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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위기와 반향(反響) (上)] 고사 위기의 인문학..."친구와의 만남도 사치"

통계로 드러나는 인문학계 '고사 위기'..."생존 담긴 비참한 현실"
"국가·대학의 지원 전무 수준"...'기초적 생계 유지' 어려움 호소

 

끝나지 않는 '인문학의 위기' 한복판에 학계의 청년 예비 연구인들이 내몰리고 있다. 제도적 차원의 지원이 무색한 상황에서 청년일보는 위기에 직면한 청년들을 만났다. 인문학 고사의 위기 속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 아닌 투쟁의 장에서 학문에 대한 열정을 담아 헌신하고 있는 그들의 제언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上) 고사 위기의 인문학..."친구와의 만남도 사치"

(中) 영원한 위기인가…대중화와 학문융합

(下) "생존을 위한 투쟁의 장"...자조와 애석함의 향연

 

【 청년일보 】 미국의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센델(Michael Joseph Sandel)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출간되자 국내에는 '인문학 공부'에 대한 열풍이 거세졌다. 인문학을 둘러싼 보기드문 이상 현상이 일어난 것은 바로 2010년의 일이었다. 

 

동시에 사회 각계에서는 '왜 한국 사회에서는 센델과 같은 인문학자가 나오지 않는가'에 대한 치열한 각론이 벌어졌다. 

 

모순적이게도 논의의 중심에 서있던 인문학계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함' 그 자체였다. 소위 30년 간 지속되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에서 이미 지칠대로 지친 인문학계는 이와 같은 예외적인 현상 역시 곧 지나갈 트렌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최근 각종 TV 채널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문교양 프로그램'의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문학계는 여전히 '영원한 위기'를 외치고 있다.

 

◆통계에서 드러나는 '인문학의 고사 위기'

 

'인문학의 위기' 현상은 연구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원과 관련한 실제 통계를 살펴볼 경우 더욱 구체화된다.

 

교육통계서비스가 발표한 2020년 '대학원과정 학과계열별 입학자수'를 살펴보면 사회계열로는 3만5천559명, 공대계열로는 2만3천97명이 진학한 반면 인문계열로 진학한 대학생은 총 1만4천21명에 불과했다.

 

그 중에서도 심리학 등을 제외한 이른바 '문사철'(어문·역사·철학 계열 전공) 관련 학생만 보면 그 수는 5천169명에 불과했다. 2019년 같은 통계에서의 수치가 6천983명임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순수 인문학계 전반이 '고사' 하고 있는 추세에 있는 것이다.

 

학문의 전문적인 연구 역량을 간접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대학별 전임교원의 수 역시 이와 같은 상황을 나타낸다. 같은 곳의 2021년 '계열별 전임교원(외국인) 및 비전임교원'을 살펴보면 문사철 계열의 전공 전임교원은 8천691명으로 공대계열의 1만5천201명에 크게 못 미쳤다. 

 

반면 비전임교원(겸임·초빙·강사·기타비전임)의 경우 오히려 문사철의 수가 1만5천453명, 공대계열이 1만2천907명으로 전임교원 수 대비 비전임교원의 수가 월등히 높았다.

 

이는 관련 인문학 전체의 전문적인 연구 역량과 지속성이 저하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인문학의 위기'는 구호가 아닌 현실임이 데이터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새벽 4시 기상해 일·연구 병행해도 남는 것 없어'...'친구와의 만남은 사치'

 

이같은 상황에서 청년일보가 만나본 관련 학문의 다양한 청년 예비 연구인들은 통계로 집계되는 것보다 더욱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중량감 있는 연구 역량을 키워갈 수 있는 국가·민간의 현실적인 지원 자체가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사 과정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A(27, 중문계열 전공)씨는 "한국의 학문 역량이 집중된 서울로 상경해 국가나 대학 차원의 지원이 전무한 상태에서 월세,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활동을 필수적으로 병행해야 한다"면서 "이 경우 정상적인 연구 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같은 계열의 석사 과정 B(27, 중문계열 전공)씨는 "연구 활동을 하며 병행하는 경제적 수입으로는 사회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면서 "예비 연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금전적 이유로 가족, 친구 등에 미안함부터 느끼게 된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그는 "새벽 4시반에 기상해 6시에 출근하고, 11시에 퇴근해 연구와 생활을 지속하는 삶에서 좋은 연구 역량을 키울 수는 없다"고 전했다.

