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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시민과 함께 뇌전증 바로보기"…편견 허무는 '남양유업 퍼플웨이브'

정부 부족이 낳은 뇌전증 선입견…축제형 캠페인으로 인식 개선 도모
표류 중인 뇌전증 법률안…남양유업 "꾸준한 지지의 목소 이어갈 것"

 

【 청년일보 】 일 년에 두세 번. 이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들이 나를 정의하는 이름이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까. 일 년에 한두번씩 누구나 감기에 걸리고, 복통을 느끼고, 두통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 우리는 그 사람에게 꼬리표를 붙이지 않는다. 


그러나 단지 짧은 순간 일어나는 일임에도 사회에서 고립되는 이들이 있다. 국내 37만여 명있다고 알려진 뇌전증 환자들이다. 이들 대다수는 일 년에 두세 번, 한 회에 5~10분 내외로 잠시 아픈 것뿐이지만, 그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사회는 그들에게 선입견을 품곤 한다.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며 살아가는 뇌전증 환자들. 그들을 위해 지난달 남양유업과 사단법인 뇌전증협회가 함께 거리로 나가 뇌전증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바꿀 메시지를 전했다. 


그들이 전한 메시지, 그 메시지에 반응한 시민들이 가득한 현장을 기자가 찾았다. 

 


◆ 노래하고 뛰놀며 알아가는, 뇌전증


만연한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지난달 28일, 남양유업과 한국뇌전증협회가 서울시 반포한강공원에서 뇌전증 인식 개선 캠페인 '퍼플웨이브' 캠페인을 전개했다. 뜻깊은 행사에 동참하기 위해 기자 역시 반포한강공원으로 향했다. 


드넓은 반포한강공원 어디쯤에 캠페인장이 자리할지 궁금해하며 걸음을 옮기던 찰라, 고사리 같은 손에 뇌전증을 상징하는 보라색 풍선을 쥐고 웃으며 지나가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덕에 어렵지 않게 캠페인장을 찾을 수 있었다. 


보라색이 뇌전증을 상징하는 색으로 자리 잡은 건 지난 2008년부터다. 당시 뇌전증을 앓는 메건이라는 캐나다 소녀가 뇌전증 완화에 도움이 되는 라벤더색을 매년 3월 26일 입자고 제안한 것에서 출발했다. 이를 시작으로 매년 3월 26일은 뇌전증 인식 개선을 위한 '퍼플데이'로 기념되고 있다. 


보랏빛을 따라 찾은 행사장은 이른 시간임에도 이미 짧은 가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원을 찾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퍼플웨이브'는 작은 축제처럼 진행되고 있었다. 감미로운 버스킹 공연과 보란 풍선을 쥐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시민들로 북적이는 5개 팝업 부스가 한데 어우러져 뇌전증에 대한 편견의 벽을 허물고 있었다. 


이에 더해 캠페인장 한편에서는 뇌전증 환자를 위한 무료상담소도 운영되고 있었다. 상담소는 김흥동 한국뇌전증협회 회장과 환자 및 그 가족들이 마주 앉아 크고 작은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도록 조성돼 있었다. 

 

 

◆ 정보부족이 낳은 편견…관심으로 바로보기


뇌전증을 바로 보기 위해, 캠페인장 곳곳에 놓인 뇌전증 정보를 담은 전시물을 둘러봤다. 


과거 '간질'이라 불리던 뇌전증이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건 지난 2011년부터다. 사회적 편견이 심한 질환으로 부정적 의미를 담은 간질이 뇌전증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키우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뇌신경 세포의 과도한 전기적 방전으로 발생하는 뇌전증은 치매, 뇌졸중과 더불어 주요 신경계 질환 중 하나다. 그러나 다른 질병과 달리 이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관심 부족은 곧 정보 부족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편견과 선입견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흥동 한국뇌전증협회 회장은 "뇌전증 환자 대다수는 일 년에 두세 번, 한 번에 5~10분 정도 발작을 일으킨다"면서 "다 합해도 일 년에 30분이 채 안 되는데, 뇌전증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많은 환자들이 구직, 학교생활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편견도 선입견도 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이유로 퍼플웨이브에서는 뇌전증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쉽고 재밌게 알아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기획됐다. 간단한 퀴즈로 잘 못 알려진 뇌전증 정보를 바로잡기도 했고, 일상생활에서도 뇌전증을 인식할 수 있도록 리유저블백, 키링 등의 굿즈 등도 제공하고 있었다. 

 


◆ 뇌전증 법률안의 필요성…"꾸준한 활동 이어갈 것"


이번 캠페인에서는 뇌전증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뇌전증 관리 및 뇌전증 환자 지원에 관한 법률안 제정 촉구 서명'도 진행됐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뇌전증 환자들을 위한 법률안이 없다. 그렇다 보니 치매, 뇌졸중 등 다른 뇌질환과 달리 정부의 뇌전증 지원은 미비하다. 


이에 많은 뇌전증 환자 및 그 가족들, 한국뇌전증협회가 강하게 법률안 개정을 요구하고 있으나 여전히 법안은 표류 중이다. 그렇기에 남양유업과 한국뇌전증협회는 더욱 많은 시민에게 뇌전증과 법률안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이날 자녀들과 함께 캠페인장을 찾은 전이슬 씨는 "그동안 뇌전증은 치료가 어려운 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인식을 바꾸게 됐다"면서 "뇌전증 환자들에게 발작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등 많은 정보를 배울 수 있어 특별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기회를 통해 뇌전증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참가자들의 소감에, 남양유업에서 ESG 업무를 담당하는 정재웅 대리는 "이 자리가 보이지 않았던 편견을 발견하고, 이를 허물 수 있는 자리가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뇌전증이 과거 간질이라 불리던 병이라는 걸 몰랐다는 분들이 많았다. 주변에 뇌전증 환자가 있는데도, 몰랐던 정보가 많다며 주위에도 알려야겠다는 말도 들었다. 지난 3월 퍼플데이에 이어 이번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선입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꾸준한 활동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라고 덧붙였다. 

 

 

◆ 뇌전증 환자와 남양유업의 인연…20년 이상 이어져 


정 대리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지난 2002년부터 지금까지 뇌전증 환자 곁을 묵묵히 지켜왔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뇌전증 환자들이 스스럼없이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 드러내길 바라는 마음은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남양유업이 뇌전증에 처음 힘을 보태기 시작한 건, 뇌전증 영유아 환자를 위한 특수분유 '케토니아'를 개발하면서부터였다. 


통상 뇌전증 환자들은 발작 증세를 관리하기 위해 약물 치료와 함께 '케톤 생성 식이요법'을 병행한다. 이는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줄이고, 지방을 늘리는 식이요법으로 소아 뇌전증 환자에게도 큰 도움을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분유를 먹는 뇌전증 영유아는 케톤 생성 식이요법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보통 일반 분유는 높은 탄수화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라면 다양한 식재료로 영양소의 균형을 맞추겠지만, 영유아는 이 또한 쉽지 않다.


그렇기에 뇌전증 영유아에겐 특수분유가 절실하지만, 낮은 수익성에 선뜻 뛰어드는 기업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002년 남양유업은 조용히 뇌전증 영유아용 특수분유 '케토니아'를 출시했다. 수익성보다는 사회 기여에 중점을 둔 결정이었다. 


정 대리는 남양유업이 꾸준히 뇌전증 환자와 함께 하는 이유를 묻자 "뇌전증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는 환자분들이 많다"면서 "이분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조금씩이라도 사회를 바꿔나가는 게 우리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웃어 보였다. 

 


【 청년일보=오시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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