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재무적 투자자(FI)인 어피니티컨소시엄(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IMM PE·베어링 PE·싱가포르투자청)간 벌여온 풋옵션(특정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을 둘러싼 국제분쟁 2차전에서 "제3의 기관을 통해 주식가치를 재산정하라"는 판정이 나와 주목된다.
이를 주고 업계 일각에서는 양측간의 분쟁에 대해 중재를 맡아온 국제상업회의소(이하 ICC)가 어피니티측의 손을 들어준 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은 향후 외부 자문기관 등을 통해 풋옵션 가격을 재산정하는 한편 어피니티 측이 보유 중인 교보생명의 지분 24%를 매입해야 한다. 다만 신 회장 측 법률 대리인은 중재판정 취소 등의 법적 절차도 고려하고 있다는 방침이라는 점에서 향후 양측간 공방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양측간 분쟁이 교보생명의 신창재 회장이 어피니티와 풋옵션 계약을 체결할 당시 미래 업황 예측 등 다양한 변수를 사전 면밀히 감안하지 않았던 점이 장기간 소송전으로 이어진 배경으로 보고 있다.
한편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신세계그룹이 어피니티와의 풋옵션 관련 협의를 원만히 진행, 해결했다는 점에서 교보생명의 대응은 적극적인 협의보다는 다소 감정적으로 대응한 점이 장기간의 소송전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ICC는 지난 17일(현지 시간) 어피니티 컨소시엄(어피너티·IMM PE·EQT파트너스 등, 이하 어피니티)과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과의 2조원대 풋옵션을 쟁점으로 한 국제중재 사건에서 어피니티 측의 청구를 일부 인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르면 ICC는 30일 이내로 신 회장 측이 주주간 계약에 따른 감정평가인을 선임하고 평가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아울러 이를 어길 경우에는 이후 기간부터 하루에 20만달러 만큼의 간접강제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양측간 갈등의 발단이 된 시점은 약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피니티는 2012년 대우인터내셔날이 보유하던 교보생명 지분 24%를 1조2천억원(주당 24만5천원)에 인수했다. 당시 체결된 주주간 계약에는 교보생명이 약속한 기한인 2015년 9월까지 기업공개(IPO)를 하지 못하면 어피니티가 신 회장을 상대로 풋옵션을 행사해 지분을 되팔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어피니티는 2018년 안진회계법인을 통해 산정한 가격인 총 2조122억원(주당 41만원)에 달하는 풋옵션을 행사했고, 신 회장은 주주간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해왔다. 양측의 입장이 대립하면서 해당 사안은 2019년 3월 국제 중재에 넘겨졌다.
ICC는 2019년 1차 판정에서 신 회장이 어피니티와 체결한 풋옵션 계약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다만 어피니티가 주장한 가격을 그대로 이행할 의무는 없으며, 상호 합의에 따라 재산정한 가격을 지불하라고 결정했다.
이를 이행하기 위해 신 회장은 별도의 회계법인을 선정하고 교보생명의 공정시장가격(FMV)를 산출해 어피니티측이 제시한 FMV와 비교, 평균값을 정해야 하지만, 신 회장은 이같은 절차를 거부해 왔다. 이에 어피니티는 2022년 2월 2차 중재 판정을 신청했다.
이번 ICC의 중재 결과를 두고 어피니티 측은 "신 회장 측이 2차 중재 판정 결과에 승복하고 이를 신속히 이행해 교보생명을 둘러싼 분쟁 해결에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신 회장의 대처방안에 다소 아쉬움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FI와 주주간 계약을 체결할 당시 풋옵션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변수들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어피니티와 교보생명 간의 분쟁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진 데는 신 회장이 어피니티와 풋옵션 계약을 체결할 당시 풋옵션 가격 산정에 변수가 될 수 있는 생보업계 상황 등 여러 요소를 사전에 면밀히 고려하지 못한 영향도 있지 않을까 한다”며 “어피니티도 FI로서 기대하는 수익률이 있었을 텐데, 계약의 당사자로서 이에 대한 고려가 다소 미진했기에 불가피한 마찰을 겪은 것으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신세계그룹이 어피니티와의 풋옵션 관련 협의를 원만히 진행해 해결책을 찾은 반면,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은 적극적 협의 보다는 다소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이 장기간 소송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올 4월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SSG닷컴에 투자한 어피너티와 풋옵션 행사 관련해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신세계그룹은 2019년 어피니티 및 BRV캐피탈과 주주간 계약을 맺었다. 어피너티와 BRV캐피탈은 SSG닷컴에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총 1조원을 투자해 각각 지분 15%를 보유했다.
