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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상품명도 없다"...식품업계, 점자 표기 확대 '고심'

지난 7월 식약처 '식품 점자 표기 가이드라인' 배포에도 식품 상품 표기율 37.7% 수준
표기된 점자에도 상품명·유통기한 등 필수 정보 상당수 누락..."무슨 의미 있나" 비판
식품업계 "정부 차원 지원 필요"...장애인단체 "점자표기에 정부, 업체 적극 나서야"

 

【 청년일보 】 최근 'ESG 경영'을 위한 유통업계의 움직임이 분주하게 이뤄지고 있다.

 

친환경 제품 출시, 친환경 캠페인 전개 등 지속가능성을 위한 업계의 다양한 ESG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 같은 기업의 ESG 활동에서 취약 계층 소비자를 위한 개선 활동 등은 크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당국의 적극적인 권고에도 불구하고 시각 장애인 등을 위한 식품 상품의 점자 표기 등은 여전히 저조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나 취약 계층 소비자 배려를 위한 유통업계의 인식 제고가 시급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당국 '식품 점자 표기 가이드라인' 배포...식품 상품 점자 표기율 '저조'

 

당국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장애인 소비자의 보다 나은 상품 접근성을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선 바 있다.

 

22일 관련업계에 딷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지난 7월 6일 각종 식품업체를 대상으로 '식품 점자 표기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여기에는 시청각 장애인이 마트 등에서 식품을 살 때 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구체적으로는 점자와 음성·수어영상 변환코드(QR 코드)의 식품 표기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이 담겼다.

 

당시 식약처는 "식품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시청각 장애인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식품의점자 표시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며 점자와 변환코드의 표시 규격,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하는 정보, 위치 등을 명시했다.

 

구체적으로 가이드라인에는 앞으로 들어갈 점자 정보에 제품명을 기본으로 포함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보관방법이나 주의사항 같은 나머지 정보는 필요 시 추가로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위치는 상표가 인쇄돼 있어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통상적으로 볼 수 있는 면에 담도록 했다.

 

또 가이드라인은 음성·수어영상 변환코드는 잉크, 각인, 소인 등을 사용해 지워지지 않게 표기해야 한다는 규정을 담았으며, 포장 특성상 인쇄가 불가피한 경우 스티커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변환코드에는 ▲제품명 ▲내용량 ▲업소명 ▲보관 방법 ▲알레르기 유발물질 등 5개 정보가 제공되며, 표기 위치는 점자 표기와 같다.

 

하지만 당국의 가이드라인 배포에도 불구하고 실제 식품 상품의 점자 표기율은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8일 한국소비자원(이하 소비자원)이 발표한 음료, 컵라면, 우유 제품의 점자 표기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점자 표기율은 37.7%에 불과했으며, 점자가 포함돼 있더라도 유통기한 등 필수정보가 포함되지 않는 등 정보에 대한 가독성이  매우 낮았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전체 조사대상 식품 321개 중 오직 121개(37.7%) 제품에만 점자가 표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음료 조사대상 7개 업체 중 롯데칠성음료가 생산하는 제품의 점자 표기율이 64.5%를 기록해 1위를 차지했고 컵라면 조사대상 4개 업체 중에서는 오뚜기라면이 63.2%를 기록해 선두를 달렸다.

 

제품 종류별로 살펴보면, 음료는 191개 제품 중 49.2%(94개)에 점자 표기가 존재했으며 89개 중89.9%(80개), 페트병은 102개 중 13.7%(14개)에 점자가 표기됐다. 컵라면의 경우 90개 제품 중 28.9%(26개)에 점자가 표기됐고, 우유는 40개 제품 중 1개(서울우유, 3,000mL)만 점자가 표기돼 있었다.

 

또 점자 표기가 있는 121개 제품을 대상으로 세부내용(표시내용, 가독성 등)을 조사한 결과, 음료(94개) 중 85.1%(80개)가 ‘음료’ 또는 ‘탄산’으로만 표기하고 있고, 14.9%(14개)만 제품명을 표기했다.

