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항에 세워져 있는 수출용 자동차 뒤로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50833/art_17551552904295_cf860a.jpg)
【 청년일보 】 올해로 광복 80주년을 맞는 가운데, 일제의 수탈과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짧은 시간내 재건한 재계 1세대 창업주들의 '기업가 정신'이 재조명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35년간(1910~1945) 이어진 일제의 식민통치를 벗어나 주권을 회복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으로 또 다시 시련을 겪었다.
폐허가 된 국토로 우리나라은 세계 최빈국으로 평가를 받았지만, 짧은 시간에 고도의 경제 성장을 통해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재계 안팎에선 1세대 창업주들의 불굴의 도전 정신이 지금의 선진국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사람이 모든 것이다. 기업도 사람이고 국가도 사람이다"를 경영 철학으로 삼으며 '인재제일(人材第一)' 기업가 정신을 강조했다.
실제로 그의 자서전인 호암자전에는 "경영자로서 내 인생의 80%는 인재양성에 쏟아왔고, 인력에 대해서만은 아낌없는 투자를 해오고 있다"고 나온다.
이같은 투자의 일환으로 지난 1982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기업연수원 삼성인력개발원(옛 삼성종합연수원)이 대표적이다. 삼성그룹 내에선 이곳은 소위 '인재 양성 산실'로 부르기도 하며,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차세대 핵심 인력을 양성했다.
또한 이병철 창업주는 혈연·지연·학연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능력' 위주의 인사를 구현했다. 앞서 삼성은 1957년 국내 최초로 공개채용 제도를 도입했는데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보면 굉장히 혁신적이었다는 것이 재계 중론이다.
재계 내에선 이러한 인재 경영 철학 덕분에 삼성이 초일류 기업 등극과 경제 성장의 주역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며, 현재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또한 현대그룹의 창업자이자 한국경제 발전의 상징적인 인물로 꼽히는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 역시 기업가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익히 알려져 있다.
특히 "이봐 해봤어?"라는 어록은 누구나 한번쯤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다. 1970년대 당시 조선소를 짓겠다고 하자 주변에선 경험과 기술력이 부족한 한국에서 조선소 건립은 무리라며 반대했지만 이를 반문한 것이다.
이러한 개척정신으로 세계 최대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조선업체 '현대중공업'이 탄생했고, 정 명예회장은 세계 최고의 조선대국을 일군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밖에 LG그룹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의 기업가정신은 크게 '인화(人和)단결·개척정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LG그룹의 사훈이기도 한 '인화단결'은 구인회 회장 때부터 4대째 이어져오고 있는 오래된 철학이다.
이는 창업 당시 회사가 작아 주로 가까운 사람과 회사 운영을 하는 상황에서 서로 신뢰하며 맡은 바 책임을 다하자는 정신에서 비롯됐다.
'개척정신'은 전자와 화학산업을 개척한 데서 비롯됐다. 1947년 1월 구 회장은 LG그룹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해 '럭키표크림'을 생산하는 등 화장품업계 1인자로 등극했다. 그 외에 치약, 식기 등의 생필품을 만들며 국민생활 향상에 한 몫 기여했다.
이후 1957년 구 회장은 화학 업종뿐만 아니라 전자공업 진출도 모색한다. 1년 정도 고민 끝에 LG전자의 모태인 금성사를 1958년 설립했고 국산 라디오와 전화기, 흑백TV 등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며 한국 고속 경제성장의 토대를 닦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숱한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가 급속도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겠다는 창업주들의 기업가 정신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면서 "상법 개정, 노란봉투법 등 잇단 규제 강화로 인해 기업가 정신이 후퇴되지 않을까 다소 우려스럽다"고 강조했다.
【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