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할랄은 선택이 아닌 존중었습니다."
K-뷰티의 글로벌 확장은 이제 '유행'의 단계를 넘어 '구조'의 싸움으로 접어들었다. 단순히 한국에서 잘 팔리는 제품을 해외에 들고 나가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문화와 종교, 소비 윤리, 유통 환경까지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지속 성장은 어렵다.
이 같은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비교적 짧은 업력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기업이 있다. 프리미엄 비건·할랄 스킨케어 브랜드 '엘솔레(LSOULLE)'를 전개하는 '래이디케이'다.
래이디케이는 지난 2022년 8월 국내 법인 설립 이후, 이듬해 곧바로 말레이시아 현지 법인을 세우며 '현지화'를 전제로 한 해외 진출 전략을 택했다.
김민정 대표는 "할랄은 인증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존중"이라고 말한다. 지난달 5일 청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신뢰'와 '현지 맞춤'을 반복 강조했다.
◆ 은행원에서 K-뷰티 CEO로…"사업의 본질은 사람의 마음"
김 대표의 커리어는 현재 그가 전개하는 사업을 고려하면 다소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는 화장품 업계계가 아닌 금융권, 정확히는 은행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이 경력이 오히려 현재의 사업을 떠받치는 핵심 자산이라고 말한다. 은행원 시절 그는 신입 임원임에도 불구하고 펀드 판매 실적 상위권을 기록할 정도로 성과를 냈다.
그 비결에 대해 김 대표는 '상품 이해'보다 '신뢰'를 먼저 꼽았다. 그는 "결국 사람은 사람을 보고 결정한다"며 "이 사람이 나를 존중하는지, 이 사람이 믿을 만한지, 금융이든 화장품이든 본질은 같다"고 말했다.
이 경험은 창업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래이디케이는 시작부터 외부 투자 유치를 병행했고, 초기 투자자 상당수가 화장품 산업과 금융 분야에 이해도가 높은 전문 투자자였다.
김 대표는 "투자자들도 할랄·비건이라는 키워드보다, 이 시장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강조하는 '신뢰'는 소비자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투자자, 파트너사, 현지 유통사까지 모두 같은 선상에 놓인다. 이는 이후 래이디케이가 선택한 사업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 엘솔레, '할랄·비건 이중 인증'이 만든 '경쟁력'
래이디케이의 핵심 브랜드 엘솔레는 K-뷰티 브랜드 중에서도 드물게 할랄·비건 이중 인증을 동시에 확보했다. 단순히 원료 일부를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제조 공정·원료 조달·패키징 전반을 기준에 맞춰 설계했다. 제조는 한국콜마가 담당해, 품질 안정성과 글로벌 기준을 동시에 확보했다.
김 대표는 이 선택을 '전략' 이전에 '존중'이라고 표현한다. 무슬림 시장에서 할랄은 기능이나 마케팅 포인트가 아니라 생활 전반에 스며든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는 "할랄을 단순히 인증 마크로 접근하면 바로 들킨다"고 말했다.
엘솔레의 제품군은 미스트 토너, 세럼, 크림, 선스크린 등 기본 스킨케어 라인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임상 데이터 역시 공격적으로 확보했다. 대표 제품인 모이스처라이징 미라클 미스트 토너는 1회 사용 직후 피부 수분량이 177% 이상 증가했고, 세럼은 2주 사용 후 기미 개선 효과가 112% 이상 확인됐다.
이 같은 수치는 단순한 홍보 문구가 아니라, 현지 유통사와의 협상 과정에서도 중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됐다. 기능과 윤리 기준을 동시에 충족하는 브랜드라는 점에서 엘솔레는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경쟁력을 구축했다.
◆ "현지 법인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말레이시아에 '답'이 있었다
래이디케이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해외 진출 방식이다. 수많은 K-뷰티 스타트업이 총판이나 에이전시를 통해 해외 시장을 시험하는 것과 달리, 래이디케이는 초창기부터 말레이시아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김 대표는 이를 두고 "딥 다이브를 하지 않으면 답이 안 나온다고 판단했다"고 회상했다.
현지 법인 설립은 비용과 리스크가 크지만, 대신 시장을 '안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래이디케이는 현지 인력을 적극 채용했고, 팀 내 외국인 비중도 높다.