 

결국 점자가 표기 돼 있더라도 제대로 된 상품 정보를 알 수 없는 셈이다.

 

컵라면 26개 제품의 경우 모두 전체 제품명 또는 제품명을 축약해 표기했고, 우유(1개) 제품은 업체명을 표기하는 등 제품 종류별로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

 

식품의 유통기한은 조사 대상이 된 모든 제품에서 표기하고 있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이 상품을 구매한 이후 보관 과정에서 변질된 식품을 섭취할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높다는 지적이다. 

 

소비자원은 식품의 점자 표기는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기 때문에 조사대상 사업자 및 제품 종류별로 주요 정보의 점자 표기율에 차이가 큰 것으로 분석했다.

 

 

◆식품업계 "점자 표기 확대 위해 정부 차원 지원 필요"...장애인협회 "정부·업체 협력해 열악한 소비 환경 개선해야"

 

식품 점자 표기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장애를 가지고 계신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점자 표기 등을 확대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제품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과정과 같은 현실적인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점자 표기 등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지금 당장은 그리 녹록치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점자 표기를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포장재와 기술, 수반하는 공급 과정을 신설해야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여기에 더해 상품 하나하나를 어떤 이름으로, 명칭으로 통일해 표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아직까지는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기술적인 문제, 비용적인 측면, 점자 표기 기준에 대한 논의 등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업체 혼자 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며,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부 식품업체는 점자 표기 등 장애인 소비자 등을 배려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례로 롯데칠성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08년 8월부터 주류와의 구분 등 시각장애인의 배려 차원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점자 표기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면서 "초기에는 음료로 표기하였고, 이후 제품군 구분을 위해 음료, 탄산으로 구분하여 표기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칠성은 지난 18일 소비자원 조사에서 음료 부문 점자표기율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또 "아울러 자사의 제조 가능한 PET병에 점자 표기 검토를 꾸준히 진행하여 현재 일부 제품에 제품명 점자 표기를 하고 있다"면서 "점자 표기의 경우 이후에도 자사 제조가 가능한 PET병 및 주력 제품군에 대해 제품명 표기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 중이며 현재에도 PET에 칠성사이다, 펩시콜라 등으로 제품명 표기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롯데칠성은 점자 표기 외에도 보행장애아동을 위한 특수신발 제작 후원·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 '그린위드' 개소·기타 장애인단체 대상 기부활동 등을 벌이며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취약계층과 동행하기 위한 행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편 시각장애인 단체는 점자 표기를 위한 업계의 공정상, 비용상의 우려를 인정하면서도, 관련 기술과 제도를 더욱 정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점자 표기를 요구하는 이유는 단순 상품 구매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만약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가장 작은 매장 카테고리인 편의점을 들어갔다고 가정한다면, 출입문이 어디인지부터 내가 찾는 물건은 어디에 있는지도 찾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점자 표기를 요구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시각장애인이 상품을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내가 손에 들고 있는게 어떤 품목이고, 상품 종류인지를 구별해서 쉽게 보관하고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데 있다"고 설명했다.

 

열악한 점자 표기 현황에 대한 국내 식품업계에 대한 비판과 제언도 이어졌다.

 

이 관계자는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상품에 점자 표기가 돼 있는 제품을 찾는 것이 안되어 있는 것을 찾는 것보다 오히려 더 쉬울 정도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국내 환경은 열악하다"고 비판했다.

 

또 "사실 업체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장애인 단체의 입장에서는 점자 표기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는 있지만, 기술적으로 자문을 하는 과정에서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전했다. 

 

이어 "업체 입장에서는 비용적인 문제와 포장 공정에 있어서의 큰 문제가 있다고 알고 있다"면서도 "그렇기에 더욱 정부, 업체, 장애인 단체가 이 같은 주제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 하고,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심도 있게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 관계자는 "일부 업체에서는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100%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상품 파악이 어느정도 가능한 상품을 내놓는다"면서 "나름대로 표기법, 포장재 등을 고민해 제품을 출시하는 업체들처럼 더 많은 업체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기에 적극적으로 나서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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