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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부동산 블루' 키우는 여권의 내로남불 부동산 정치

집값 폭등으로 우울과 불안감 증폭···'시늉' 뿐인 LH 사태 수사와 조직 개편
여당의 투기 의혹 의원 봐주기 징계, 내년 대선서 '핵폭탄급 부메랑'될 수도

 

 

【 청년일보 】 문재인 정부 들어 유난히 부동산과 관련한 신조어(新造語)가 넘쳐나고 있다. 신조어는 말 그대로 새로이 만들어져 사용되는 것으로 당대의 사회문화 현상을 반영한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다는 '영끌'과 공포에 의한 매수를 뜻하는 '패닉 바잉'은 이제 일상 언어가 될 정도로 익숙해졌다. 집값이 치솟아 갑자기 거지 신세가 된 무주택자를 의미하는 '벼락거지'도 마찬가지.

 

시대적 분위기를 풍자한 '부동산 블루'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생겨난 '코로나 블루'를 부동산 시장에 차용한 것이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19로 인해 생긴 우울감이나 불안감, 그리고 무기력증을 말한다.

 

집값 폭등은 코로나 19보다 더욱 큰 우울감, 불안감, 그리고 무기력증을 낳는지도 모른다. 월급만 모으고 재테크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거지로 전락하면서 나만 뒤처진 것 같은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도 안겨주기 때문이다.

 

부동산 신조어가 봇물처럼 터지는 것은 집값 폭등에 대한 불만과 함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신도시 땅 투기 사건은 자괴감과 함께 분노를 불러왔다. "영혼이 털린 기분" 또는 "LH 꼴 보려고 촛불집회에 참석했나" 같은 반응이 쏟아진 것이다. 

 

이 사건은 지난 3월 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 의해 폭로된 것이 발단이다. LH 직원들이 3기 신도시 등 자사의 사업 계획과 연관이 있는 지역에 집단적으로 땅 투기를 한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광명과 시흥의 신도시 사업지역이 대표적이다.

 

신도시로 지정되면 LH가 법에 따라 땅을 수용하는데, 이 때 땅값 뿐만 아니라 나무값도 쳐준다. 이들은 더 많은 보상금을 노려 1㎡의 면적에 무려 25그루의 왕버들 나무를 심었다. 적정 공간은 나무 1그루당 4㎡다. 한마디로 나무 1그루를 심어야 할 공간에 100그루를 심어놓은 것이다. 

 

묘목은 숫자대로 보상이 나간다. 이에 따라 보상금을 계산하면 대략 1평당 100만원이 나온다. LH 직원들이 구입한 땅은 대부분 1000평이 넘어 단순 계산해도 10억원을 보상받게 된다. 일부 직원은 단가 책정을 할 수 없어 부르는 게 값인 에머랄드 그린을 심었는데, 수익률이 900%에 이른다고 한다.

 

4000㎡ 가량의 땅을 4명이 지분 쪼개기로 투자한 경우도 있다. 대토보상(代土補償) 기준이 1000㎡ 이상이라는 점을 이용해 최대한 보상 받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토지보상금은 현금 지급이 원칙이지만 토지 소유자가 원하는 경우 개발된 땅으로 지급받을 수 있고, 특히 1000㎡ 이상이면 아파트를 보상으로 받을 수도 있다.

 

LH 직원 4명이 지분 쪼개기를 한 땅을 보면 썰어놓은 떡처럼 4필지로 나뉘어져 있다. 그런데 모두 도로와 맞닿은 부분이 없는 맹지(盲地)다. 신도시 개발을 통해 보상이라도 받지 않으면 투자가치가 없다. 이처럼 입지 매리트가 없어 투자가치가 없는 땅을 매입한 것은 사전 또는 미공개 정보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지난 2일 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사건 수사에 대한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를 중심으로 한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가 세 달 동안 벌인 수사라며 내놓은 결과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15개 지방 경찰청과 국세청,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의 전문 인력 1560명을 동원한 결과가 2800명 수사에 구속 20명, 그리고 추징금은 1000억원도 안 된다. 초대형 사건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출구 전략' 아니냐는 지적과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마치 엄정한 수사가 이루어질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한 후 대충 발을 빼는 계기로 중간결과를 발표하는 경우는 이전에도 흔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지적과 우려는 지난 7일 발표된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LH 혁신 방안'에서도 재현됐다.

 

혁신 방안에 따르면 개발 정보 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LH의 공공택지 입지조사 권한은 국토교통부가 회수한다. 또 LH 인력의 20% 수준인 2000명을 감축하고, 모든 직원은 의무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등록해야 한다. 실제 사용하지 않는 주택이나 토지 취득도 금지된다.

