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석구석: 공간에 새겨진 도시 변화의 서사> 시리즈는 서울의 역동적인 변화를 '공간의 재구성'이라는 프리즘으로 분석한다.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도시의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 그 현장의 모습과 변화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도시의 물리적 변화가 개인의 일상, 경제, 문화, 심지어 정치적 지형까지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살펴봄으로써,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 18번째 장소로, 1980년대 대규모 택지 개발을 거쳐 서울의 대표적인 교육 주거지로 자리 잡은 뒤 이제는 거대한 재건축 실험대에 오른 양천구를 조명한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양천(陽川). 볕이 잘 들고 냇물이 흐른다는 지명은 평화로운 농촌을 연상케 하지만, 1980년대 이전의 양천구 일대는 안양천의 잦은 범람으로 수해를 겪던 저지대였다. 비가 많이 오면 상습적으로 물에 잠기던 뚝방길 주변의 논밭은 1983년 '목동 신시가지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서울 서남권의 중심 주거지로 탈바꿈하는 전기를 맞았다.
1988년 강서구에서 분리된 양천구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김포공항에서 서울 도심으로 진입하는 길목의 미관을 개선하려는 목적과 주택 공급 정책이 맞물려 탄생한 계획도시다.
과거의 갈대밭 위로 1단지부터 14단지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아파트 숲이 조성되었고, 이 공간은 지난 40여 년간 서울의 특정한 주거 및 교육 문화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기능해 왔다.
◆ 사교육 인프라가 빚어낸 도시의 정체성, '교육 1번지'
양천구, 특히 목동을 설명할 때 '교육'을 빼놓을 수 없다. 강남구 대치동, 노원구 중계동과 함께 서울의 3대 학원가로 꼽히는 목동 학원가는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축이다.
목동 중심축을 따라 길게 늘어선 상가 건물들은 대부분 입시 학원과 보습 학원으로 채워져 있다. 우수한 학군과 밀집된 사교육 인프라는 자녀 교육에 관심이 높은 중산층 가구를 이 지역으로 끊임없이 유입시키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늦은 밤 학원 하원 시간에 맞춰 학생들을 태우려는 차량이 도로를 가득 메우는 풍경은 목동의 일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이는 도시의 물리적 공간이 거주민의 특정 라이프스타일과 결합해 어떻게 하나의 확고한 브랜드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교육 특구라는 명성과 별개로, 물리적 거주 환경은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1980년대 중후반에 지어진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14개 단지는 총 2만6천629가구 규모로, 시설 노후화와 심각한 주차 공간 부족 문제를 겪어왔다.
그러나 최근 정부와 서울시의 정비사업 규제 완화 기조에 발맞춰 14개 단지 전체가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하거나 정비구역으로 지정되는 등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6년 현재 목동 일대는 단순한 아파트 재건축을 넘어, 디자인 특화 단지와 덮개공원 조성 등을 통해 미래형 수변 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밑그림을 구체화하는 단계다. 이 거대한 하드웨어 교체 작업이 완료되면 양천구의 스카이라인과 생활 인프라는 또 한 번의 극적인 전환을 맞이할 전망이다.
◆ 학원가 불빛 이면의 그늘...신월동과 항공기 소음
목동 중심의 화려한 개발 청사진 이면에는 양천구가 풀어야 할 구조적인 과제가 존재한다. 양천구 면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신월동과 신정동 일부 지역은 목동 신시가지와 비교해 주거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실정이다.
특히 신월동 일대는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항공기 진입로 아래에 위치해 수십 년째 극심한 소음 피해를 겪고 있다. 고도제한으로 인해 고층 개발이 막히면서 노후 저층 빌라들이 밀집하게 되었고, 이는 자치구 내 불균형 발전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신월동 시영아파트에 17년간 거주한 A씨는 "고도제한 규제로 인근 정비사업이 사실상 멈춰 있는 상태"라며 "수십 년간 이어진 항공기 소음 피해에 더해 주거 환경 개선마저 제약을 받고 있어 지역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고 지적했다.
같은 양천구 안에서도 '목동'과 '비(非)목동'으로 나뉘는 보이지 않는 경계는 도시 계획이 낳은 명암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주거지와 단절되어 있던 안양천은 지속적인 수질 개선과 생태 복원 사업을 통해 양천구민들의 핵심 여가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 오염과 범람의 상징이었던 하천은 이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체육 시설을 품은 수변 공원으로 기능하며 고밀도 도심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양천구는 현재 도시 인프라의 전면적인 재편을 앞두고 있다. 목동 신시가지의 성공적인 재건축을 통해 낡은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과제는, 항공기 소음 지역의 주거 환경 정비와 교통망 확충을 통해 자치구 내부의 공간적, 심리적 격차를 줄이는 일이다.
1980년대 상습 침수지에서 교육 특구로 성장한 양천구가, 이제는 단절과 격차를 넘어 균형 잡힌 미래 도시로 진화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