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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년 라면 외길 '삼양식품'(中)] '라면 신화' 전중윤 회장에서 '불닭볶음면 혁명' 김정수 부회장 '바톤터치'

전중윤 명예회장, 부유한 집안 출신 금융인…식량난 직접 경험 후 식품사업 진출
식량 자급화 어려운 실정에서 '라면'이 해결책이라고 판단…'삼양식품' 본격 설립
일본 묘조식품 지원받아 국내 최초 라면 '삼양라면' 출시…한국식 스프 개발 나서
우지 파동·IMF 위기 후 며느리 김정수 부회장 회사 입사…경영능력 우려 목소리도
'역작' 불닭볶음면 출시 후 삼양식품 제2의 전성기 맞아…김정수 부회장 '선견지명'

 

국민의 식량난을 해결하겠다는 큰 목표를 품은 삼양식품 창업주 전중윤 명예회장과 우지 파동·IMF로 위기에 빠진 회사를 반등시킨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의 경영철학이 사회에 귀감이 되고 있다. 이에 국내 최초 라면인 '삼양라면'부터 글로벌 인기 제품 '불닭볶음면'까지 63년 삼양식품의 발자취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上) "삼양라면에서 불닭볶음면까지"…'우지 파동' 딛고 화려한 '부활'
(中) '라면 신화' 전중윤 회장에서 '불닭볶음면 혁명' 김정수 부회장 '바톤터치'
(下) 제2의 전성기 '신호탄'…'불닭볶음면' 등에 업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


【 청년일보 】 "국민이 식량난을 겪고 있는데 미래를 준비하는 보험이 무슨 소용인가. 식품으로 국민 백세 시대를 열어보자"


삼양식품의 창업자인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은 식량난 해소라는 큰 목표를 가지고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사실 전중윤 명예회장은 식품과는 거리가 먼 보험회사를 경영하던 금융인이었다. 그는 1919년 강원도 김화군에서 태어나 선린상업고등학교(현 선린인터넷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졸업 이후 조선총독부 체신국 보험과에서 근무하며 공무원 생활을 했다. 해방 후에는 보험 경력을 살려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을 설립해 부사장을 지냈다. 


그리고 전중윤 명예회장이 동방생명을 떠나 제일생명 사장으로 있을 때 일이다. 그는 어느 점심 시간에 제일생명 바로 앞에 위치한 남대문 시장에서 점심을 먹으려다 사람들이 한 곳에서 음식을 사기 위해 줄을 서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오랜 시간 대기하다 받은 음식의 수준은 처참했다. 이 음식은 미군들이 먹고 남은 찌꺼기를 받아와 솥에 끓여 5원을 받고 팔던 '꿀꿀이죽'이었다. 당시 버스 요금이 8원인 것을 고려하면 가격은 저렴한 수준이었다.


다만 꿀꿀이죽을 받은 전중윤 명예회장은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꿀꿀이죽에는 담배 꽁초 등 이물질이 들어있기도 했고 어찌 보면 돼지 사료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전중윤 명예회장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창업해 승승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들의 수준을 실제로 마주한 순간 마음 속에 뭔가가 울컥 올라왔다고 한다.


이에 전중윤 명예회장은 제일생명 사장을 내려놓고 식품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그가 생각해 낸 것은 금융업에 재직하던 시절 일본 출장길에 맛봤던 라면이었다. 그는 라면의 국내 도입이야 말로 당시 식량 자급화가 어려운 실정에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다시 일본으로 향한 전중윤 명예회장은 현지 라면업체들에게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오쿠이 기요스미 묘조(明星)식품 사장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배를 곯는 국민들을 위해 식품사업에 뛰어들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전중윤 명예회장은 여기서 라면의 면 제조 기술을 배웠다. 다만 문제는 스프였다. 묘조식품 임직원들은 자사 기술이 외부에 유출될까 스프 제조법 공개를 꺼렸다. 


결국 절반의 성과만 얻고 한국으로의 귀국길에 오르려는 찰나, 오쿠이 사장은 비서를 통해 몰래 전중윤 명예회장에게 스프 제조법을 전달했다.

 

 

그렇게 1963년 9월 국내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이 탄생했다. 꿀꿀이죽이 5원인 것을 감안해 가격은 10원이었다. 


당시 막노동 일당은 100원으로 국민들의 밥상 물가를 고려해 가격 만큼은 부담이 없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담겼다.


삼양라면은 처음 출시했을 때 '닭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만들었는데, 그때는 현실적으로 소나 돼지를 사용해 육수를 낼 만큼 원료를 조달하기가 쉽지 않았고, 생산 원가 측면도 고려해야 했다.
 

아울러 일본 묘조식품의 스프 배합으로 만들어진 초기 삼양라면 맛은 지금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었다. 


같은 동양권일지라도 일본은 후추, 산초 등을 선호했고 한국인은 마늘, 고춧가루 등을 선호하는 모습을 보여 향신료에 대한 기호 차이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전중윤 명예회장은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있었고, 초기 제품 출시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인 입맛에 맞는 라면 맛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에 1966년에는 실험실을 발족해 한국식 스프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 실험실은 연구실로 확장됐고, 라면의 품질개선에도 연구를 진행해 품질을 높이고 제품을 다양화할 수 있었다. 


