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정부는 KC 인증(국내안전 인증)을 받지 않는 제품의 해외 직접구매(이하 직구) 80개 품목의 해외 직구 금지를 사실상 철회했다. 최근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를 비롯한 직구 플랫폼을 통해 유통된 어린이용 장신구 등에서 기준치 수백 배에 이르는 발암물질 검출에 따른 조치를 철회한 것이다.
정부는 관계부처합동 기자회견을 통해 해명에 나섰다. 80개 품목 중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직구를 차단할 방침이었다고 설명한 것이다. 사과도 이어졌다. 지난 16일 대책 발표 때 상세하고 구체적인 설명의 부재로 국민께 혼선을 끼쳐 죄송하다는 내용이다.
국무조정실은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사흘 전인 16일 'KC 미인증, 80품목의 해외 직구 금지'를 밝히며 내달 중 실시한다는 발표와 달리 "안전성 조사 결과에서 위해성 확인 제품만 반입 제한해 나갈 계획"이라며 "80품목에 대해 사전적 해외 직구를 차단·금지하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시가 '가정의 달' 중국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판매 상품 중 완구와 학용품 등 높은 수요가 예상되는 어린이 제품 9개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실시한 결과, 어린이 점토와 활동보드, 색연필 등 5개 제품에서 사용금지 유해물질이 검출됐고, 물리적·기계적 시험에서도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이들이 놀이나 학습용으로 많이 쓰는 어린이 점토 2종에서 모두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CMIT와 MIT 성분이 나왔다. 이 성분들은 일정 농도 이상 노출 시 피부, 호흡기, 눈에 강한 자극을 줄 수 있어 어린이 점토에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
정부는 16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해외 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국가통합인증마크(KC) 인증이 없는 어린이 제품 34종과 전기·생활 용품 34종, 가습기용 소독·보존제 등 생활화학제품 12개 품목을 합해 총 80종에 대한 직구 금지가 골자였다.
KC 인증이 없거나 신고·승인을 받지 않은 제품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직구 자체를 막는 것은 아니지만 통관 과정에서 최대한 걸러낸다는 방침이다.
곧 실효성 문제가 불거졌다. 해외 판매자에게 KC 인증을 받으라고 강제할 수 없고 통관 전수조사 등을 통해 KC 인증이 없는 물품을 걸러내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정가에서는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는 비판의 소리도 나왔다. 정책 발표 사흘만에 나온 사실상 철회 발표에 소통을 통해 여론을 수렴한 빠른 대응이란 칭찬이 아닌 임기응변식 대응이었다는 것을 자인한 결과다라는 비판에 대해 무엇이라 답할 수 있을까.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란 말도 있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 비판의 소리를 뒤로 하고 더 점검해야 할 사안도 있다.
직구로 들어오는 외국산 제품에는 한국 세제와 인증 규제가 적용되지 않아, 국내 유통업계와 소상공인들이 역차별로 피해를 본다는 지적과 같이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는 저가품이 급증할 수 밖에 없는 세제의 구조적 문제도 함께 들여다 봐야한다는 지적이다.
해외 이커머스 등을 통해 상품을 직접 구입하는 직구는 정식 수입 절차를 거친 제품과 달리 한 번에 150달러(미국발 200달러) 미만이면 관세·부가세가 면제돼 국내 유통 제품보다 가격이 저렴한 경우도 많아 저가 수요자의 직구 구매는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구조적 문제와 KC 인증 제도의 실효성 있는 보완 문제다.
이번 80개 품목 해외 직구 금지 과정에서도 저가품에 대한 소비자 수요 충족 문제와 안전 문제라는 상충된 가치가 경합을 벌이는 과정에서 결국 KC 미인증 80품목 직구 금지로 결론 난 것으로 알려졌다.
'언 발에 오줌누기'식 대응 보다 사안의 구조적 문제 파악과 함께 중장기적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 정책 입안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사과가 반복되면 신뢰성을 잃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일련의 정책들에 대해 입안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닌 사후 평가도 중요한 이유다.
【 청년일보=전화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