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전랑(戰狼)은 지난 2015년 개봉한 중국의 액션 영화다. 당시 보통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지만 2017년 속편으로 나온 전랑2는 대박을 쳤다. 중국 관람객 1억5000만명을 동원하며 56억7886만 위안(8억7400만 달러)을 벌어들였다. 물론 중국 내 흥행 역대 1위 영화가 됐다.
전랑이란 '늑대 전사'를 의미하는데, 전편은 인민무장경찰부대 출신의 주인공이 미국 네이버실 출신의 악당을 물리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속편은 유엔(UN)이 포기하고 미군도 철수한 아프리카에서 납치범을 물리치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포스터 문구는 '중국을 범하는 자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반드시 멸한다'는 것이다.
전랑외교는 영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중국 외교관들이 상대국을 향해 늑대처럼 힘을 과시하며 공격적인 외교를 펼친다는 뜻이다. 전랑외교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천명한 중국몽(中國夢), 대국굴기(大國崛起)와 맞물리면서 중국 외교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G2로 불리며 세계 2위로 올라선 경제력, 그리고 확장된 군사력이 힘의 원천이다. 그리고 이는 상대국에 대한 경제 보복과 무력 위협의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역시 경험했다.
중국은 지난 2016년 우리 정부가 경북 성주군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를 배치하겠다고 선언하자 한류 금지령인 한한령(限韓令)을 내리고, 한국산 콘텐츠와 연예인 출연 광고의 송출을 금지했다.
중국 외교부 아주국의 천하이(陳海) 부국장은 한 술 더 뜬다. 그는 당시 우리의 재계 인사들을 만나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냐"며 "너희 정부가 사드 배치를 하면 단교 수준으로 엄청난 고통을 주겠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 외교 최악의 수치로 지금까지 거론되고 있다.
남중국해도 타깃이다. 중국 남쪽, 필리핀, 인도차이나반도, 보르네오섬으로 둘러싸인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놓고 주변국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남중국해의 배타적 경제권을 주장하는 중국에 대해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는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상태다. 그럼에도 중국은 항공모함 등을 파견해 위협하며 독점적 영유권을 강화하고 있다.
남중국해에 존재하는 해양 지형물은 대부분 암초 또는 산호초다. 하지만 남중국해가 갖는 경제적, 군사적 가치는 해양 면적을 훨씬 초월한다. 남중국해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양 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조사기관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대략 110억 배럴의 원유와 190조㎥ 가량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말라카 해협, 싱가포르 해협, 대만해협과 연계돼 있는 남중국해는 전 세계 해양 물류의 25%와 원유 수송량의 70% 이상이 지나가고 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긴장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 현대사의 영웅으로 꼽히는 덩샤오핑(鄧小平)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흑묘백묘론'처럼 사물 또는 현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는데 달인이었다. 그는 정치를 '친구의 극대화, 적(敵)의 극소화'라고 정의했다. 국제 정치인 외교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우방국의 극대화, 적대국의 극소화'일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의 외교는 이와 거꾸로 가고 있다.
물론 중국 공산당 내에서도 전랑외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기조 변화가 없는 것은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계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장기집권을 위한 환경을 조성한 시진핑 주석이 공격적인 전랑외교로 젊은층의 환심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을 막을 법률적 장치는 없다. 지난 2018년 3월 개헌을 통해 국가 주석에 대한 임기 규정을 삭제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공산당도 총서기직에 대한 임기 기한을 규정해 놓고 있지 않다.
중국의 전랑외교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만 자초하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의 우한연구소 기원설이 흘러나오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시진핑 주석이 공산당 고위 간부를 상대로 한 강연에서 “사랑받을 만하고, 신뢰할 만하며, 존경받을 수 있는 외교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국제사회의 이 같은 분위기에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란 진단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유연한 외교로의 전환을 추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는 방법론적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지 전랑외교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는 초강대국을 지향한다는 목표에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우선(America first) 정책을 폐기하고,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중시하는 동맹을 규합해 중국을 더욱 고립시키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 외교위원장을 두 번이나 연임한 '외교의 달인'이다. 잠깐의 눈속임이 통할 리 없다는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의 동맹외교 전략은 지난 11일 영국 콘월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지난해 코로나 19로 미국 개최를 건너뛴 G7 정상회의는 기후변화 등 다양한 국제사회 현안을 논의했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대중(對中) 전선’에 각을 세운 점이다.
G7 정상회의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문제, 홍콩의 자치권 인정,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코로나 19 기원 2단계 조사 등 중국과 관련한 민감한 이슈를 공동성명에 담았다.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중국을 견제하는 내용이 담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이 '스몰 서클'이라며 G7의 대중 전선을 평가절하했지만 중국에는 상당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G7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에 대응하는 40조 달러 규모의 글로벌 인프라 지원 구상도 이끌어 냈다. 아프리카의 철도사업에서부터 아시아의 풍력발전에 이르기까지 개발도상국의 필수 인프라 건설을 위해 양질의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세계를 위한 더 나은 재건'(B3W·Build Back Better World) 계획에 합의한 것이다. 중국이 돈으로 개발도상국을 포섭해 옥죄는 것을 막자는 차원으로 경제 영토 경쟁이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번 G7 정상회의는 중국의 해킹을 우려해 모든 회담장의 인터넷과 와이파이를 끊었을 정도다. G7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담고 있는 것으로 반중(反中) 연대가 21세기를 관통할 새로운 국제질서가 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번 G7 정상회의에 호주, 인도와 함께 초청국으로 참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동성명에 서명하지 않았지만 '열린 사회와 경제' 공동성명에는 이름을 올렸다.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권위주의, 인터넷 차단, 인권 침해 등으로 민주주의가 침해받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는 내용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공동성명) 내용을 읽어보면 특정 국가를 겨냥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며 "오히려 이 성명에 참여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성명이 그야말로 온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협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꿈보다 해몽이자 중국 눈치보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은 지난달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 결과와 비슷하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에서 빠진 북한 비핵화와 대북제재 문제도 언급됐다. 북한이 핵·탄도미사일을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으로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확인한 것은 물론 모든 국가들에 유엔(UN) 안보리 제재 준수를 촉구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청와대와 정부의 언급은 없다.
G7 정상회의가 폐막되자마자 미국과 유럽의 집단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14일(현지시간) 중국을 '구조적 도전'(systemic challenge)이라고 규정했다. 중국을 안보 위협으로 본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함이 이끄는 미 해군 항공모함 전단이 15일(현지시간) 남중국해에 진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G7 정상회의 직전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옳고 그름을 파악해 편향된 장단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동맹국인 미국 편에 서지 말라는 것은 내정간섭이자 전형적인 전랑외교다.
외교가 됐든, 안보가 됐든, 그리고 경제가 됐든 누구도 힘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다. 어정쩡한 줄타기 외교로는 '신냉전'으로까지 평가되고 있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거센 파고를 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가치동맹'을 나침반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