계속되는 제품 개발과 출시로 1969년부터는 본격적인 제품 다양화 시대로 접어들었고, 1970년 삼양식품은 종합식품업체로 발돋움하게 된다.

 

 

'라면왕' 전중윤 명예회장은 2010년 삼양식품 대표이사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2014년 7월 10일 향년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 삼양라면에서 불닭볶음면으로…전중윤 명예회장에서 김정수 부회장 '바톤터치'


우지 파동과 IMF 위기 이후 전중윤 회장은 초심으로 돌아가 회사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아들인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 역시 회사 재건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전중윤 명예회장의 며느리이자 전인장 회장의 아내인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회사 경영에 참여하게 된다.


사실 1998년 김정수 부회장이 삼양식품에 입사할 때만 해도 주변에서는 우려가 컸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김정수 부회장은 경영과 무관한 서울예고, 이화여대 사회사업과를 졸업했고 1994년 전인장 회장과 결혼한 뒤 주부로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김정수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 빛났다. 그가 입사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예술 경력을 살려 제품 패키지 디자인을 변경한 일이다. 이와 함께 '갓 짬뽕', '맛있는 라면' 등 이색 상품명을 직접 지으며 상황을 반전시켜 나갔다. 


이후 2010년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화됐고, 전중윤 당시 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으로 재직하게 된다. 

 

 

김정수 부회장은 전중윤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로도 회사를 반등시키기 위해 고심했다고 한다. 국내 최초 라면인 삼양라면과 같은 대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정수 부회장의 역작인 불닭볶음면은 2011년에 시작됐다. 2011년 초 김정수 부회장은 고등학생인 딸과 주말을 맞이해 서울 도심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러다 명동의 매운 볶음밥 집에 손님들이 줄을 길게 선 것을 보고 기다렸다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김정수 부회장은 놀라운 것을 목격했다. 식당 내 손님들이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매운 볶음밥을 맛있게 먹고 싹싹 비운 것을 본 것이다.


이에 김정수 부회장도 직접 먹어봤는데, 자신과 딸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정도로 매웠지만, 이 강렬한 매운 맛을 라면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김정수 부회장은 바로 근처 슈퍼마켓으로 뛰어가 매장에 비치된 모든 매운 소스와 조미료를 샀다. 직접 집에도 들고 와 먹어봤고 연구소와 마케팅팀으로도 제품을 보냈다.


이후 마케팅 부서, 연구소 직원들과 함께 전국의 유명한 불닭, 불곱창, 닭발 맛집들을 탐방해 직접 시식하고 세계 여러 국가의 다양한 고추를 연구하며 한국식의 '맛있게 매운 소스' 개발에 몰두했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매운맛을 찾기 위해 세계 모든 지역의 고추(청양고추, 하바네로고추, 베트남고추, 타바스코, 졸로키아 등)를 혼합해 보면서 최적의 소스 비율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위가 약한 연구원들은 매일 계속되는 매운맛 시식에 약을 복용하기도 할 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노력 끝에 불닭볶음면은 2012년 4월 드디어 출시됐다. 개발에만 약 1년이 소요됐고, 이 기간 동안 매운소스 2톤, 닭 1천200마리가 투입될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선보인 제품이었다.
 

출시 초기 국내 매출은 월 7~8억원 정도로 노력에 비해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중독성 강한 매운맛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3달 만에 2배로 증가했다. 인기는 계속돼 출시 1년 만에 월 매출 30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불닭볶음면의 인기와 함께, 매운 맛을 완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조합이 입소문을 타며 불닭볶음면과 부재료(스트링 치즈, 참치, 계란 등)를 활용한 레시피가 등장했다. 


김정수 부회장은 불닭볶음면 제품 하나를 다양하게 즐기는 소비자들을 보며 제품에 대한 다양한 니즈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치즈불닭볶음면 ▲불닭볶음탕면 ▲커리불닭볶음면 ▲핵불닭볶음면 ▲까르보불닭볶음면 등으로 라인업을 확장했는데 후속 제품들 역시 불닭볶음면 만큼이나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불닭볶음면에 크림소스를 섞어 먹으면 맛있다는 소비자들의 레시피에 착안해 2017년 12월 국내 한정판으로 출시한 까르보불닭볶음면은 3개월간 3천600만개가 판매됐다. 


까르보불닭볶음면은 기존 불닭볶음면 액상 스프에 모짜렐라 치즈 분말, 크림맛 분말, 파슬리 가루를 넣어 크림파스타맛과 비슷하고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한 번쯤 도전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크게 낮췄다. 


까르보불닭볶음면은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2018년 5월 정식 제품으로 출시됐으며 불닭볶음면과 함께 불닭브랜드 대표 제품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최근 불닭볶음면이 전세계적인 K-라면 돌풍의 선두주자가 되며 삼양식품은 내수 기업에서 수출 기업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김정수 부회장의 선견지명이 통한 것이다.
 


【 청년일보=신현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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