김 대표는 "언어보다 중요한 건 맥락"이라며 "현지 소비자의 감정선과 생활 리듬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략은 마케팅 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엘솔레는 대형 글로벌 인플루언서보다는 지역 기반 메이크업 크리에이터, 생활 밀착형 인플루언서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현재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약 2천명 규모의 인플루언서 풀을 확보했다.
김 대표는 "현지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브랜드는 수출 숫자가 아무리 커도 오래 못 간다"고 단언했다. 이 발언은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다시 한 번 강조된 메시지였다.
◆ 면세점·항공기·라이브커머스까지…유통 전략도 '현지형'
래이디케이의 성과는 유통 채널에서도 확인된다. 국내에서는 롯데면세점 명동점과 제주점에 입점했고, 현대백화점 비클린 팝업스토어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화해' 플랫폼에서는 2023년 신제품 베스트 어워즈를 수상하며 제품력도 검증받았다.
해외에서는 동남아 최대 항공사인 에어아시아 기내 판매와 면세점 입점이라는 상징적인 성과를 거뒀다. 항공기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판매된다는 점은 브랜드 신뢰도의 간접 지표로 작용한다.
온라인에서는 틱톡, 쇼피(Shopee), 라이브커머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말레이시아 틱톡 라이브는 단순 판매 채널을 넘어, 브랜드 스토리와 사용 경험을 전달하는 핵심 접점으로 자리 잡았다.
김 대표는 유통 전략에서도 '현지 맞춤'을 반복해서 언급했다. 그는 "국가별로 잘 팔리는 포맷이 다르고, 소비자가 기대하는 설명 방식도 다르다"며 "이를 무시하면 재고만 쌓인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러한 글로벌 확장 전략은 외부 평가에서도 성과로 이어졌다. 래이디케이는 지난해 말 '코리아스타트업포럼 IR DAY: THE PITCH'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이 행사는 Seed~Pre-A 단계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시장성, 성장 가능성, 실행력을 종합 평가하는 자리로, 엘솔레의 할랄·비건 기반 글로벌 유통 전략과 동남아 시장 내 실질적 성과가 높게 평가받았다.
◆ 투자자들이 보는 래이디케이의 가치…"이건 돈 벌 회사"
인터뷰 도중 김 대표는 투자 유치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할랄·비건이라는 키워드를 처음 들은 투자자들이 "이건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점은, 투자자들이 단순히 트렌드로서 할랄 시장을 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 대표는 "이미 글로벌 브랜드들의 성공 사례를 충분히 공부한 분들이었다"고 설명했다. 즉, 래이디케이는 '유행을 쫓는 회사'가 아니라 '검증된 공식을 자기 방식으로 재해석한 회사'로 인식됐다.
재무 수치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기 어렵다는 전제를 깔면서도, 김 대표는 "지금 단계에서는 매출보다 구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지 법인, 인증 체계, 제조 파트너십, 유통 채널까지 갖춘 구조 자체가 기업가치라는 설명이다.
그는 "주주들과 함께 돈을 벌되, 무슬림 국가에서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 싶다"는 표현을 썼다. 단기 회수보다는 장기 신뢰를 중시하는 태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 "모두를 위한 아름다움"…엘솔레가 그리는 다음 5년
엘솔레의 브랜드 철학은 'Clean Beauty Has No Border'다. 종교·성별·국가를 넘어 모두를 위한 클린 뷰티를 지향한다는 메시지다. 이는 할랄·비건이라는 기준을 특정 집단을 위한 특수성으로 보지 않고, 글로벌 스탠다드로 끌어올리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향후 계획 역시 이 철학 위에 놓여 있다. 김 대표는 동남아를 넘어 중동, 유럽 일부 국가까지 단계적으로 진출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속도보다는 완성도를 우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제품 측면에서는 스킨케어 라인을 중심으로 하되, 더마 케어와 베이비 세이프 제품군을 강화할 계획이다. 실제로 엘솔레 선스크린은 '눈 시림 없음', '영유아 사용 가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만족도 100%를 기록했다.
인터뷰 말미에 김 대표는 "래이디케이가 기억되길 바라는 모습은 단순히 잘 팔리는 브랜드가 아니다"며 "현지 문화를 존중했고, 고객과 신뢰를 쌓았고, 그래서 오래 남은 회사"라고 그가 그리고 있는 래이디케이의 미래에 대해 밝혔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