 

하지만 이번 혁신 방안에는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 비리를 어떻게 색출해 처벌할지에 대한 대책은 없다. 

떠들썩하게 말잔치를 벌여온 LH 조직 개편은 추가 의견 수렴을 거친다는 이유로 미뤄졌다. 해체 수준으로 LH를 바꾸겠다고 공언한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의 발언을 무색하게 하는 결론이다.

 

지난 3월 30일 더불어민주당은 국민권익위원회에 당 소속 국회의원 전원의 부동산 투기 전수조사를 의뢰했다. 4·7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LH 사태에 대한 '국민 공분'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의원 174명은 물론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 등 816명을 대상으로 지난 7년간의 부동산 거래를 조사했다. 하지만 의원들에게 금융거래 정보제공 동의서를 요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출발부터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전수조사를 의뢰한 지 69일 만에 나온 결과는 부동산 거래·보유 과정에서 법령 위반 의혹이 있는 12명이 전부다. 이번 조사는 현역 의원에게만 적용됐다. 문제가 된 3기 신도시 발표는 지난 2018년 12월이다. 당시 의원들 중 지금 국회에 없는 이가 무려 58%나 된다.

 

의원 중 일부는 업무상 비밀을 이용해 지역구 개발사업 관련 토지를 매입하거나 대규모 개발 계획 발표 전에 본인이나 가족 명의로 부동산을 매수한 의혹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지법이나 건축법을 위반해 토지 및 주택을 매입하고, 부동산을 타인 이름으로 명의 신탁한 의혹도 있다. 일부 의원은 기초적인 부동산·금융자료도 내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전수조사를 받는다고 했지만 사실상 조사를 회피한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에 송부했다. 그러면서 의혹이 제기된 의원들의 실명은 물론 장소나 사례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더불어민주당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의원들의 실명과 법령 위반 유형은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선출직 공직자의 투기 혐의가 국가기관에 의해 드러나 공식 발표된 것은 주요 사안이다. 그럼에도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와 소속 정당에만 알려주고 소송 절차를 거칠 때까지 공개할 수 없도록 한 것은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지나친 제약일 수 있다. 지난해 감사원이 대통령 소속 기관의 비상임 자문위원에게 규정에도 없는 월급 400만원을 주었다며 급여 수령자의 이름과 지급된 액수까지 공개한 것과 비교되는 조치다.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해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 사람들이다. 그런 만큼 실명과 법령 위반 유형은 물론 구체적인 투기 내용을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다. LH 사태를 고위 공직자 부동산 투기를 발본 색원할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대표적 선출직 공직자인 국회의원이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입버릇처럼 부동산 투기 세력 발본 색원과 함께 부동산으로 절대 돈 벌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본인들에 대한 징계는 고작 탈당 권유다. 탈당 권유는 당사자가 거부하면 그만이다. 보여주기 징계의 전형이다. 

 

윤미향 의원과 양이원영 의원의 경우는 한 술 더 뜬다. 이들 의원은 위안부 운동과 탈원전 운동을 했다고 의원 뱃지를 단 사람들이다. 비례대표로 의원이 된 것인데, 이번 투기 의혹 의원 명단에 포함돼 운동의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 특히 윤미향 의원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해 돈을 챙겼다는 의혹도 쏟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들에게 탈당이 아닌 출당 조치를 했다. 이 때문에 의원직을 유지시켜 주려는 ‘봐주기 징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비례대표는 탈당을 하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지만 출당되면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기 의혹을 전수조사해 징계를 내렸다고 했지만 실제로 불이익을 당한 의원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에 공을 넘겼다. 송영길 대표는 9일 "국민의힘도 국민권익위원회에 요청해 전수조사를 받는 게 맞다"고 압박한 것이다. '물타기'이자 국민의힘도 거대한 풍랑에 끌어들이는 부동산 정치다. 아니다. 징계 내용을 보면 내로남불 부동산 정치다. 

 

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의 부실한 수사,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의 보여주기 또는 봐주기 징계는 무주택자, 특히 2030세대의 분노를 불러올 수 있다. 소위 '빽'이나 고급 정보가 없으면 계층 역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청년들의 지배적 생각인 가운데, 누적돼 온 불만이 이를 계기로 폭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집을 구하지 못한 무주택자들이 경기·인천 등지로 몰리면서 수도권 아파트값은 올해 들어 7% 가까이 올랐다. 지난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전세 시장은 임대차 3법으로 거의 '재앙' 수준이다. LH 사태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조직 개편,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비리 척결은 부동산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첫 단추다. 내년 대선에서의 데미지를 우려해 어물쩍 넘어가면 핵폭탄급 부메랑을 맞을 수도 있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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