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이 공개한 삼일절 특별 영상 ‘우리가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한 장면. [사진=KB국민은행]](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50209/art_17407230792399_b53789.jpg)
【 청년일보 】 제106주년 삼일절을 맞은 가운데, 각 업계마다 역사의식과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각종 캠페인이 눈길을 끌고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 시절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1세대 창업주들의 과거 행보 역시 업계 안팎으로부터 재조명받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독립운동 기념사업 '대한이 살았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독립 영웅들의 숨겨진 이야기' 영상을 지난 2020년부터 꾸준히 제작해 오고 있다.
올해에는 삼일절을 맞아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함께 열다섯 번째 영상 '윤동주' 편을 기획했다. 지난해 KB국민은행과 자립 준비청년 사회공헌 활동을 함께한 배우 김남길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이번 영상은 일제 강점기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윤동주의 삶을 조명했다.
윤동주(1917~1945)는 27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특유의 감수성과 독립에 대한 소망을 담은 작품들로 한국 문학사와 독립 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영상을 통해 윤동주의 생애와 고뇌, 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알 수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광복절에 공개한 '이육사' 편에 이어 이번 영상 제작에도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했다. 흑백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윤동주 시인의 과거 모습을 영상으로 구현해 생동감과 몰입도를 높였다.
KB국민은행 관계지는 "윤동주 시인의 서거 80주기를 맞아 그의 독립정신을 다시 한번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자 영상을 기획했다"면서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잊혀져 가는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라면세점은 삼일절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는 고객을 대상으로 구매금액의 1%를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기부하는 '여행하며 기억하다, 쇼핑하며 나누다' 기부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여행하며 기억하다, 쇼핑하며 나누다'는 삼일절 연휴 맞이 여행을 떠나는 고객들이 삼일절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면세 쇼핑도 즐기고 기부도 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이번 프로모션은 지난달 19일부터 시작해 오는 3일까지 신라면세점 인천공항점에서 진행된다.
구매 전 신라인터넷면세점에서 '삼일절 바우처'를 제공받아 인천공항점에서 사용하면 자동으로 구매금액의 1%가 기부되는 방식이다.
신라면세점은 삼일절 바우처로 발생한 고객 전체 구매금액의 1%를 독립유공자 후손의 주거개선 지원에 쓰일 수 있도록 국제 주거복지 비영리단체 '한국해비타트'에 기부할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오늘날 ESG 경영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은 만큼, 기업들은 독립유공자 후손 지원 등 ESG 선도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삼일절을 맞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뛰어들거나 지원을 한 창업주들의 과거 행보도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유한양행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1895~1971)가 있다.
1904년 불과 9세의 어린 나이에 미국 유학을 떠난 유 박사는 청소년 시절을 보낼 때부터 조국 현실에 눈을 떴다. 14세였던 1909년 독립군 양성을 위해 미국에 설립한 한인소년병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평소 애국심이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1940년대 일제의 진주만 폭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이후 유 박사는 미국 전략정보처(OSS)의 한국 담당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특히 1945년, 50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냅코 작전' 참여를 통해 광복에 대한 투철한 의지를 보여줬다. '냅코 작전'이란 재미한인을 한국 내 특수공작원으로 침투시켜 일본에 대한 정보수집 및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OSS의 작전 계획이다.
또한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1907~1969) 역시 조국 독립을 갈망했다. 구 회장은 일제의 감시가 심했던 1942년 중경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독립운동가로 지명수배를 받고 있던 백산 안희제 선생에게 거금 1만원을 지원했다. 당시 '구인상회'라는 포목점을 경영하고 있던 구 회장으로서는 선뜻 자금을 지원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제로부터 독립자금을 지원한 일이 발각될 경우 사업기반은 물론 집안까지 풍비박산 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 회장은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당할 때 당하더라도,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살리자는 구국의 청에 힘을 보태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해 위험을 무릅쓰고 1만원을 독립 자금으로 내놨다.
【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