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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상처의 치유와 회복”···은둔 청년들 희망을 노래하다

日 히키코모리 첫 등장···1990년대 심각한 사회 문제 직면
韓, 만 18세~34세 청년 가운데 37만 명···사회와 고립 생활
안무서운회사, 은둔청년 ‘멘토’ 충실···안정적 사회정착 노력
2022년 연말 은둔 콘서트 진행···자신들의 은둔 이야기 담아
청년재단 “다양한 청년 목소리, 사회로 발신되게 노력할 것”

 

【청년일보】 1970년대 일본에선 ‘히키코모리’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20년뒤, 1990년대 발생한 일본의 버블 붕괴로 인해 경기침체가 가속화하며 히키코모리 용어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지칭하는 언어가 됐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선 그저 남의 문제로 인식했지만 1997년 IMF 사태 이후 히키코모리화가 점증하면서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과거 취업, 직장생활 내의 부적응으로 인한 증가세에 이어 최근 학교폭력, 따돌림 등 저마다의 사연이 각각 존재한다.

 

은둔형 외톨이(은둔 청년)는 주로 청년층에 고르게 분포되고 있다. 지난 2020년 기준으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만 18세~34세 청년 가운데 약 37만 명이 사회와 고립돼 생활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비용을 추산하면 무려 약 585조원에 달한다.

 

이 같은 상황에 일자리, 주거 마련 문제뿐만 아니라 고립·은둔 청년 증가가 한국에서도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는 지적이 함께 나온다. 한정된 공간에서 일정 기간 이상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생활하는 사람을 일각에선 소위 ‘은둔 청년’이라고 부른다. 

 

은둔·고립 상태에 놓인 청년 문제가 심화되면서 이들을 돕는 기업 ‘안무서운회사’가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올해 2월 설립한 안무서운회사는 국내 처음으로 은둔·고립 청년의 문제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고 그들의 자립을 지원했다. 

 

특히 이들 역시 과거에 쓰디쓴 아픔을 딛고 지금은 은둔청년들의 ‘멘토’로서 상담 교육·실습은 물론 성공적인 사회정착을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 같은 결실을 맺어 은둔청년들은 세상과의 높은 진입장벽을 허물고 꽁꽁 숨겨놨던 자신들의 아팠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조그만 공연을 기획했다. 

 

바로 ‘꼭꼭 숨었쇼: 사실은 숨고 싶지 않았던 우리들의 콘서트’다. 본 공연은 재단법인 청년재단에서 지원했으며 은둔 당사자들이 직접 가사를 써서 제작한 노래 5곡과 곡별 SHOT 연극, 토크 세션으로 구성돼 있다. 즉, 각자의 아팠던 은둔 이야기를 담아 연극을 하는 것이다.

 

기자는 은둔 당사자들의 이야기와 관련한 공연 관람을 위해 칼바람 한파가 불던 지난 12일 늦은 저녁, 서울시 마포구 홍대입구 인근에 위치한 소극장을 찾았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7번 출구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위치해있는 ‘구름아래소극장’ 지하 입구엔 공연시작 30분 전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주로 10~20대 젊은 청년들을 포함해 50대 등 다양한 연령층들이 고루 분포했다. 

 

청년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참석자들 대부분은 공연 출연진들과 똑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은둔 당사자들이다.

 

입장하기 전, 로비에선 신청인원을 조회한 후 입장 팔찌와 야광봉을 각각 배부했으며 안무서운회사 직원들은 녹화 영상카메라를 들고 참석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참석한 인원수만 대략 200명 안팎은 되어 보였다. 공연예정 시각보다 10분 가량 딜레이된 오후 7시 40분, 마침내 공연장에 들어가는 입구가 열리고 사람들은 차례대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첫 입장 당시 주변엔 ‘설렘 반 기대 반’의 분위기로 물씬 풍겼다. 

 

공연장 내부 전체를 밝게 해주던 조명이 하나 둘씩 꺼지고 무대 한 가운데에 유승규 안무서운회사 대표(남·30)가 힘찬 걸음으로 등장했다. 

 

시작에 앞서 유 대표는 관객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공연의 간략한 취지를 설명한 후 은둔고수 3기 수료식을 거행했다. 은둔고수란 과거 은둔을 경험했던 청년들이 지금 은둔을 경험하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서포터즈 프로그램이다. 직접 은둔 극복을 위한 그룹 워크숍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당사자를 돕는 활동을 진행한다. 

 

유 대표 역시 5년 간 은둔 경험이 있으며 ‘은둔도 스펙이다’라는 슬로건을 통해 은둔 당사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최선봉에 나서고 있다.

 

수료식을 성료한 후 본격적인 공연의 막이 올랐고 무대엔 3명의 남녀 출연진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은둔청년으로서 지난 수 년 간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아뒀던 응어리를 이야기로 풀어가기 시작했다. 한 여성 출연진은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에게 심한 왕따를 당해 몇 번이나 죽고 싶었다는 심정을 밝혔다. 

 

 

또 다른 남성 출연자는 자신도 무척 힘들었던 삶을 살아온 탓에 온 몸 곳곳에 자해를 했다고 전했다. 순간 관객들은 모두 숨을 죽여 마음 속으로 그들의 삶을 공감하고 경청했다. 한켠에선 콧물을 훌쩍이기도 했다. 그렇게 절절했던 독백 연기를 마친 후 본인들의 경험을 녹여 직접 작사한 노래를 보컬리스트가 불렀다. 

 

“사람이 없는 날 낮과 밤도 없단 그 날들. 시간이 흐르는 것도 더는 느껴지지 않아”, “나를 가둔 벽이 너무나 두터워. 평범하단 것들이 내게는 어려워. 내 삶은 흐르다가 멈춰버리고 그 날들에 갇힌다”, “지쳐 쓰러져도 다 포기한다 해도 나 다시 살아 갈 거야. 다시 살아 갈 거야”

 

‘빈방’이라는 노래 가사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이 구절을 통해 기자는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생활했던 청년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던 동시에 같은 청년으로서 이를 보듬어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했다. 

 

이후 몇 차례 은둔 테마의 짧은 연극과 노래가 계속되고 어느덧 공연 막바지에 이르렀다. 유 대표는 다시 무대에 등장해 출연진과 토크 콘서트 및 관객들과 재담(才談)을 주고받으면서 다소 침체됐던 분위기를 한 층 끌어 올렸다. 

 

이어 이날 참석한 행사 관계자를 호명해 감사인사를 전하고 소감을 물었다. 그 중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실 관계자는 “이번 공연을 통해 은둔청년들의 간절했던 속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자립준비(보호종료)청년의 자립 어려움 해소 노력과 함께 은둔 청년들의 심리적 안정감 및 정책 지원방안 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오후 9시40분, 2시간이 넘은 공연이 모두 끝난 후 사람들은 출연자들에게 다가가 깊은 위로의 말을 전했다. 출연자들의 얼굴엔 수 년 간의 인고의 세월이 묻어남과 동시에 뿌듯한 감정을 드러냈다. 

  

모든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기자는 고립, 은둔 등 사각지대 청년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선 우리 스스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와 더불어 정부에서 고립·은둔 청년들의 실태조사와 함께 다각적인 정책 발굴이 시급한 과제이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이번 행사와 관련해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은 청년일보에 “금번 행사같은 경우 고립 당사자들이 스스로 사회에 목소리를 낸 것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사회적 편견과 고립을 권하는 분위기를 넘어 지속적으로 고립 청년들이 자립을 향해 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재단은 앞으로도 다양한 청년의 목소리가 사회로 발신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이어 가겠다”고 부연했다.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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