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배달 플랫폼 업계 1위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이 모기업 딜리버리히어로(이하 DH)의 라이더 전용 애플리케이션(앱) '로드러너'를 도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배달 기사(이하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적잖은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 분위기다.
업체 측은 새로운 앱 도입이 라이더들의 업무 효율성을 제고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반면, 라이더 측은특수고용노동직의 특수성을 심각하게 저해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8일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배민은 경기도 화성에서 DH의 라이더 전용앱인 '로드러너'를 시범 운영 중으로, 향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화성에서 먼저 적용된 로드러너 도입이 확대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며 "로드러너 도입에 대한 모기업 DH의 의지가 강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로드러너'는 DH의 라이더 전용앱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우아한형제들의 물류 전담 자회사인 우아한청년들의 '배민커넥트'가 사용되고 있다.
기존 배민커넥트와 구별되는 로드러너의 특징은 ▲노동시간 사전 신청 및 고정 운영 ▲라이더 등급제 등이 거론된다.
우선 배민커넥트와 로드러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라이더의 '노동시간 자율권'에 있다. 기존에는 라이더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배달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면, 로드러너는 이를 시스템적으로 제한한다.
구체적으로 라이더는 로드러너에서 자신이 근무할 시간을 회사 측이 지정한 스케줄에 맞춰 미리 '예약'해야 하며, 예약을 하지 않을 경우 배달 건(이하 콜) 자체를 수령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자신이 예약한 근무 시간 내에는 주문이 없어도 무급으로 근무 시간이 충족될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로드러너의 라이더 등급제도 기존 배민커넥트의 등급제와 크게 다르다. 로드러너는 콜 수락률과 시간당 배달 건수 등 다양한 데이터를 종합해 라이더에게 등급을 부여한다. 이 등급이 낮을 경우 라이더가 수입을 얻는 '일감'인 콜 자체가 제한되게 된다.
라이더 노조 측에서는 이와 같은 특징을 지닌 로드러너를 전면 도입하고자 시도하는 배민 측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배민의 대표 교섭노조인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이하 노조)는 "플랫폼 노동이 유지될 수 있었던 기본 토대는 노동자가 스스로 일할 시간을 정하는 노동시간 결정권"이라며 "로드러너가 도입된다면, 라이더는 더이상 플랫폼 노동자가 아닌 회사의 지시를 받는 '직원'이 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하지만 배민은 대 보험도, 퇴직금도, 유급 휴식도 보장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노조 측은 로드러너의 라이더 등급제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노조는 "등급이 떨어지면 가차 없이 배차를 제한하고 수입을 깎이게 되므로, 기계가 매긴 등급을 올리기 위해 라이더는 신호를 위반하고, 폭우 속을 질주해야 한다"며 "자신의 안전을 위해 천천히 달리면 '저등급 라이더'로 낙인찍혀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는 구조"라고 질타했다.
이와 반해 업체 측은 로드러너가 라이더의 실질적 임금 상승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배민 측에 따르면, 로드러너 시범운영 지역인 화성시에서 앱을 도입한 후 배민라이더들의 월 평균소득이 29% 증가했다.
구체적으로 화성시에서 전업으로 활동(주평균 40시간 이상)하고 있는 라이더들의 경우 로드러너를 도입한 후 6개월간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월평균소득은 424만원으로, 이는 도입 이전 6개월의 월평균 수익(329만원)보다 29% 늘어난 만큼 임금 상승 효과에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배민 측은 로드러너 도입 지역의 수익 개선 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즉 기존 배달앱 대비 로드러너의 안정적인 배차와 운행동선 개선 효과로 라이더의 전체적인 배달효율성(동일 시간 대비 배차수, 운행동선, 조리대기 감소 등)이 향상되고 전반적인 라이더 수익이 향상됐다는 걸 보여줬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배민 관계자는 "이번 로드러너 시범 도입 과정에서 우아한청년들은 라이더 및 라이더노동조합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상시 의견을 나누며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며 "실제로 배민은 지도 정확도 향상·앱 편의성 개선·휴식 및 안전운행 지원책·실시간 제보센터 운영 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우아한청년들은 현장 의견을 기반으로 로드러너 서비스를 지속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노동계 일각에서는 배민 측의 이 같은 주장은 로드러너 도입의 근본적 문제점인 '배달플랫폼의 근로자성 인정'에 관한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란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근로자법상 근로자성은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주와 사용종속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의미한다. 계약서의 명칭과 상관없이,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근로 시간과 장소가 지정되는 등 실질적인 지휘·감독 관계가 인정될 때 근로자로 인정된다.
이와 같은 경우 배민측이 로드러너를 매개로 실질적인 지휘·감독(근로 시간 및 장소 지정) 체계를 구축, 라이더를 사실상 '근로자'로서 활용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라이더 노조 관계자는 "특수고용노동직의 가장 큰 장점은 노동 시간에 큰 자율성이 부여된다는 점"이라며 "라이더의 경우에도 자신이 휴식이 필요하거나, 차량 정비가 필요할 때는 잠시 배달 업무를 접어둘 수 있다는 데서 매력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로드러너의 경우 이 같은 노동 형태의 자율적 권리를 침해하는것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정규직 형태와 마찬가지로 근로 장소·시간을 한정적으로 규정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며, 로드러너를 도입하는 배민 측이 실질적인 사용자가 되는 것이기도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로드러너가 도입, 적용될 경우 특수고용노동직의 '근로자성'이 인정될 개연성이 발생할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
노동법 전문 법무법인의 유한나 변호사는 "과거 판례에서 특수고용노동직과 일반 근로자와의 가장 큰 차이점을 판별하는 주요 쟁점은 사용종속관계의 유무"라며 "이에 실제 재판에서도 사용·종속적 관계에 대해서 면밀히 검토를 하는 편인데, 로드러너 시스템이 도입될 경우 라이더들이 배민이라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종속성이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동안 대부분의 라이더의 경우 플랫폼에 구애받지 않고 배달업무를 선택해 수행하는 편이었는데, 로드러너가 도입되면 업무상 제한이 가해진다는 것"이라며 "이에 라이더 입장에서는 로드러너 시스템에 종속되는 부분이 있기에 사측에 근로자성에 대한 인정과 함께 4대 보험 적용, 직접 고용 등을 요구하는 상황이 증가할 것이라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업무 수행에 있어 경쟁 유인에 따른 압박감도 더해질 것이란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유 변호사는 "로드러너의 경우 수행한 배달 건수와 주문 수량률에 따라서 차등적인 등급을 부여하고, 이 등급이 좋을수록 다음 근무 시간 지정 때 더 자율성이 부여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라이더가 근무 중 느끼는 속도 경쟁과 같은 압박감도 상당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자들이 결국 로드러너의 알고리즘에 의해 구속될 수밖에 없다 보니, 이 요소에 대한 업체 측은 공정하고 투명한 공개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며 "다만, 이 부분이 공개된다고 할지라도 이를 노동자와 소비자가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는 별도 문제"라고 조언했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