신세계그룹과 어피너티 등이 맺었던 해당 풋옵션은 지난해 기준 SSG닷컴의 총거래액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거나 기업공개(IPO)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신세계그룹이 FI 지분을 웃돈으로 주고 되사가는 것이 골자다.
신세계그룹과 어피니피 간 논쟁의 핵심은 풋옵션의 유효성이었다. 신세계그룹은 거래액과 기업공개(IPO) 관련 조건을 모두 충족한 만큼 풋옵션 효력이 소멸됐다고 주장했지만, 어피니티 등은 SSG닷컴 자체 상품권 발행 등으로 거래액이 과대 계상된 점을 감안해 풋옵션 행사 요건이 충족됐다며 맞섰다.
유통업계에선 양측의 입장 차가 큰 만큼 향후 법정 분쟁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신세계그룹이 자칫 분쟁으로 치닫을 뻔한 기존 FI와의 풋옵션 문제를 어피니티 등 재무적 투자자들과 합의해 이들의 보유지분을 올해 말까지 제3자에 매각해 투자금 1조원을 반환하고, 합의금 형태로 1천500억원을 추가 지급하기로 약속하면서 일단락 지은 것이다.
이에 신세계그룹은 지난달 14일 어피니티 등이 보유한 SSG닷컴 지분 30%를 사들일 매수인으로 특수목적법인(SPC) 올림푸스제일차를 지정했다고 공시했다. 올림푸스제일차는 산업은행과 신한은행, NH투자증권 등 은행권 6곳과 증권사 4곳이 참여한 SPC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신장재 회장이 어피니티와 갈등이 불거질 당시 어떤 식으로든 적극적으로 해결을 하려고 했다면 좋았을텐데 결과적으로 감정적인 싸움으로까지 번진 것 같다"며 "FI들에게 투자금 관련해 신 회장 본인이 제시한 금액만 가지고 나가란 식으로 비춰진 측면이 있어 법정 다툼까지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신세계 경우는 현재 증시 상장을 할 시장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FI들과 원만한 합의점을 찾아 갈등을 해결했고, 이는 신창재 회장과 차이를 나타낸 부분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현재 신창재 회장이 FI들을 투자자 또는 파트너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실패한 투자자쯤으로 인식식하는 태도로 나오니 FI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세한 계약상 내막은 모르겠으나, 통상 보험사들은 계약서를 중시하는 특성이 있다"면서 "주주간 계약에 따라 되사주기로 했다면 사주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양측이 물가상승률 등 수익률에 변수가 될 다양한 요인을 면밀히 검토하고 입장을 조율했다면 장기간 소송에 따른 기업이미지 타격도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교보생명은 이번 ICC의 판정에 따라 감정 평가기관을 선임해 FMV(공정시장가격)를 산정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신세계와 신창재 회장님과의 풋옵션 계약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풋옵션이 회사와 계약했다면 충분히 매입해서 끝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세계는 어피니티측에 투자원금에 이자 수준의 금액으로 합의한 것이고, 신창재 회장님한테는 41만원이라는 2배 이상을 요구해 협의 자체가 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어피니티측에서 합리적인 금액을 요구했다면 벌써 마무리됐을 문제였다"며 "초창기 신 회장님이 원금 보전에 추가 비용으로 협의 제안에 합의 후 변심해 41만원을 요구해 ICC에 제소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 청년일보= 김두환 / 신정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