 

아울러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C(28, 독문계열 전공)씨는 "이공계열 전공의 경우 학교 차원의 프로젝트 지원으로 연구실 출퇴근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면서 "(인문학은) 프로젝트는 고사하고 학교에 연구실 조차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 외에 다양한 청년 예비 연구인들은 "장학금 수령을 위해 일을 할때 4대 보험조차 가입할 수 없다"거나 "국가나 민간 차원에서 지원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입은 0이라고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고발했다.

 

◆'사회적 인정 받지 못하는 인문학'...역량 발휘 통한 사회적 기여의 장(場) 열어줘야

 

인문학 예비 연구인들은 인문학 전공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시선과 관련한 어려움도 토로한다.

 

서울 소재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박사과정 D(32, 철학 전공)씨는 "기본적인 지원조차 되지 않으니 어디가서 당당히 '나는 연구자'라고 말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라면서 "자신의 역량을 사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전무하니 연구자 신분도 떳떳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 기여를 하는 만큼의 사회적 인정은 아닐지라도 인문학 연구자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고 밝히며 인문학 연구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A씨도 “단순한 금전 지급의 형태가 아니라 예비 연구인력이 자신의 연구 역량을 기여하고, 자신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적 기여가 가능하다는 자존감을 심어줄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E(25, 철학 전공)씨는 "현실적인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문 공동체 내부에서도 서로에 대한 관심이 소연해진다"면서 "사회적 인정을 학문 공동체 내부에서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서울대학교의 F(28, 어문계열 전공)씨 역시 "인문학 학문 연구가 공동체에 의미가 있는 활동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현대사회의 제1가치인 경제적 효용성에 대한 기여 만큼은 아닐지라도, 인문학 연구자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인문학은 '돈'과 거리가 먼 학문'...'기성 인문학계 반성해야' 

 

그렇다면 인문학 연구자를 목표로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청년 예비 연구인이 보는 '인문학의 위기'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와 같은 질문에 청년 예비 연구인들은 관련한 문제에 대해 다양한 원인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B씨는 "예비 연구인이 그 역량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능력이 아닌 외적인 문제가 그것을 차단하게 된다면 제도적인 문제가 있다고 봐야한다"며 사회와 교육 제도에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또한 그는 "인문학에 투자되는 국가, 민간 차원의 연구개발사업비가 적다보니 과제 수주 자체가 어렵다"고 언급했다.

 

그는 "사정이 이러니 교수들 역시 후속 연구세대 양성에 관심이 없어지고 각자도생의 연구에만 집중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어 청년 예비 연구인들은 공통적으로 인문학의 본질적인 속성이 경제적 이윤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는 특징을 갖음에도, 교육 당국이 '경제적 효용성'이라는 일률적인 기준으로 학문을 평가하는데 '인문학의 위기'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인문학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과 거리가 먼 학문”이라면서 “인문학 자체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학이 꼭 돈을 버는 학문을 해야 하는 것인지 반문해야”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B씨 역시 "현대사회의 제1의 가치는 효율성과 경제적 효용성"이라면서 "인문학의 연구 결과는 즉각적인 경제적 효용성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E씨는 "학문을 경제적 효용성이라는 일률적 가치로 평가하다보니 인문학은 자연 후순위로 미뤄진다"면서 "말라 비틀어진 연구지원금에 수 많은 인원이 매달리게 되고, 이에 지친 수많은 연구자들이 떠나게 되는 악순환의 반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성 인문학계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A씨와 B씨는 “기성 인문학계는 인문학이 대중에게 자신의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한 부분을 반성해야 한다"며 “인문학 분야는 학계 내부에는 특유의 폐쇄적인 경향이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같은 맥락에서 E씨 역시 "(이러한 현실 속에서) 결국 어느정도 생활 기반이 되는 '금수저'가 기성 인문학계를 장악하고, 인문학은 다시 폐쇄적 순환을 이루게 된다"고 말하며 기성 인문학계를 질타했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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