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중국이 싫다'는 감정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반중정서(反中情緖)다.
작게는 TV 드라마의 중국 소품 사용에서부터 크게는 한미 정상회담 문구 하나까지 중국과 관련된 이슈는 부정(否定) 일색이다. 중국이 싫고, 중국인은 더 싫다는 감정은 혐중(嫌中)과의 경계선을 오가고 있다. 이는 통계 수치로도 확인된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 5일 공개한 '2021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주변국 중 어느 나라를 가장 가깝게 느끼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7.6%가 미국을 꼽았다. 중국은 4%다. 이는 통일평화연구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200명을 면접조사해 나온 것이다.
지난 4월 모(某) 경제 매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6%는 "최근 한국 사회에 반중감정이 커지고 있다"고 답했다. 국민 10명 가운데 8~9명이 높아진 반중정서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셈이다.
반중정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여름 14개 주요국 국민 1만427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73.7%가 '중국은 비호감'이라고 응답했다.
중국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일본으로 비호감 응답 비율이 86%로 나타났다. 그 뒤를 스웨덴(85%), 호주(81%), 덴마크(75%)가 이었다. 그나마 중국에 호의적인 이탈리아에서도 62%가 중국을 싫어한다고 답했다.
가장 큰 원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다. 중국이 코로나 19의 진앙지라는 것이다. 신장(新疆) 위구르족 인권문제와 홍콩 보안법 도입 등도 중국을 비호감 국가로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5년까지 반중감정이 있다는 응답은 30~50%대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7년 처음으로 60%를 돌파한데 이어 퓨리서치센터 설문조사에서는 덴마크와 같은 75%를 기록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대목은 우리나라 반중정서는 구체적 피해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 5월 한국리서치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황사·미세먼지 문제(89.4%)로 나타났다. 그 뒤를 코로나 19 발생(86.9%), 불법조업 등 경제수역 문제(84.3%), 중국 누리꾼의 혐한 표현(80.0%), 한국에 대한 중국의 부정적인 언론보도(74.7%) 등이 잇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최근 '중국 대변인' 논란에 휩싸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유엔(UN)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장관은 지난 22일 미국외교협회 초청 대담에서 미국, 한국, 일본, 호주 등 동맹국들을 중국에 맞서는 하나의 연대로 묶는 것에 대해 '냉전시대 사고'라고 규정했다.
또한 세계에서 비판받고 있는 중국의 공세적 외교에 대해서도 "중국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더 강해지고 있고, 지금은 20년 전의 중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장 같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인터넷판을 통해 곧장 정의용 장관 발언을 지지하고 나섰다. 환구시보는 '친중 발언이라고? 한국 외교 장관은 친(親) 국익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우리가 보기에 정의용 장관은 단지 몇 마디의 큰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썼다. 한마디로 정의용 장관의 말은 한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외교는 '말'이 중요하다. 아니 전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외교 책임자는 왜 노골적인 친중 발언을 이어간 것일까. 이는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로 보고, 중국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끌어내려는 문재인 정부의 의도가 숨어 있다는 분석이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문재인 정부가 임기말 남북 이벤트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북한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고,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나서면 내년 대선 전에 남북관계의 극적인 반전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행보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줄곧 남북화해를 추구하며 미중 등거리 외교를 고수해 왔다. 특히 중국에 대한 높은 경제 의존도 때문에 어느 한 편에 설 수 없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 프레임도 여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는 착각(錯覺)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안보와 경제가 분리될 수 없는 시대다. 한국과 중국의 교역이 많고, 투자 역시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다. 어느 한 쪽의 시혜나 특혜에 따른 성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은 자국의 수출품을 위해 한국산 중간재가 꼭 필요하다. 반도체와 화학제품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가성비나 지리적 이점 등을 고려해 중국산을 수입한다. 서로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인 산물인 셈이다. 경제 의존도 때문에 중국과 친해져야 한다는 논리는 국제 밸류 체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이거나 넌센스다.
팍스 시니카(Pax Sinica)는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평화와 경제질서를 말한다. 중국몽(中國夢)이 바로 그것인데, 국내 진보진영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길게 보면 중국이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을 추격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하지만 세계평화와 경제질서를 단순히 GDP 총량으로 보는 것은 단견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전(全) 세계를 이끌 수 있는 과학기술, 군사력, 외교력 등 국력이다. 기축통화 장악력은 덤이다. 한마디로 팍스 시니카는 중국의 정치 구호일 뿐이다.
지금 국내 반중정서는 '용광로'에 비유되고 있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층은 식민지배를 받았던 일본보다 중국을 더 싫어하고 있다. 반일(反日)을 넘어서는 반중 민족성이 형성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향후 대세가 될 언어라는 이유로 중국어 학습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지금은 10대 학생들 사이에서 중국어를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75.1%는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시안 혐오 사건 역시 중국인 탓으로 생각하고 있다.
2021년의 대한민국에서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은 '우리는 왜, 그리고 얼마나 중국을 싫어하고 있는가'로 바뀌고 있다. 중국의 모든 것을 싫어하는 것이 젊은층에서 일종의 '문화코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내년 대선에서는 젊은층이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캐스팅 보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여당의 저자세 친중노선에 '빨간불'이 들어온 이유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