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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빚부터 쓰고 보자는 재정 운영···국민 주머니는 '화수분'이 아니다

문 대통령, 재정 건전성 우려에도 불구하고 '확장 재정' 기조 유지 방침 밝혀
국가채무 비율 물론 속도 빠르게 증가, 나랏빚 결국 국민 세금으로 감당해야

 

【 청년일보 】 정부가 경제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쓰는 수단에는 크게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2가지가 있다. 통화정책은 대부분 중앙은행이 관장하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정부 임의로 시행할 수 있는 수단은 재정정책 뿐이다.

 

일반적으로 경기 확장 국면에서는 세율을 높이고 정부 지출을 줄여 경기 과열을 억제한다. 반면 경기 축소 국면에서는 세율을 낮추고 정부 지출을 늘려 경기 활성화를 꾀한다. 정부 지출은 해당 연도의 국내총생산(GDP)을 변경시킬 만큼 영향력이 크다. 

 

재정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정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문에 핀 포인트(pin point) 집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정한 기술 분야의 지원이나 부진한 시장을 부양하고 싶다면 해당 부문에 배정된 예산의 크기를 늘려 집행하면 그만이다. 국회의 예산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여당 의석이 180석에 달하면 '통과 의례'에 불과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7일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했다. 국가재정전략회의는 향후 5년간의 재정 운영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회의에서 결정한 것을 바탕으로 차기 예산안 및 재정 운영 계획을 결정하기 때문에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조금 풀어서 얘기하면 중장기적 시각에서 재정 운영 계획을 세우고, 우선순위에 따라 재원을 배분하자는 취지로 보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회의에서 "재정의 역할이 막중한 시점"이라며 "경제 회복에 더 속도를 내면서 코로나로 인한 양극화 확대를 해소하고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임기를 마칠 때까지 재정 투입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또 "확장 재정을 요구하는 의견과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적어도 내년까지는 경기의 확실한 반등과 코로나 격차 해소를 위해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셈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재정의 역할은 중요하다. 특히 블랙스완처럼 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국면에서 재정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검은 백조'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라를 온통 '빚더미'로 몰아 넣으면서까지 과도하게 재정을 풀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지난 4년 동안 논란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슈퍼 팽창 예산을 견지해 왔다. 2019년(9.5%), 2020년(9.1%), 그리고 2021년(8.9%)에는 예산을 전년보다 9% 내외로 늘려 편성했다. 

 

이를 위해 경기 축소 국면임에도 소득세, 재산세, 법인세 등 주요 세목의 세율을 급격히 올렸다. 재원이 부족하자 지난해부터 연간 100조원 안팎의 국채를 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017년 660조원이던 국가채무는 올해 965조원, 그리고 내년에는 1000조원을 훌쩍 넘어서게 된다. 국가채무에 연금충당부채 등까지 감안한 국가부채는 지난해 이미 2000조원에 육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년 전에도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 건전 재정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져 왔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40%를 두고 "근거가 무엇인가"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후 우리나라의 재정은 확대일로를 걸었다. 일자리 창출, 코로나 19 대응이란 명목으로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습관이 됐다. 결국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채무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며 재정 규율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상황까지 초래했다.

 

국가채무 비율은 물론 증가 속도 역시 문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0~2026년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21%포인트나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35개 선진국 평균 1%포인트를 압도한다. 35개 선진국 평균에 비해 무려 20배 이상 빠른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마저 올해 50%에 근접한 국가채무 비율이 2025년에는 61.7%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국가채무 비율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증가폭이 작고 재정 건전성이 양호한 편"이라며 "아직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재정 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같은 비기축통화국의 국가채무 비율 평균은 53.27%다. OECD 기준으로 계산한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 48.4%와 별반 차이가 없다. 달러와 유로를 사용하는 기축통화국을 제외하면 OECD 회원국 가운데 여섯 번째로 높다.   

 

비기축통화국은 국가채무가 증가할 경우 이자율이 오르고, 재정위기는 물론 금융위기 가능성도 높아진다. 환율이 치솟아 외국인이 주식을 팔고 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 글로벌 경제는 인플레이션 공포에 긴장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재정을 풀어 통화량을 늘리는 것은 인플레이션만 자극할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시중 통화 축소 조치, 즉 '테이퍼링'을 언제든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꼬리를 물고 있다. 한국은행도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 나라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는 셈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4.0%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높은 실업률은 단기간에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 않아 가계 소득이나 소비 회복도 더딜 것으로 보인다. 가계 부채는 이미 위험 수준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확장 재정을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린다면 금리 인상 속도를 더욱 자극해 가계에는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 돌아가게 된다. 영끌과 빚투로 부채 비율 상승폭이 가팔라진 2030세대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포르투갈(Portugal), 이탈리아(Italy), 아일랜드(Ireland), 그리스(Greece), 스페인(Spain) 등 이른바 'PIIGS'는 지난 2010년 과도한 국가채무와 재정적자 탓에 경제 위기에 직면한 바 있다. 돼지(pig)를 연상시키는 PIIGS는 이들 남유럽 국가에 대한 경제적 불신과 조롱을 담은 말이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만성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남미 국가는 언급할 것도 없다. 한국 역시 국가채무가 지금처럼 증가한다면 경제에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독일, 일본, 호주 등은 이미 코로나 19 사태로 축난 재정을 향후 4~5년 내에 복구할 계획을 중장기 재정 운영에 반영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다수 선진국이 헌법과 법률로 규정한 재정준칙조차 여당의 반대로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재정준칙은 재정 건전성 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규범이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국가채무와 재정지출 규모를 관리하는) 재정준칙을 준비해 달라"는 말은 했다. 하지만 단서가 달려 있다. 오는 2025년부터나 적용하라는 것이다. 임기 마지막 1년 동안에도 빚을 늘리면서 차기 정권에 해결을 떠넘기려는 속셈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재정 건전성에 대한 걱정을 한다면 공무원 채용 속도부터 늦추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전 20년간 늘어난 것보다 더 많은 10만명의 공무원을 뽑아 장기 재정 부담을 키운 상태다. '관제 알바'를 줄이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정부는 이해 관계자간 갈등이 심하거나 향후 선거에 불리하다 싶은 정책은 죄다 차기 정부로 미루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이른바 '내 임기 중에는 불가하다'는 님트(NIMT: not in my term) 현상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지지율이나 선거에 유리하다 싶으면 빚을 내서라도 우선 쓰고 보자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결국 청년세대의 미래까지 털어먹는 일이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확장 재정으로 경제가 회복되면서 세수가 큰 폭으로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올해 1분기 세수는 19조원 늘었다. 하지만 이것이 확장 재정 덕분인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코로나 19로 유예됐던 세금이 걷혔고, 주식과 부동산 관련 세금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실제 더 걷힌 소득세 6조4000억원 가운데 주식과 주택 등을 거래할 때 내는 양도소득세가 절반 가량인 3조원을 차지했다.

  

국가채무, 즉 나랏빚은 결국 세금으로 감당해야 한다. 특히 국민은 오랜 경기 침체와 코로나 19로 개인 빚도 힘든데, 나라의 빚까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는데, 국민의 주머니야 말로 화수분이 아니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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