 생활권의 이질성이 고착화됐다.
이러한 주거 환경의 불균형은 세대와 계층 간 격차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사회적 지표로 작용한다.
최근 서울 인구 감소 추세 속에서도, 영등포는 여의도 및 도심 접근성이 뛰어난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20대·청년층의 활발한 유입이 이뤄지며 역동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원룸이나 소형 주택에 거주하며 지역의 주요 교통망을 이용하지만, 청년층 유입이 활발한 지역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공간 변화가 만든 삶의 이야기와 미래 비전
산업도시의 기억과 현대 복합도시의 일상, 급속한 재개발의 그림자까지, 영등포의 공간 변화는 주민·상인·예술가·청년층 등 다양한 삶을 바꾸고 있다.
과거의 공장지대는 노동공동체와 성장의 추억을, 현재의 금융타운과 창작촌은 패러다임 전환과 도시 정체성의 재구성을 상징한다.
특히 문래동은 수십 년 된 철공소 밀집 지역과 이주해 온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이 기계 소리와 예술 작품 속에서 독특하게 공존하고 있다.
이 대비적인 공간은 지금도 주말 저녁이면 낡은 골목을 찾아온 젊은 세대와 방문객들로 북적이며 지역 상권에 새로운 활력과 역동성을 불어넣고 있다.
영등포구는 금융·예술·주거 융합형 재생, 친환경 산책로, 상권 다양화, 젠트리피케이션 조정 등 미래 전략을 추진 중이다.
'변화의 교차로'인 영등포는 앞으로도 서울의 변화에 핵심적 역할을 할 전망이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