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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선 교수의 건강한 피부, 건강한 삶] <77> 모두가 피부색이 다른 이유, 진화가 선택한 생존 전략

 

【 청년일보 】 "피부는 태어난 그대로의 컬러도, 살아온 시간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 다양한 피부색, 그것은 진화가 남긴 생리학적 지문

 

세계 어디를 가든 사람의 피부색은 서로 다릅니다. 마치 대지의 색처럼, 흙, 모래, 석회암, 숯과 같이 다양하게 빛나는 피부는 단순한 외모의 차원을 넘어선 환경 적응의 증거이자, 생리학적 진화의 역사입니다.

 

인간은 유일하게 피부에 털이 거의 없는 유인류입니다. 그만큼 피부는 외부 환경과 가장 직접적으로 접촉하며, 몸을 보호하는 주요 생존 기관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피부를 지배하는 핵심 요소는 바로 멜라닌(melanin)이라는 색소입니다.

 

◆ 멜라닌의 역할…보호와 적응의 이중 기능

 

멜라닌은 피부색을 결정하는 색소일 뿐 아니라, 자외선(UV)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생리학적 방어막입니다. 멜라닌은 피부의 표피층 가장 아래에 위치한 멜라닌세포(melanocyte)에서 생성되며, 이 세포는 촉수처럼 뻗은 돌기를 통해 주변 피부세포에 멜라닌을 전달합니다.

 

자외선은 DNA를 손상시키고 세포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에너지원입니다. 멜라닌은 이 자외선을 흡수해 세포 손상을 최소화하고 돌연변이 발생 위험을 낮추는 필수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멜라닌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며, 이 두 색소의 조합이 피부색의 스펙트럼을 만듭니다. ▲유멜라닌(Eumelanin)은 어두운 갈색에서 검은색을 띠며 자외선 차단 효과가 뛰어납니다. ▲페오멜라닌(Pheomelanin)은 붉은빛 또는 노란빛을 띠며, 유멜라닌보다 자외선 흡수력이 약합니다.

 

밝은 피부를 가진 사람은 주로 페오멜라닌 비율이 높고, 어두운 피부를 가진 사람은 유멜라닌 비율이 높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거의 비슷한 수의 멜라닌세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짜 차이는 바로 이 멜라닌이 얼마나, 어떤 비율로 만들어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피부색은 기후와 태양이 만들어낸 '진화의 전략'

 

현대 인류의 조상은 약 1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부는 기후 조건, 특히 자외선의 강도와 비타민 D의 필요성에 따라 진화적 선택을 받아왔습니다. ▲적도 지역은 자외선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막아야 생존에 유리했습니다. 유멜라닌이 풍부한 어두운 피부가 선택되어, 자외선으로부터 DNA를 보호하고 피부암 등의 위험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고위도 지역: 일조량이 적고 태양빛이 약한 지역에서는 오히려 자외선을 더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유멜라닌이 적고 페오멜라닌이 많은, 더 밝은 피부색이 비타민 D를 충분히 합성할 수 있어 생존에 유리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피부색은 단순히 미용적 특성이나 유전적 표현이 아니라, 햇빛의 세기와 생리적 필요에 따라 적응한 '진화적 생존 도구'였습니다.

 

◆ 여성이 남성보다 피부색이 옅은 과학적 이유

 

많은 지역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적으로 피부색이 더 밝습니다. 사회적 요인이나 야외 활동의 차이로도 설명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진화생리학적 적응에 있습니다.

 

여성은 임신과 수유로 인해 칼슘과 비타민 D의 요구량이 훨씬 큽니다. 칼슘은 태아와 모유 형성에 필수이며, 이를 흡수하기 위해 비타민 D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비타민 D는 자외선 B(UVB)가 피부에 도달해야만 합성된다는 점입니다. 피부가 어두우면 멜라닌이 자외선을 차단하여 비타민 D 합성률이 낮아지게 됩니다. 반대로 밝은 피부는 자외선을 더 효율적으로 받아들이고, 비타민 D를 효과적으로 합성합니다.

 

따라서 여성은 보다 원활한 비타민 D 합성을 통해 생식 기능과 모성 생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진화적으로 더 밝은 피부색을 갖게 되었을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설은 여러 인류학적 연구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으며, 특히 Jablonski & Chaplin (2017)의 연구는 이 가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합니다.

 

 

◆ 단일한 진화 방향은 없다…지역성과 유전적 다양성

 

하지만 이 현상이 모든 지역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포르투갈, 아일랜드, 멕시코 등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피부색이 더 짙은 경우도 관찰됩니다. 이는 지역적 유전적 다양성과 함께, 식생활, 문화, 복장 습관 등의 차이에 기인할 수 있습니다.

 

즉, 성별에 따른 피부색 차이는 진화의 일반적 경향일 수는 있어도, 단일한 법칙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 피부색, 차별이 아닌 다양성의 증거

 

피부색은 아름다움의 우열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가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어떻게 생존해왔는지를 증명하는 자연의 역사입니다. 자외선, 호르몬, 식생활, 지리, 그리고 생리학이 수천 년간 서로 얽혀 만든 결과물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피부색을 외모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대신 그것을 지구상의 수많은 삶의 조건 속에서 진화해 온 인류 다양성의 증거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참고문헌
Jablonski, N. G., & Chaplin, G. (2017). The colours of humanity: The evolution of pigmentation in the human lineage.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 372(1724), 20160349.

 


글 / 박태선 연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1995~)
㈜보타닉센스 대표이사 (2017~)
연세대학교 연구처장/ 산학협력단장/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사 (2012~2014)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광고특별위원회 위원장 (2011~2013)
International Journal of Obesity, Editorial Board Member (2011~)
Molecular Nutrition & Food Research, Executive Editorial Board Member (2011~)
미국 스탠포드의과대학 선임연구원 (1994~1995)
미국 팔로알토의학재단연구소 박사후연구원 (1991~1994)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데이비스 캠퍼스) 영양학 박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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