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정부와 건설업계가 일부지역의 낮 최고 기온이 30도에 육박하고 올해 첫 태풍 '에위니아'가 발생하는 등 혹서기 자연재해 예방을 위한 건설현장 안전관리에 고삐를 죄고 있다.
특히 정부는 대규모 건설현장(800억원 이상)의 경우 사계절 중 여름철에 사고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사고 예방을 위한 노력에 각별한 당부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정부와 기업들이 내놓은 각종 안전대책에 대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며 안전대책에 대한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29일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가 지난해 말 내놓은 '산업재해 현황분석'에 따르면 지난 2022년에 발생한 건설업 산업재해 사고 총 3만1천245건 중 여름철에 해당하는 6~8월 중 발생한 재해자는 총 8천211명이다. 이는 전체의 26.3%를 차지하는 수치다.
월별 재해 건수와 비율은 폭염이 절정에 다다른 8월이 11월(3천187건, 9.45%)에 이어 2천931건·9.2%로 가장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건설안전분야 한 전문가는 "습도가 높은 여름철에는 감전 재해 위험이 증가하고, 더위로 인한 작업자들의 온열질환 발생이 늘어나는 등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다"며 "또한 집중호우시 지반약화에 따른 시설물 붕괴위험과 강풍으로 인한 타워크레인 무너짐 등 다양한 재해요인이 있어 특히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노동부는 대표적 여름철 산업재해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온열질환 사고 예방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노동부는 체감온도 31도 이상 '관심' 단계에선 근로자에 물·그늘·휴식 등을 제공하고, 33도 이상 '주의' 단계에선 매시간 10분씩 휴식과 오후 2∼5시 무더위 시간대 옥외작업 단축 등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체감온도 35도가 넘어가는 '경고' 단계에선 매시간 15분 휴식과 무더위 시간대 옥외작업 중지(불가피한 경우 제외), 38도 이상 '위험' 단계에선 긴급조치 등을 제외한 옥외작업 중지를 권고했다.
이 같은 폭염 영향예보는 노동부 지방관서에 전달돼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중대재해 사이렌', 건설공제회 근로자 전자카드 등을 통해 근로자들에게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노동부는 휴식과 옥외작업 단축·중지 권고 조치가 잘 지켜질 수 있게 기온과 혼용됐던 온도 기준을 '체감온도'로 일원화하고, QR코드 등으로 체감온도 계산기를 제공한다. 아울러 사업장들이 권고를 잘 이행하도록 적극적으로 지도한다는 방침이다.
건설업계도 매년 정기 안전검검을 통해 혹서기 온열질환 예방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표이사나 최고안전책임자(CSO)가 사고 예방을 위해 직접 현장을 방문하는 사례도 적지않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는 정부나 기업의 이같은 권고성 대책이 현장에서는 제대로 준수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즉 공사기간에 민감한 건설사들이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건설현장의 한 근로자는 "정부가 내놓은 지침은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이 없어 공기에 민감한 건설사들이 이를 무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건설노조 한 관계자도 "건설노조가 탄압받고 있는 국면에서 근로자들이 '더워서 못하겠다', '휴게시설을 설치해 달라'는 등의 요구를 쉽사리 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실제로 이 같은 요구를 한 근로자가 해고를 당한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 옥외 작업 중지의 기준으로 활용되던 기온이 체감온도로 바뀐지는 3~4년이 지났다"면서 "이를 마치 새로운 대책인양 내놓은 것은 터무니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1월 11일 국회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최로 열린 노동안전보건 세미나에서는 폭염기 휴게실을 요구했다가 해고를 당한 사례가 현장 노동자 증언의 형태로 알려지기도 했다.
건설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5월 말 경기도 고양시 소재 아파트 현장에서 근무한 채 모 조합원(이하 채 모씨)은 시공사 측에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휴게실 설치를 건의했으나 시공사 측은 이를 묵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발한 채 모씨는 6월 말 언론에 이를 제보했으나 건설사는 돌연 채 모씨가 소속된 팀 전원을 계약해지했다. 이후 채 모씨를 제외한 타 팀 인원들은 다시 고용되었고, 해당 지방노동위원회에서도 채 모씨가 휴게시설설치 요구로 인해 해고되었다는 것을 일부 인정해 화해권고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노동계에서는 폭염 대책의 법제화가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현장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최소한의 안전이며 지금처럼 권고 수준에 머무를 경우 속도전에 급급한 건설사들은 이를 귀담아듣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옥외 사업장을 두고 있는 여러 연맹은 폭염 대책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노동부는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노동부가 지난해 발표한 최근 5년간(2018~2022년) 여름철 온열질환으로 산업재해를 입은 근로자는 152명으로, 이 중 23명이 사망했다.
【 청년일보=최철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