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일보】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생전 추진력이 강하고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가까운 경영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임원들을 향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은 강인함 속에서도 마음 한켠엔 애틋한 감성이 묻어났다.
바로 '사회적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사회공헌 철학이 그 근거다. 1987년 선친인 故 이병철 창업주 작고 이후 2대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삼성은 이미 한 개인이나 가족의 차원을 넘어 국민적 기업이 됐다"면서 "지금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이상으로 봉사와 헌신을 적극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경영에 있어 상생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며 그 약속은 현실이 됐다. 그 중 '시각장애인 안내견 학교'를 설립한 것이 대표적이다.
안내견 학교는 진정한 복지사회가 되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이건희 회장의 뜻에 따라 1993년 신경영 선언 직후 설립됐다.
30년째 접어든 현재까지 누군가에게 희망의 '빛'이 돼주며 오늘날 ESG 모범 기업으로 정평이 나있다. 청년일보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삼성화재안내견학교를 찾아 생생한 투어와 안내견 분양식과 은퇴식 현장을 생생하게 담았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세계적 기관 성장···ESG 모범 기업 '정평'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 376번길 1-27'에 위치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삼성화재가 운영하는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기업이 운영하는 세계 유일의 안내견학교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시각장애인 안내견 대부분은 이곳에서 양성된다.
1994년 첫 번째 안내견 '바다' 이래 매년 12~15마리를 분양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280마리의 안내견을 무상으로 분양했으며 현재 76마리가 활동 중이다. 30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안내션 사업을 지속해온 덕에 시각장애인들에겐 말 그대로 '희망의 빛'인 셈이다.
실제로 이날 기자가 찾은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엔 희망과 상생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으로 물씬 풍겼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안내견학교 훈련사들과 훈련견들이 기자들을 맞이했다. 프레스룸에서 잠시 대기한 뒤 유석종 훈련사의 안내를 받아 넓은 견사 시설을 둘러봤다. 이곳엔 향후 시각장애인들의 동반자가 되기 위한 훈련견 리트리버들이 모여있었다.
낯선 외부인이 왔음에도 오히려 짖지 않고 말랑말랑한 외모에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모습이 역력했다. 안내견학교 내 훈련 시스템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구축되고 운영되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시설을 둘러본 이후 시각장애인 입장이 돼 안내견과 함께 길을 걷는 체험장소로 옮겼다. 직접 체험을 하진 못했지만 또 다른 훈련사가 시각장애인과 연결하는 하네스를 잡고 보행 시범을 보였다.
훈련사는 하네스를 잡고 출발하자 안내견은 능숙하게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계단에 다다르자 안내견은 보행자에게 장애물이 있다는 걸 인식시키기 위해 잠시 멈춰 대기했다. 그렇게 무사히 계단을 통과하고 마지막 관문인 공중장애물에 직면했다. 사람이 지나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안내견은 옆으로 보행자를 인도했다.
시범이 모두 끝난 후 훈련사는 기자들에게 생후 몇 개월 안된 예비 안내견을 소개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혓바닥으로 손을 핥는 모습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져나왔다.
◆"시각장애인 도우미서 삶의 2막 시작"···이재용 회장 '깜짝' 방문
이날 기념식에서는 새로운 30년을 향해 다시 또 한 걸음을 내딛는 '안내견 분양식과 은퇴식'도 진행됐다.
참석자로는 퍼피워커, 시각장애인 파트너, 은퇴견 입양가족 등 안내견의 전 생애와 함께해 온 이들과 윌리엄 손튼 세계안내견협회(IGDF) 회장,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시각장애인 파트너이기도 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배진교 정의당 의원, 홍원학 삼성화재 사장 등이 참석했다.
여기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어머니인 홍라희 前 리움미술관장과 함께 깜짝 등장하며 자리를 더욱 빛냈다. 이는 선친의 사회공헌 철학 의지를 계승하겠다는 행보로 풀이된다.
먼저 '먼 훗날'을 내다보고 안내견 사업을 시작한 故 이건희 회장의 혜안과 신념, 그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변화 등 성과를 되돌아보는 영상이 상영됐다.
故 이건희 회장은 남다른 '애견관'을 바탕으로 그동안 애견 관련 사회공헌 행보를 꾸준히 이어온 바 있다. 특히 일본에서 학교를 다닐 때 여러 종류의 개를 손수 키우고 연구하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개를 유난히 좋아한 것으로 전해진다.
영상 종료 후 퍼피워커의 손을 떠나 안내견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강아지와, 7~8년 간의 안내견 활동을 마치고 반려견으로 삶의 2막을 시작하는 은퇴견, 이들과 함께 했고 함께 할 사람들의 만남을 축하하고 이별을 위로하는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됐다.
'퍼피워커'는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이 될 강아지를 생후 7주부터 1년 간 자신의 집에서 훈련시키는 자원봉사자를 말한다.
통상 안내견이 되기 위해선 일반 가정집에서 사람들과 살며 1년 정도 사회화 시기를 거쳐야 한다. 이 시기엔 평범한 강아지들처럼 사람들과 놀고 시간을 보내면서 친하게 지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퍼피워킹을 마치고 안내견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강아지와 헤어지게 된 8명의 퍼피워커들은 소감을 밝히는 도중 끝내 눈물을 보였다. 이 회장도 행사를 지켜보는 내내 끝까지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한 퍼피워커는 "새하얗던 너를 만났을 때와 어설펐던 순간이 벌써 엊그제 같다"면서 "1년 여간 함께 생활했던 추억을 절대 잊지 않고 시각장애인 파트너에 든든한 동반자가 되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6~7년간 안내견 생활을 은퇴하고 새 식구 '느티'(2015년 4월생)를 맞이한 한 윤춘미씨는 "저희 집에 은퇴견 식구가 있었는데 지난해 5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면서 "느티를 보며 이 아이(느티)가 나만의 아이가 아니라고 느낀다. 어린시절 지극정상 보살펴주신 퍼피워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기쁘게 지낼 것"이라고 전했다.
홍원학 삼성화재 사장은 "자원봉사자와 정부, 지자체 등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관심과 진심 어린 노력으로 안내견학교가 30주년을 맞았다"면서 "삼성화재는 지난 30년간 동행을 이어왔던 것처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윌리엄 손튼 세계안내견협회(IGDF) 회장은 "삼성은 새로운 개념의 사회공헌사업 론칭과 함께 안내견의 번식·훈련을 발전시켰다"고 밝혔다.
또한 이건희 회장에 대해 한국에 안내견 문화를 고취시키고 기업이 운영하는 안내견의 개념을 가능케 했다며 이재용 회장에 감사 메시지를 전했다.
한편 삼성은 안내견학교 시설과 훈련∙교육 프로그램의 개선,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새로운 30년 동안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이 더욱 행복한 동행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청년일보=이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