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10일 국회 정무위원회(이하 정무위) 국정감사(이하 국감)에 출석해 우리은행 내 파벌싸움이 내부통제 실패로 이어졌다고 언급하면서, 우리은행 내 파벌문화가 재조명되면서 이목을 끌고 있다.
우리은행의 파벌문화는 20년 이상 이어진 해묵은 과제로 알려졌다. 1998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의 합병으로 한빛은행(우리은행의 전신)이 탄생했지만, 아직까지 양측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임종룡 회장이 파벌문화을 타파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들의 나눠먹기식 기업문화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17일 국회 및 금융권 등에 따르면 임종룡 회장은 지난 10일 국회 국감에 출석해 우리은행의 파벌문화가 내부통제 실패로 이어졌다고 발언했다.
이날 임 회장은 “여러 은행이 합병되면서 형성된 계파적 문화가 잔존하고 있다”며 조직 내부의 결속력 부족과 파벌싸움이 내부통제 실패로 이어졌음을 시사했다.
이처럼 임 회장이 정무위 국감에서 우리금융의 파벌문화를 공식화하면서, 우리은행의 해묵은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출신간의 암투가 재조명되고 있다.
1998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의 합병으로 한빛은행(우리은행의 전신)이 탄생했지만, 현재까지 한일과 상업은행 출신간의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흡수합병이 아닌 대등합병이다 보니 통합 후에도 자리나 지분을 두고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행장 인선은 물론 인사 때마다 출신 은행을 고려하는 것이 불문율로 전해졌다.
우리은행은 2008년부터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이 번갈아 행장을 맡아 왔고, 임원도 양쪽 출신을 거의 같은 비율로 구성하는 등 갈등을 줄이기 위해 애를 써왔다.
역대 은행장을 보면 ‘핑퐁 구도’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초대 통합 은행장인 김진만 우리은행장은 상업은행 출신이었으며, 2008년 취임한 이종휘 전 우리은행장은 한일은행 출신, 2011년 취임한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상업은행 출신이었다.
이광구(상업은행)·손태승(한일은행)·권광석(상업은행)·이원덕(한일은행)에 이어 상업은행 출신의 조병규 은행장이 바통을 받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업은행 출신인 이순우·이광구 행장이 연이어 수장을 맡았고, 한일은행 출신이 맡을 것으로 예상됐던 수석부행장 자리마저 없애 버리면서 한일은행 측 인사들의 불만이 커졌다.
이러한 파벌싸움은 채용비리 사태의 폭로전을 불러왔다. 채용비리 사태는 2017년 10월 16일 국회 정무위 금융감독원 국정감사 중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2016년 우리은행 신입행원 공채에서 150명 중 약 10%인 16명이 국정원 직원 자녀, 금융감독원 간부 요청, 공무원 자녀 등의 사유로 추천, 채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광구 전 행장이 중도하차할 당시 표면적으로는 채용 비리가 이유였지만, 그 이면을 들춰보면 계파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로 알려졌다.
금융권 등에 따르면 당시 우리은행 특혜채용은 상업은행 출신인 이광구 행장 체제에 불만을 품은 한일은행 출신의 퇴직자가 국회의원실에 제보해 처음 밝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채용비리 사건으로 줄줄이 옷을 벗게 된 이 행장, N 부문장, L 상무 모두 공교롭게도 상업은행 출신이다. 이로 인해 금융권에서는 이순우 행장에 이어 연속으로 상업은행 출신이 행장에 올라서면서 한일은행 출신들이 차기 행장을 노리는 의도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이순우 전 행장이 중도하차 하면서 정부의 우리은행 잔여지분 매각도 중단된 탓에 결과적으로 한일-상업 간 파벌싸움은 우리은행 민영화에도 걸림돌로 작용됐다고 전해진다.
특히 최근 발생한 손태승 우리금융 전 회장의 친인척 600억원대 부당대출과 우리저축은행, 우리캐피탈, 우리카드 부당대출 의혹 등 내부통제 실패도 파벌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은 정무위 국감에서 “현재 우리금융은 특유의 파벌문화 때문에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등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들이 끊임없이 제기된다”며 “파벌문화가 생긴 이유를 살펴보니 전부 이질적인 회사 인수합병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이현승 의원 역시 "이번에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건이 처음 외부에 밝혀진 게 내부자 제보에 의한 것이었고, 또 일부 대출의 경우에는 담당 직원이 대출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윗선의 영향력으로 대출이 실행된 점을 고려한다면 내부 파벌의 힘이 여전히 강력해 우리금융 내부의 규정과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무력화되고 있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을 한다"고 지적했다.
임 회장도 정무위 국감에서 우리은행의 파벌문화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임 회장은 "통합은행의 성격, 그리고 오랫동안 민영화되지 못한 그런 문제들 때문에 분파적이고 소극적인 문화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이런 음지의 문화를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금융이 바로 설 수가 없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기업문화를 혁신해야 한다. 제가 취임한 이후 기업문화 혁신을 위한 전담 조직을 설치하고 소통 활성화, 윤리교육 강화 등의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특히 임 회장은 최근 드러나고 있는 금융사고 건에 대해 "내부통제 미흡과 잘못된 기업문화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는 그동안 감춰져 왔던 우리은행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번 임종룡 회장이 파벌문화 혁신 의지를 천명했음에도, 기업문화(파벌문화) 혁신이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임 회장이 임원 선임 사전 합의제 폐지 및 계열사 자율 경영권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현재 대부분의 자회사 대표이사들이 한일과 상업은행 출신들인 만큼, 단기간에 기업문화 개선은 쉽지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은행 측은 임원 선임 사전 합의제 폐지 및 계열사 자율 경영권 보장에 대해 올해 연말 인사부터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우리금융(은행) 관계자는 "올해 연말 인사부터 임원 선임 사전 합의제 폐지 및 계열사 자율 경영권 보장을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 14개 계열사 가운데 7곳의 CEO 임기가 올해 12월말로 종료된다.
임기가 만료되는 계열사 대표는 조병규(상업은행) 우리은행장을 비롯해 박완식(한일은행) 우리카드 대표, 정연기(한일은행) 우리금융캐피탈 대표, 이종근(한일은행) 우리자산신탁 대표, 최동수(한일은행) 우리금융에프앤아이 대표, 이중호(상업은행) 우리신용정보 대표, 김정록(상업은행) 우리펀드서비스 대표다.
앞서 우리금융그룹은 지난달 27일 1차 자회사 대표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가동하고 차기 CEO 승계 절차에 착수했다. 이어 속속 비공개 간담회를 열어 후보군을 추린다는 방침이다.
【 청년일보=김두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