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미국 정부가 중국산 선박에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한국 조선업계가 수혜를 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해운사들이 비용 부담을 피하기 위해 중국산 선박 비중을 줄이고, 기술력과 신뢰성을 갖춘 한국 조선사에 발주를 늘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17일(현지시간), 중국 해운사 및 중국산 선박 운영사, 외국에서 건조된 자동차 운반선 등을 대상으로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자국 조선업 재건' 정책 기조를 반영한 조치로 풀이된다.

중국 조선업계는 오랜 기간 저가 수주 전략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해 왔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은 전 세계 수주량의 71%에 달하는 4천645만 CGT(표준선 환산톤수, 1천711척)를 수주한 반면, 한국은 17%인 1천98만 CGT(250척)를 수주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번 조치로 중국의 가격 경쟁력이 타격을 입게 되면서, 고부가가치 선박에 강점을 가진 한국 조선소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이 경쟁력을 보유한 LNG(액화천연가스), LPG(액화석유가스), 에탄 운반선 등에서 수주 확대 가능성이 점쳐진다.

IBK투자증권은 "2028년까지 미국발 LPG 물동량이 글로벌 전체의 60%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LPG 운반선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인 한국 조선업체들이 과점 체제를 강화하면서 수익성도 함께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에탄 운반선도 LNG 선박에 준하는 수익성을 보일 수 있어 한국 조선업의 이익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초부터 이러한 긍정적 흐름은 이미 감지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그리스 해운 재벌 에반겔로스 마르나키스가 이끄는 캐피탈마리타임은 HD현대삼호중공업 및 HD현대미포조선과 총 20척 규모의 선박 건조 계약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에는 8천800TEU급 컨테이너선 6척, 2천800TEU급 8척, 1천800TEU급 6척이 포함되며, 총 계약 규모는 약 15억5천만달러(약 2조2천억원)에 달한다. 업계는 해당 계약이 미국의 수수료 부과 정책을 의식한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 미국의 정책 변화는 이미 중국 조선업의 실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선 전문 매체 '트레이드윈즈'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 조선사들이 수주한 벌크선은 13건에 불과해 1993년 이후 가장 적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 143건과 비교하면 90% 이상 급감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입항 수수료가 현실화된 만큼, 선사들이 중국 업체와 체결한 초기 계약을 철회하거나 재조정할 가능성도 존재해 조만간 선사들이 중국산 선박 비중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일각에서는 선사들이 중국산 선박을 항로 간 재배치하거나, 법인을 분리하거나, 얼라이언스를 통한 선박 교환(스와프) 등을 통해 수수료를 우회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당선인 신분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의 우수한 조선 능력을 잘 알고 있다"며 "미국의 선박 수출 및 정비(MRO) 분야에서도 한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후 조선업은 반도체, 자동차 등 다른 산업과 달리 대미 통상 전략에서 한국의 경쟁 우위를 보여줄 수 있는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 권한대행은 지난 16일 울산 HD현대중공업을 방문해 "한미 양국이 조선업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한다면, 이는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될 뿐 아니라 한국 조선 산업의 재도약을 이끌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