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연내 추가 공급 대책 발표"를 공식화하며 정부의 정면 돌파 의지를 분명히 하자, 설(說)로만 무성하던 수도권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추가 해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는 과거 무산됐던 도심 유휴부지는 물론 그린벨트 해제까지 가용한 모든 카드를 꺼내 들어 집값을 잡겠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서울 서부권 등에서는 '이번엔 우리 차례'라는 기대감을 키우는 반면, 지난해 지정된 서초 서리풀지구 등 기존 사업지는 보상 갈등과 환경 이슈로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어 '공급 만능론'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 공급 부족에 '정면돌파' 선언... 그린벨트·태릉CC 등 국토부도 '영끌' 예고
그동안 시장의 소문으로만 돌던 '추가 공급'은 이날 김윤덕 장관의 발언으로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김 장관은 전날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국토부·LH 합동 주택 공급 TF' 현판식에서 "가능하면 연내 추가 공급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다 어려움을 겪었던 곳(노원구 태릉골프장,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 등)과 그린벨트 해제 가능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9·7 대책 발표 이후에도 수도권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정부가 정면 돌파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장관은 "서울시가 요청한 18개 사안 중 80~90% 이상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공조 체제를 통한 공급도 강조했다.
◆ "정부가 판 깔아줬다"... 양천·강서 덮친 '그린벨트 해제' 기대감
이러한 정부의 강력한 시그널은 즉각 시장의 기대 심리에 불을 지폈지만 정작 해당 지역에서의 분위기는 미묘함도 감지된다.
개화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사실 이 지역은 공항 때문에 아무것도 안 된다. 그래도 얼마 뒤에는 고도 제한이 좀 풀린다는 얘기도 있고, 공항 주변도 개발되니 활기는 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린벨트 얘기도 여름부터 나오긴 하는데 특별히 문의가 많거나 그런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다만 이제는 (서울에) 남은 게 여기밖에 없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그린벨트 해제가) 계속 이야기는 나오는데 실체가 없지 않나. 그래도 풀린다면 여기도 타지역 만큼 올라갈 충분한 여력이 있다. 마곡만큼이라도 개발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포공항 인근 지역에 고도 제한 등 뚜렷한 개발 제약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악조건을 상쇄할 만큼 '서울에 남은 마지막 대규모 평지'라는 희소성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과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만큼, 이번에는 확실한 물량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투기 심리를 자극하는 모양새다.
◆ 현실은 '졸속 논란'... 맹꽁이·새매 서식지에 멈춰 선 '서리풀'
하지만 정부의 속도전과 시장의 장밋빛 기대와 달리, 현실의 벽은 높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서초구 서리풀지구(2만 호) 등 신규 택지 4곳은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주민 반발과 환경 이슈에 부딪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토부는 내년 1월 지구 지정을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환경영향평가 등을 무시한 졸속 행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7일 열린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청회에서 주민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새정이마을 주민 대표 A씨는 "개발 예정지에서 천연기념물인 새매와 소쩍새, 맹꽁이 등 다수의 법정보호종이 발견됐다"며 "전체 조사 기간이 10일에 불과했는데, 시간적 여유조차 주지 않고 확정 고시를 강행하려는 것은 환경 가치를 무시하는 전형적인 졸속 행정"이라고 꼬집었다.
더욱이 서리풀 1지구뿐만 아니라 우면동 일대 2지구 주민들까지 가세해 오는 24일 예정된 설명회 집단 불참을 예고한 상태다.
반면, 주민들의 집단행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공익을 위한 주택 공급 사업이 집단 이기주의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애먼 환경영향평가를 들먹이며 결국은 보상금을 높이려는 수작 아니냐"며 날 선 비판을 감추지 않고 있다.
환경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감정평가액을 높이거나 유리한 보상 조건을 끌어내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이라는 해석이다.
기존 사업지의 갈등도 봉합하지 못한 채 추가 지정만 남발할 경우, 또 다른 사회적 비용만 양산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 전문가들 "발표가 능사 아냐...투자자 묻지마 진입 시 '강제 수용' 낭패"
전문가들은 정부의 조급증과 시장의 쏠림 현상 모두를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그린벨트) 해제를 발표하더라도 실제 아파트가 공급되기까지는 인허가와 보상 절차로 최소 10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며 "특히 공공택지로 지정되면 그 주변이 투자 효과가 있는 것이지 해당 토지주는 개발 이익이 없다"고 경고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단순히 주택 공급 물량을 늘리기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방식에는 부정적"이라며 "다만,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역전략산업' 육성 등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목적의 해제라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공공택지 개발은 원칙적으로 기존 토지 소유권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즉, 원소유주는 개발 이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소유권을 내놓고 현금 청산을 받고 나가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연내 추가 대책이라는 정부의 '승부수'가 시장 안정을 가져올지, 아니면 또 다른 투기판과 갈등의 불씨가 될지 우려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