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일보】 노동계가 대규모 총파업 돌입을 전격 선언하면서 한국 경제가 처한 위기 상황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노정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시장 개혁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을 둘러싸고 극한대립이 연말까지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 영향으로 국내 경제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노동계의 연이은 도미노 파업까지 겹치면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이 안게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2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정부의 공공기관 인력감축 등에 반발해 23일부터 내달 2일까지 공동파업에 돌입한다.
앞서 지난 15일 공공운수노조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 파업은 잘못된 정부 정책의 물줄기를 올바르게 바꾸고, 국가책임과 국민안전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이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주로 ▲사회적 참사·중대재해 철저한 원인 규명과 근본적 대책 수립 ▲안전 위한 법제 개정 및 규제 강화 ▲공공부문 구조조정 중단·안전 인력 충원 ▲공공부문 민영화 중단·공공성 강화와 국가 재정 책임 확대 등의 4가지 요구사항을 내놨다.
이번 공동파업에는 서울교통공사노조, 의료연대본부, 철도노조, 화물연대본부 등 13개 단위에서 조합원 10만43331명이 참여한다. 첫 날인 23일엔 인천공항, 건강보험고객센터를 시작으로 14개 사업장에서 파업이 예정돼 있다.
또한 민주노총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도 정부와 국회에 안전운임제 전면 확대를 요구하면서 오는 24일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지난 6월 화물연대가 8일간 총파업을 나선 후 5개월 만이다.
안전운임제란 과로·과속 등을 막기 위해 화물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하고, 고시보다 낮은 운임을 지급할 경우 화주에게 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다.
이는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운임을 높여 과당경쟁을 막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3년 일몰제로 도입됐으며 오는 12월31일 폐지를 앞두고 있다.
화물연대는 크게 ▲안전운임 제도 개악 저지 ▲일몰제 폐지 ▲안전운임제 차종·품목 확대 등을 정치권에 요구하면서 파업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같이 화물연대가 5개월 만에 총파업을 재개한 배경에 두고 일각에선 6월 총파업 철회 조건으로 합의한 내용이 안전운임제 일몰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여전히 제자리 걸음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당시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의 합의문에서 ▲국회 원 구성이 완료되는 즉시 안전운임제 시행 성과에 대한 국회 보고 ▲ 컨테이너·시멘트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 및 품목 확대 등 논의 ▲최근 유가 상승에 따른 유가보조금 제도 확대 검토 및 운송료 합리화 등 지원·협력 ▲화물연대 즉시 현업 복귀 및 국토부의 화물차주 협업 복귀 최대한 노력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에 산업계는 총파업 돌입 시 금전적 타격이 사실상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6월 파업 당시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주요 업종에서 총 1조6000억원 상당의 생산, 출하, 수출에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아울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등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의 임금격차 해소를 요구하며 오는 25일 하루 총파업을 진행한다. 이에 정상적인 급식·돌봄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30일과 내달 2일에는 서울교통공사 및 철도 노조가 총파업을 한다고 선언하면서 시민들의 불편이 예상된다. 앞서 서울교통공사 측은 오는 2026년까지 정원의 10%에 달하는 인력 1539명을 줄이는 감축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반발한 노조는 재정난을 이유로 인력감축을 추진하는 건 부당하다고 표명했다. 서울시와 교통공사 측이 인력감축 계획안을 중단하지 않으면 오는 30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밖에 철도노조 역시 최근 발생한 경기 의왕시 오봉역 사망사고의 원인이 ‘인력부족’이었다고 지적하며 근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전면 총파업을 선언했다.
이들은 ▲인력충원을 통한 수송원 3인1조 입환작업(차량의 분리·결합·전선) ▲안전한 작업통로 설치 및 조명탑 추가 설치 통한 작업환경 개선 ▲주요 철도기지 입환작업 실태조사 및 근본 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정부에 요구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21일 청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고물가 등의 여파로 대다수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같은 총파업은 적시에 맞지 않다”면서 “그에 따른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이 안게 되고 경제 파고(波高)를 극복하기 위한 모든 경제주체들의 노력이 긴요한 시점이다”고 언급했다.
한편 재계 내에선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입법 논의가 본격화된 가운데, 향후 입법의 문턱을 넘느냐 못 넘느냐 결과에 따라 노조의 투쟁강도가 더욱 거세질 것이란 예측도 제기된다. 만일 입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노동계의 동투(冬鬪)와 노정 갈등이 극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의 불법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의 내용이 담겼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재계에선 해당 법안이 제정될 시 산업계 전반에 노조의 불법행위가 만연할 뿐만 아니라 국내 경제의 근간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와 달리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관련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12월10일) 내에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팽팽한 줄다리기 구도를 이어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되지 않을 뿐더러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고 불법 파업을 조장할 공산이 크다”면서 “노조가 원하는 노란봉투법이 입법 통과가 안될 경우 투쟁 동력은 한 층 강화될 것이고 양당·노사 간의 접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일보=이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