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5년 상반기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0.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는 지난 2월 제시한 1.6% 전망에서 불과 석 달 만에 절반 수준으로 낮춘 것으로, 국내 주요 싱크탱크 중 처음으로 0%대 전망치를 제시한 것이다.

 

KDI는 1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상반기와 하반기 성장률을 각각 0.3%, 1.3%로 전망하며 연간 성장률을 0.8%로 제시했다. 이는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평균 전망치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국내 정책기관의 관측으로는 이례적인 비관적 시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2월 전망 당시에는 미국의 관세 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며 "소비심리 회복 지연과 건설 부문 공사 차질 등 복합적인 대내외 악재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KDI에 따르면, 대외 요인은 성장률 전망을 0.5%포인트(p) 끌어내렸고, 내수 부진은 0.3%p의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번 전망은 미국이 중국에는 30%, 캐나다·멕시코에는 25%, 기타 국가에는 10%의 기본 관세를 부과하고, 철강·알루미늄 등 주요 품목의 현행 관세 수준을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산출됐다.

 

◆ 건설·소비·수출 '트리플 부진'…반도체 호조에도 역부족

 

KDI는 내수 부진이 여전히 뚜렷하다고 진단했다. 숙박·음식업 등 서비스 소비가 둔화되고, 기업 투자심리도 위축되면서 전반적인 내수 회복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건설투자는 지난해 -3.0%에 이어 올해도 -4.2%로 2년 연속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설비투자는 반도체 수요 회복에도 불구하고 1.7% 증가에 그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민간 소비는 1.1% 증가에 머물며, 고용시장도 둔화돼 취업자 증가폭이 지난해 16만명에서 올해 9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수출 역시 어려움이 예상된다. 반도체 수요 회복에도 불구하고 여타 산업의 부진이 이어지며 상품 수출은 연간 기준 0.4%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상반기에는 -0.7%, 하반기에는 -0.2%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KDI는 향후 금리 인하와 소비심리 개선, 건설 수주 증가 등이 내수 회복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 물가 안정세…금리 인하 가능성도

 

소비자물가는 유가 하락과 경기 둔화에 따라 올해 1.7% 상승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근원물가 상승률도 1.8%에 머무를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KDI는 "완화적 기조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지 않는 이상 추가경정예산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며, 금리의 경우 올해 추가 인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시장의 해석과도 맞닿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언급하며, 오는 29일 수정 전망에서 대폭 조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 재정 지출 신중론…통상 갈등이 최대 리스크

 

KDI는 경제전망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통상 갈등'을 지목했다. 미국의 고율 관세 조치가 장기화되고, 상대국의 보복관세로 이어질 경우 글로벌 교역환경의 불확실성이 급증해 한국 경제에 추가적인 하방 압력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KDI는 재정정책에 대해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해 추가 지출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잠재성장률 하락과 국민연금 지급보장 법제화 등 향후 재정 부담 요인을 고려한 사전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 시스템은 현재 안정적인 상태로 평가되나, KDI는 "생존 가능성이 낮은 부실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은 자제하고, 거시건전성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월 2.0%에서 지난달 1.0%로 낮췄고, OECD와 아시아개발은행(ADB)도 각각 1.5%의 전망을 내놨다. 한국은행은 1.5%, 정부는 1.8%의 전망치를 유지 중이지만 조정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하향 조정에 동참했다. 골드만삭스, 시티,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주요 IB 8곳의 평균 성장률 전망은 4월 말 기준 0.8%로 떨어졌다. 이는 KDI의 전망과 일치하는 수치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