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국내 퇴직연금 제도가 시행 20년을 맞았지만,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본래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수익률과 높은 수수료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제도 전반의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31일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퇴직연금 기금화의 공적 역할 강화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퇴직연금 제도의 근본적 개혁 방향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우리나라 퇴직연금을 다층 노후소득 보장 체계에서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깨진 기둥'으로 진단했다.
발제를 맡은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퇴직연금 도입 이후 20년간 누적 수익률이 2.07%에 불과해 같은 기간 평균 물가상승률(2.3%)에도 못 미쳤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연금은 같은 기간 연평균 6.82%의 수익률을 기록해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정 교수는 "퇴직연금 자산의 실질 가치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실패의 원인으로 금융기관 중심의 계약형 구조를 꼽았다. 현재 퇴직연금 자산의 90% 이상이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어 장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업 담당자는 손실 책임을 우려해 적극적인 운용을 기피하고, 근로자는 전문성 부족 속에 투자 선택을 떠안는 구조가 저수익을 고착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주택 구입 등을 이유로 한 잦은 중도 인출이 노후 자산을 잠식하는 악순환도 문제로 지적됐다.
대안으로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이 집중 조명됐다. 기금형은 개별 계약 대신 노사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수탁법인이 자산 운용의 주도권을 갖고 집합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이다. 유호선 국민연금연구원 연구위원은 덴마크와 영국 사례를 들며 "비영리 기금 운용과 위험 분산을 통해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민연금의 운용 역량을 퇴직연금에 활용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사가 제도 운영을 맡되 자산 운용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위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낮은 수수료 구조와 검증된 투자 포트폴리오를 활용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3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푸른씨앗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은 도입 4년 만에 누적 수익률 26%를 기록하며 공적 기금 방식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제도 사각지대 해소도 핵심 과제로 꼽혔다. 류제강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1년 미만 단기 근로자,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직 등을 퇴직연금 제도 안으로 포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퇴직연금관리공단을 신설해 중소기업과 취약 계층 근로자의 노후 자산을 통합 관리·지원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참석자들은 퇴직연금 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생존의 문제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퇴직연금을 단순한 금융 상품이 아닌 사회보장 제도로 재정의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입법과 제도 개편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번 토론회에서 제시된 기금화와 사각지대 해소 방안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