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첩·마요네즈·식초 등 국민 스테디셀러를 보유한 오뚜기가 올해 55주년을 맞았다. 국민 카레 신화를 쓴 고(故)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의 경영철학부터 현재까지 오뚜기의 역사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上) 국민 식량난 해소 기여한 '풍림상사'…'갓뚜기'는 오히려 '독이 든 성배'
(中) "국내 식품사 한 획"…함태호 창업주, 부잣집 아들에서 군인·기업인으로 변신
(下) K-라면 키플레이어 '시동'…내수 위주에서 탈피 글로벌 공략 '풀어야 할 숙제'
【 청년일보 】 "오뚜기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겠다는 것이 아니라, 결코 넘어지지 않고 항상 서 있는 부전상립(不轉常立)이다"
오뚜기의 창업주인 고(故) 함태호 명예회장이 오뚜기를 경영하며 내세웠던 기업 정신이다.
사실 오뚜기는 표준어가 아니다. 밑이 무거운 어린이들의 장난감으로 어떻게 굴려도 오뚝오뚝 일어서는 '오뚝이'가 표준어다.
함태호 명예회장 역시 이런 '오뚝이' 정신을 기반으로 6.25 이후 국내 식품산업을 살려 나라 발전에 기여하고자 했다.
실제로 1950년 6.25 전쟁 이후 국민들은 식량난과 싸워야 했다. 미군들이 먹고 남은 찌꺼기를 받아와 솥에 넣고 끓인 일명 '꿀꿀이죽'을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하는 등 현실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 건강을 위해 고민하던 함태호 명예회장은 40세가 되던 1969년 5월 5일 오뚜기의 전신인 풍림상사를 창업한다. 작은 나무를 오래 보살펴 큰 숲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담은 이름이었다.
함태호 명예회장은 풍림상사 창업과 함께 '분말카레' 제품을 내놓는다. 1969년 출시된 '오뚜기 카레'는 최초 분말 형태, 국내 최초 카레 제품, 국내 최초 레토르트 제품 등으로 일명 파격적인 제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카레는 한국 전통 음식이 아니고, 출시 당시만 해도 카레는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즐기는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도 음식인 '카레'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40년대다. 당시 일본산 카레 등 수입 제품이 있었으나 특유의 강한 향으로 당시 국내에서 별로 인기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함태호 명예회장은 시각을 바꿨다. 한국인들의 주식인 쌀과 매콤한 맛을 곁들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오뚜기 분말 즉석카레'를 출시한 이후 회사는 카레의 건강함을 강조했고, 이를 맛볼 수 있게 시식행사도 진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진행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카레는 국민 음식으로 자리잡았고 회사는 1971년 6월 풍림식품공업으로 법인을 전환하는 과정을 거쳐 1996년 현재의 '주식회사 오뚜기'가 됐다.
◆ 오뚜기가 '갓뚜기'가 되기까지…특정 정권과 친밀한 이미지는 오히려 '독'
오뚜기는 지난 55년 간 '보다 좋은 품질, 보다 높은 영양, 보다 앞선 식품으로 인류 식생활 향상에 이바지한다'는 사시(社是)를 바탕으로, 높은 영양과 다양한 소비자 니즈를 고려한 제품을 개발하는 등 식품 다양화를 통해 내실을 다지며 소비자에게 신뢰받는 기업이 됐다.
55년간 소비자의 신뢰를 받는 기업이 되기까지 여정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함태호 명예회장은 기업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기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미래사회의 주인공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후원사업을 구상하던 중 선천성 심장병을 앓는 어린이들이 10세 이전에 수술을 받지 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한국심장재단과 결연을 맺고 1992년도부터 후원을 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함태호 명예회장의 장남 함영준 오뚜기 회장은 2016년 3천500억원 상당의 주식에 대한 상속세 1천500억원가량을 모두 납부하기도 했다. 일부 재계 2~3세들의 상속세 편법 납부와 상반된 행보를 보여 주목을 받은 것이다.
특히 오뚜기는 함태호 명예회장의 '비정규직을 쓰지 말라'는 말을 아직까지도 지키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오뚜기의 전체 근로자는 3천292명으로 이중 전체의 1.8%에 해당하는 기간제 근로자는 60명이다. 실제로 오뚜기는 마트에 파견하는 시식사원까지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
이런 긍정적인 행보로 인해 오뚜기는 정직한 기업, '갓뚜기(god+오뚜기)' 등으로 불리게 된다. 특히 오뚜기는 지난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14대 그룹 총수들과 만나는 자리에 참석하며 재계를 놀래키기도 했다.
당시 15대 그룹 중 농협을 제외한 삼성·현대기아차·SK·LG·롯데·포스코·GS·한화·현대중공업·신세계·KT·두산·한진·CJ 등이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재계순위 232위였던 중견기업 오뚜기도 자리에 초청받았다.
문 전 대통령이 경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였는데, 당시 대화 주제는 '일자리 창출과 상생협력'이었다. 이에 걸맞는 기업이 바로 오뚜기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함영준 회장에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오뚜기를 '갓뚜기'로 부른다면서요"라고 말을 건낸 후기도 들려왔다. 이후 함영준 회장은 "굉장히 부담스럽다"며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다만 이로 인해 오뚜기는 일부 극우 성향의 고객에게 지적을 받기도 했다. 아울러 현재 정권이 바뀌며 전 정권과 친밀했던 이미지가 결국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에서도 정치 문제가 양극화되며 민감한 문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한 정권에 친근한 이미지가 되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분위기가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면이 있다"며 "소비자와 친근한 B2C 식품산업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중요한데, 특히 특정 정권과 가깝게 되면 반대 성향의 고객들로부터 불매운동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청년일보=신현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