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청년일보]](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50313/art_17427443080642_6dc958.jpg)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임원들에게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고 질책하며 사즉생(死卽生·죽기로 마음먹으면 산다는 뜻)의 각오를 다지라고 주문했다. 재계 안팎에선 이 회장의 이례적인 고강도 메시지를 두고 그만큼 삼성을 둘러싼 복합 위기 상황이 한층 심각해진 것으로 내다본다. 청년일보는 삼성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각계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풀어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上) "과대망상증 환자 조롱에도"…이병철 삼성 창업주, 반도체 '일편단심'
(中) "HBM 뼈아픈 실기에"…삼성 반도체, 30년 메모리 최강 입지 '위태'
(下) "어려울수록 미래 준비해야"…재계, 반도체 R&D 주 52시간 예외 '일성'
【 청년일보 】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강자' 타이틀을 획득하며 오랜 기간 견고함을 유지해왔지만 차츰 입지가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재계 안팎에선 인공지능(AI) 시장 확대로 급부상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주도권을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빼앗긴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를 둘러싼 '위기론'의 시발점이 AI 시대 고성능 메모리 수요 폭발을 미리 예측하지 못한 경영진의 판단 미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삼성 반도체 위기는 1차적으로 HBM 성장 잠재력을 과소평가해 지난 2019년 해당 연구개발팀을 축소한 것에 있다"면서 "당시엔 AI 반도체가 한창 뜨기 전이었는데 얼마 안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사이에 SK하이닉스는 HBM 연구개발(R&D)과 투자를 지속적으로 이어왔고 HBM 최대 수요처인 엔비디아에 사실상 제품을 독점 공급하며 시장 주도권을 이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해부터 엔비디아에 5세대 HBM인 'HBM3E' 8단·12단 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의 5세대 'HBM3E' 제품은 아직까지 엔비디아 퀄 테스트(품질검증) 통과하지 못해 두 기업간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핀란드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노키아는 과거 휴대전화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자리를 지켜오며 절대강자로 군림했지만 경영진이 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며 삼성전자와 비슷한 사례(?)를 언급했다.
오 소장은 "노키아는 애플에서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전에 이미 무선인터넷과 터치스크린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폰을 개발해놨지만 시장을 관망하다가 제품 출시의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면서 "시장을 선도할 제품 개발을 이미 끝내놓고도 기존 시장을 유지하려는 경영진의 결정적 판단 오류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밀려나고 만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황은 다르지만, 과거 노키아가 이미 터치스크린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폰을 미리 개발해놓고도 미래 시장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밀려난 것처럼, 지금의 삼성전자도 어떤 부분에서는 이와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19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차세대 반도체 시장 초기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경쟁력을 잃은 데 대해 과오를 인정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반도체사업 수장인 전영현 DS 부문장(부회장)은 "AI 반도체 시장의 초기 대응이 늦어 메모리 제품의 수익성 개선이 늦었다"면서 "올해 2분기부터 혹은 늦으면 하반기부터 HBM3E 12단으로 빠르게 전환해 고객 수요에 맞춰 램프 업(생산량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HBM3E는 올해 제품이고 다음 시장은 HBM4, 커스텀 HBM 시장"이라면서 "신시장에서 지난해 HBM3E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하반기 목표로 차질 없이 개발해 양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삼성전자 주가 부진의 핵심으로 반도체 성과를 꼽았다.
전 부회장은 "많은 주주분이 주가 부진에 대해 걱정해 주시고 있고, 사실 지금 주가의 많은 부분을 반도체 부문 성과가 좌우하는 것 같다"면서 "주가 부진으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삼성전자 주가는 8만원 후반대까지 올랐으나 같은해 10월 15일(종가 기준) 이후 5만원대에 머물렀다. 지난 20일엔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5개월 만에 6만원대를 회복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관계자는 "단순히 AI 반도체 타이밍 실기보단 지난해 2분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업황 자체에 대한 '피크 아웃'(정점에 이르렀다 하락세로 접어드는 시기)으로 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면서 "주가 부양을 위해선 엔비디아 퀄 테스트 문턱을 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비단 HBM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부문에서도 역시 경쟁력 약화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8.1%로 전 분기(9.1%) 대비 1.0%p 하락했다. 반면 TSMC의 시장 점유율은 64.7%에서 67.1%로 2.4%p 상승했다.
이처럼 양사간 점유율 격차가 무려 59.0%p인 만큼, TSMC와의 간극을 단시간 내 좁히기에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오히려 중국의 파운드리 업체인 SMIC의 추격을 허용할 또 다른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4분기 SMI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5%로 삼성과 점유율 격차는 2.6%p에 불과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공정의 수율(양품비율)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력 역시 뒷받침 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탁월한 인재 영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