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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적 리더십이 삼성그룹 쇄신 견인"···'재계 거목' 이건희 선대회장 정신 재조명

故 이건희 회장 별세 3주기···과거 '변혁적 리더십' 행보 재조명
주변 만류에도 반도체 승부수···일각 "삼성 반도체 신화 첫걸음"

 

【청년일보】 최근 한국경제가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로 고유가·고금리·고환율 등 소위 '3고(高) 현상'이란 거대한 암초를 맞닥뜨렸다. 심상치 않은 위기에 봉착하면서 국내 대다수 기업들은 향후 경영 행보에 자칫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이를 두고 당면한 경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재계 안팎에선 과거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탁월한 '변혁적 리더십'을 계승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변혁적 리더십은 조직구성원들로 하여금 리더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하는 카리스마는 물론, 조직변화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한국 재계 거목(巨木)으로 불리던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 3주기를 맞아 그의 강한 리더십 면모, 혁신과 불굴의 도전정신이 눈부신 경제도약을 이뤄냈다는 평가가 업계로부터 새삼 재조명받고 있다. 

 

25일 재계와 학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건희 선대회장의 변혁적 리더십 표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발표한 '신경영 선언'이다.

 

이 선대회장은 본사 주요 임원과 해외 주재원 등 200여 명을 켐핀스키 팔켄슈타인 호텔로 불러 모으며 "앞으로 21세기에는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대변혁의 시대에 하루 속히 글로벌 스탠다드에 적응하지 못하면 삼성은 영원히 2류, 3류로 뒤처지고 만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문했다. 

 

이같은 주문 배경엔 미국 로스엔젤레스(LA) 전자제품 매장 구석에 먼지만 쌓인 채 놓이고 있는 삼성 TV와, 세탁기 불량 부품을 칼로 깎아 조립하는 것을 본 뒤였다. 

 

당시 직원들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으며 이는 이 선대회장의 분노와 개혁의지를 달아오르게 한 '시발점'이었다.

 

신경영 선언 직후 변혁에 대한 의지를 내비춘 단적인 사례가 '불량 무선전화기 화형식'이다. 당시 삼성전자 무선전화기 사업부는 신경영 선언 이후에도 품질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완제품 생산에 몰두했다. 

 

이에 따라 제품 불량률이 11.8%까지 이르자 이 선대회장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의 운동장에서 천문학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무선전화기, 키폰 등 15만대, 500억원 원어치의 제품 등을 전량 수거해 화형식을 거행한 것이다. 

 

이같은 '충격요법'은 오늘날까지 삼성전자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왕좌'를 지켰다는 후문이다. 신경영 선언 이듬해인 1994년 국내 4위였던 삼성의 무선전화기 시장 점유율은 불과 1년 만에 19%를 달성하며 단숨에 1위 자리로 올라섰다.  

 

그보다 앞서 이 선대회장의 과감한 면모와 선구안적 혜안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눈에 띤다. 바로 기술 불모지에서 반도체 산업을 적극 추진한 것이다.

 

50년 전인 1973년, 4차 중동전쟁으로 인한 '제1차 오일쇼크'에 직면하면서 이 선대회장은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하이테크산업으로 진출해야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1974년 때마침 파산 직전인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에 적극 뛰어들었다. 주변 경영진들의 만류에도 이 선대회장은 물러서지 않고 사재를 털어 자금난에 허덕이던 웨이퍼생산업체 한국반도체의 지분 50%를 인수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3년 뒤인 1977년 12월, 미국 ICII사(社)가 가지고 있던 나머지 지분 50%도 인수했으며 이듬해 3월 삼성반도체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했다. 오늘날 아직까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삼성 반도체 신화의 '첫걸음'이었다.

 

사업 초기에는 미국, 일본 등 해외 반도체 선도기업에 비해 기술이 부족했고 장벽을 뛰어넘기란 무척 어려웠던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미국 실리콘밸리 등을 50여 차례나 드나들며 우수 인재들을 확보했다. 

 

특히 당시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던 미국 페어차일드사(社)를 설득, 삼성전자 지분 30%를 내주는 조건으로 기술 이전에 성공했다.

 

이후 1983년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64K D램 개발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어 ▲1992년 세계 최초 64메가 D램 상용화 ▲1993년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1위 기록 ▲1994년 256Mb D램 개발에도 성공했다. 

 

재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과거 1970년대 반도체 불모지 국가에서 오늘날 메모리반도체 '왕좌' 타이틀이 붙은 데는 이 선대회장의 선구안적 혜안이 빛을 발한 부분이다"면서 "특히 불량제품은 암이라는 인식과 철학 아래 품질경영으로 제품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삼성은 눈부신 발전을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최근 한국경제가 대내외적 여파로 동시다발적 경제 리스크가 발발한 상황에서 삼성뿐만 아니라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신성장동력 발굴, 공급망 다변화처럼 이건희 선대회장 같은 강력한 추진력이 긴요한 시점"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이 선대회장 영면 3주기를 맞는 이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유족을 비롯한 삼성 계열사 사장단·임원 등이 경기도 수원 선영을 찾아 추모식을 거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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