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사진=연합뉴스]](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50520/art_17470354632935_97745f.jpg)
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건강보험 재정과 기업 책임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 이번 소송은 흡연으로 인한 건강 피해에 대해 누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 그리고 공익소송의 범위가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사례다. 법원의 판단은 향후 유사한 사회적 책임 논의에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이번 시리즈는 소송의 시작부터 항소심 쟁점, 그리고 판결 이후의 영향을 따라가며 이 문제의 본질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上) “담배 한 갑의 그림자"…건보공단의 11년 소송전
(中) "법정에 선 담배”…쟁점은 '질병과의 인과관계'
(下) "담배 소송이 남긴 것"…제도 개편·기업 책임 논의 분기점
【 청년일보 】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이 국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올해로 11년째를 맞았다.
공단은 흡연으로 인해 발생한 건강보험 재정 부담 일부를 담배 제조사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로 2014년 소송에 나섰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6-1부는 이번 담배 소송과 관련해 2심 변론 기일을 오는 22일 열 예정이다. 재판부는 이날 변론을 마무리한 뒤 최종 선고일을 지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 소송의 시작…“공공 재정 손실, 기업이 일부 책임져야”
공단이 담배소송을 공식적으로 검토한 것은 지난 2013년 8월이다. 당시 ‘건강보장정책 세미나’에서 19년간의 건강검진 및 진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흡연과 질병 간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이후 2014년 4월 공단은 국내 시장점유율 상위 3개 담배회사(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를 상대로 총 533억원 규모의 민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소송은 폐암(소세포암·편평세포암)과 후두암(편평세포암) 환자 3천465명을 대상으로, 2003~2012년 사이 공단이 부담한 진료비를 근거로 진행됐다.
이들 모두 흡연력이 20갑년 이상인 고위험군이다. 공단은 일반검진 자료와 한국인암예방연구(KCPS) 코호트 데이터를 통해 인과관계를 주장하고 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11년 기준 흡연 관련 35개 질환의 총 진료비는 약 1조6천914억원으로,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46조원)의 약 3.7%를 차지했다.
이후 관련 질환 수는 45개로 늘었고, 2021년 기준 흡연 관련 진료비는 약 3조5천억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공단은 흡연자가 담배 한 갑당 841원의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내고 있으나, 비흡연자도 건강보험 가입자로서 간접적인 부담을 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흡연으로 발생한 재정 손실을 제조사가 일부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 법원 1심 기각 후 현재 항소심 진행 중
2020년 11월 1심 재판부는 공단의 청구를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은 흡연과 특정 질환 간의 역학적 상관관계는 인정하면서도, 개별 환자의 직접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담배 제품이 제조물책임법상 결함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담배회사들이 경고문 부착 등 관련 법적 의무를 이행해왔다는 점도 주요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공단은 즉각 항소했고,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항소심에서 공단은 특히 흡연 외 다른 발병 요인이 없는 환자군을 중심으로 개별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보건의료계는 공단의 소송에 지지 입장을 밝혀왔다.
먼저 지난 8일 국립암센터, 국립중앙의료원,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약사회 등 17개 단체가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흡연을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있다”며 “담배회사들이 여전히 인과관계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어 “흡연의 폐해는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라며, “흡연은 단순한 개인 선택이 아니라, 중독성과 유해성을 인지한 담배회사가 설계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대한폐암학회, 대한암학회 등 26개 학회도 별도의 성명을 통해 “이번 소송은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판단의 장”이라며 “국민 건강을 위한 현명한 판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계에 이어 보건의료 시민사회단체들도 공단의 담배소송에 대한 지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40여개 단체가 참여하는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지난 19일 공동 성명을 내고 “흡연으로 인한 국민 피해에 담배회사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담배의 중독성과 유해성을 소비자에게 충분히 고지하지 않은 점, 위험성을 알면서도 책임을 개인의 선택으로 전가하려는 담배회사의 행태를 문제 삼으며, “흡연으로부터 기본권인 국민건강권을 지키고 흡연의 폐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기 위해 제기된 공단의 담배 소송을 적극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 판결이 남길 여파…제도·정책 변화 기로
이번 항소심 결과는 국내 담배소송의 법적 기준을 재정립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건보공단이 승소할 경우, 흡연 피해에 대한 기업의 책임 논의가 본격화되고, 건강보험 재정 운영체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소송이 진행된 바 있다.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는 일부 담배회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으며, 이를 계기로 금연 정책 강화와 제품 경고 표시 확대 등이 이뤄진 바 있다.
국내 항소심 선고는 오는 22일 최종 변론 이후 확정될 예정이다. 이번 판결은 건강보험 재정과 기업 책임 사이에서 법원이 어디에 무게를 두는지를 가늠할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청년일보=신현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