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대한민국 공군은 창군 70주년을 맞아 국민과 함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기 위해 10월 19일(토), 서울 ADEX 2019 행사장에서 원인철 공군참모총장 주관으로 '공군 창군 7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이번 기념식에는 6·25전쟁 출격조종사, 역대 공군참모총장, 케네스 윌즈바흐(Kenneth S. Wilsbach) 미7공군 사령관, 6·25전쟁 참전국 대사 및 주한무관 등이 참가하여 개식사, 국민의례, 국민조종사 임명식, 기념사, 축사, 축하비행, 폐식사 순으로 진행된다.
축하비행에는 F-15K, KF-16, FA-50, KA-1, C-130, CN-235 등 공군이 보유한 항공전력과 미공군 F-16 전투기가 함께 참가한다.
국민조종사 임명식에서는 창군 70주년을 맞아 공군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고 국산 항공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선발한 ‘제7기 국민조종사’ 7명을 임명한다.
국민조종사는 대한민국 영공을 수호하는 공군의 임무를 국민들에게 소개하고 국민이 직접 공군 국산항공기를 타고 공군조종사의 비행임무를 체험하는 제도이다. 올해는 공군 창군 70주년을 맞아 기존 4명에서 7명으로 선발인원을 확대해 8월 10일(토)부터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응모를 진행했다.
선발된 7인은 19일(토) 오전 서울공항에서 공군이 운용하는 국산항공기 T-50, FA-50으로 각각 비행탑승을 실시한다.
특히, 공군 창군 70주년을 기념하여 1951년 창설된 최초의 전투비행부대이자 6.25전쟁 당시 주요한 항공작전을 실시한 강릉기지와, 1953년 창설되어 한국공군 최초 제트전투기 F-86을 운용한 수원기지 인근 상공을 비행한다. 또한, 독립기념관 상공을 비행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함께 기념한다.
국민조종사들은 비행 중 급격한 중력의 변화와 함께 공대공 상황을 경험하는 ‘공중전투기동’ 등 실전 같은 훈련을 직접 체험하며 공군 전투조종사의 높은 임무강도를 체험했다. 임명식에서는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이 공군조종사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직접 수여하며 국민조종사에 임명한다.
제7기 국민조종사에는 ▲독도경비대에서 의무복무 중 지난 7월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 시 공군의 단호한 대응을 보고 공군이 자랑스러워 국민조종사에 지원한 김광진 상경(만 21세), ▲함께 일하는 동료 집배원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 국민조종사에 지원한 장영수 우체국 집배원(만 48세), ▲우리 기술로 만든 항공기로 조국 영공을 지키는 공군을 미술작업으로 전달하고 싶어 국민조종사에 지원한 한미주 미술 작가(만 56세) 등 7명이 선발되었다.
공군은 이번 창군 70주년 기념행사를 페이스북 '대한민국 공군' 페이지를 통해 생방송 예정이다.
청년일보는 창군 70주년을 맞는 대한민국 공군이 어떤 역사를 갖고 태동 했는지 살펴봤다.
대한민국 공군은 1910~20년대 일제로부터 잃어버린 주권을 찾기 위해 국내·외에서 진행된 '독립운동'에서 그 맥(脈)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상해 임시정부 안창호 선생의 항공기 구입 시도와 미국 켈리포니아주에 한인 비행학교(윌로우즈)를 설립한 것 등이 '항공독립운동'을 위한 실제적인 활동이었으며, 비행사 양성은 한인이 세운 비행학교와 중국/소련의 비행학교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920년대에 양성된 한인 비행사들 중 일부는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비행병 참위(현, 소위)에 임명되었으며, 일부는 중국 국민정부 항공대 창설 멤버 및 중국 공군 항공대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1930년대에는 한인 비행사들이 중국 항공대 일원으로 중일전쟁에 참가하여 항일운동을 계속하였다.
1944~1945년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공군설계위원회를 결성하고 '한국 광복군 비행대' 창설을 준비하는 등, 공군 건설에 노력하였으며 미군과 합동작전을 펼쳐 한반도로 진격하는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였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무산되었다. 국내진공작전에 대한 아쉬움을 가진 임시정부 광복군은 1945년 8월 18일 정진대(挺進隊)를 앞세워 C-47 항공기를 이용하여 중국 서안(西安)에서 한국의 여의도 비행장으로 비행하였으며 항복한 일본군과 대치하여 일촉즉발 직전까지 돌입하기도 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해외에서 활동하던 항공인들이 국내로 귀국하여 민간 항공단체를 결성하고 항공사상 보급 및 활동이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러나 민간단체의 활동만으로는 국방의 일익을 담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항공인들에 의해 '한국항공건설협회'가 결성되고 미군정 및 통위부(현, 국방부)에 항공부대 창설을 건의, 1948년 3월 '경항공기부대' 창설을 승인받아 5월 5일 통위부 직할부대로 항공부대가 창설되어 대한민국 공군이 탄생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고, 1948년 9월에는 미군으로부터 L-4항공기를 인수하여 한국군 최초로 항공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1948년 11월 국군조직법 제정되던 당시에 육군과 해군은 정식으로 창설되었으나 공군은 창군되지 못하고 공군 독립 근거(국군조직법 제23조)를 마련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이후 항공부대의 계속적인 발전과 함께 공군의 창군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한 결과, 1949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254호(공군본부직제)에 의거하여 공군이 탄생되었다.
【 청년일보=정준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