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공무원은 인류의 역사 시대 이래 존재한 매우 오래된 직종이지만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공무원과 공무원 조직은 근대 독일에서 시작된 것이다.
17~18세기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근대 독일 지역에서는 국가가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정책적 수요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같은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현대 행정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관방학(官房學)이다. 관방학이란 행정지식과 행정기술 등을 집대성한 학문체계다.
관방학자들이 효율적인 국가 운영을 위해 제안한 것이 연공서열과 상하관계의 조직 체계였다. 그리고 부서와 직원별 업무분장, 시험에 의한 선발, 문서주의 등이 나타나게 된다.
이 같은 초기의 공직제도를 시행한 결과는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공무원 조직은 당시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과 결합해 독일이 유럽에서 영국 및 프랑스와 어깨를 겨룰 정도로 발전하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이는 관료제와 같이 체계화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비효율성도 나타났다.
이 때 등장한 것이 바로 막스 베버의 관료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사분리와 전임직 제도다. 공사분리는 훗날 정치 중립 의무로 발전했다. 전임직 제도는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함으로써 정치적 외풍을 차단하는 기반이 마련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공무원의 신분보장은 국가공무원법에 규정돼 있다. 법적인 잘못만 저지르지 않으면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
공무원의 신분보장이 가져오는 장점으로는 행정의 전문성, 능률성, 책임성이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노력도 기대할 수 있다. 더욱이 특정 세력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 전체에 충성하도록 할 수 있다. 이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이란 말로 집약되며, 국록(國祿)을 먹는 공복(公僕)이란 말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이는 바람직하고 추구해야 할 공무원상(像)이지만 구두선(口頭禪)에 머물고 있다. 오히려 특권집단화로 무사안일, 사익추구의 행태만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자가 '철밥통'으로 대변된다면 후자는 '밥그릇 챙기기'로 대변된다. 최근 세종시 아파트 특별공급을 둘러싼 특혜 논란은 전형적인 밥그릇 챙기기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세종시 아파트의 가격 상승률은 44.97%다. 세종시 다음으로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오른 대전시 유성구와 수원시 팔달구가 20%대의 가격 상승률을 보인 것과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지난해 7월 20일 김태년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세종시 천도론'을 꺼내 들었던 것이 기폭제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태년 전 대표는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 더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청와대와 정부 부처도 모두 이전해야 한다"며 "그렇게 했을 때 서울‧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천도론이 제기된 이후 부동산 호가가 올랐다는 기사들이 쏟아지자 김태년 전 대표는 남탓을 했다. 세종시의 집값에 기름을 부은 장본인이 언론으로 화살을 돌린 것이다.
지난 2010년 마련된 세종시 신도심(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공급 제도는 신규 분양 아파트의 절반을 공무원에게 우선 공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아파트 입주 때 부과되는 취득세도 감면 또는 면제받고, 심지어 이주지원금의 혜택도 주어졌다. 공무원에게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조기 정착을 유도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10년간 세종시에 공급된 아파트 9만6746가구 가운데 2만5636가구(26.4%)를 공무원이 가져갔다. 물론 미분양 물량이 넘치던 시기도 있었다. 당시 서울과 경기도 과천 등 수도권에 거주하던 공무원은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장거리 출퇴근을 할 것인지, 혼자 내려와 원룸이나 전세를 얻을 것인지, 아니면 아파트 특별공급을 받아 전 가족이 이주할 것인지가 선택지였다.
원래 부유했거나 연봉이 많은 고위 공무원은 기존의 수도권 집과 세종시에서 특별공급을 받은 아파트 등 두 채 이상을 보유해도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낮은 직급의 공무원은 수도권에 갖고 있던 집을 팔지 않고는 세종시에서 특별공급 받은 아파트의 분양 대금을 대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세종시로 이사하면서 특별공급을 받고 수도권에 갖고 있던 집을 판 공무원은 지금 수도권의 집값이 너무 올라 퇴직한 후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말도 들린다. 세종시 아파트의 가격 상승률을 감안하면 '엄살'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공무원 전체를 한 묶음으로 비난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많다. 국회 분원 설치 등 호재가 있을 때마다 세종시의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세종시의 일반 공급 경쟁률도 153.3대 1에 달했다. 하지만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특별공급 경쟁률은 7.5대 1이다. 경쟁률이 20배 이상 차이가 난다. 특별공급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요즘 같이 아파트 청약이 로또 당첨 만큼 어려운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일반 직장인은 회사를 옮긴다고 아파트 특별공급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세종시의 정주여건이 개선되고 있는데, 여전히 분양 물량의 50%를 공무원에게 특별공급으로 제공하고 있다. 특별공급 대상도 갈수록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특혜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더욱 큰 문제는 편법이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만금개발청과 해양경찰청 직원들은 청사가 세종시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간 뒤에도 특별공급 아파트를 처분하지 않았다. 오는 8월까지 세종시로 이전하는 중소벤처기업부를 비롯해 국민건강보험공단 대전본부 등은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대전시에 있다. 이들 부처 및 기관의 직원들까지 아파트 특별공급 헤택을 받는 것은 숟가락 얹기라는 말이 나온다.
특별공급은 일반 분양보다 경쟁률이 현저히 낮은 것은 물론 제도 도입 당시에는 다주택자에게도 청약을 허용해 손쉽게 투기의 수단이 됐다. 실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세종시에 공급된 아파트 6만여 가구 가운데 공무원이 특별공급을 받은 뒤 내다 판 아파트는 2085건에 달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특별공급 받은 아파트를 내다 팔고 세종시에 2년 거주한 주민들에게 1순위로 아파트를 공급하는 '거주자 우선순위 제도'를 이용해 아파트를 중복으로 분양받은 공무원도 있었다. 특별공급 제도가 공무원의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관세청 산하 관세평가분류원은 이전 대상이 아니었는데도 아파트 특별공급을 노려 세종시에 청사를 지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결국 해당 건물은 '유령 청사'가 됐지만 직원들은 특별공급으로 수 억원대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최근 세종시 아파트 특별공급을 둘러싼 공무원의 행태는 투기꾼과 다를 바 없다. 노형욱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마저 인사청문회에서 특별공급 재테크를 사과했다. 그 만큼 특별공급을 이용한 재산 불리기가 공직 사회에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5.16 군사정권 시절은 물론 YS, DJ 등 역대 정권은 공무원의 머리를 빌렸다. 정권은 심장 역할을 하고, 공무원은 머리의 역할을 한 것이다. 하지만 좌우(左右) 정권의 교체에 따른 진영대결이 심화되면서 공무원은 단순히 정권의 수족(手足)으로 전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단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공무원은 개혁의 걸림돌로 거론된다. 적폐 청산의 대상이다. 군기(軍紀)를 잡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모든 정책이 뒤집어 지는 상황에서 정권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보복을 당하고, 따르면 다음 정권의 공격을 받는다. 복지부동 공무원, 영혼 없는 공무원은 결국 편협하고 왜곡된 정치가 만들어낸 필연적 산물인 셈이다.
복지부동 공무원, 영혼 없는 공무원은 철밥통 그 자체다. 또한 특혜나 내부 정보를 이용한 재산 불리기 등의 도덕적 해이는 동전의 양면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정권이 공무원을 정치적 우군화하면 도덕적 해이는 더욱 만연하게 된다. 처벌은 감봉·견책·경고 등 솜방망이에 그친다.
지난해 10월 별세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5년 베이징 특파원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정치는 4류,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했다.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26년이 지난 지금 바뀐 것은 끊임없이 혁신과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정치와 관료사회는 바뀐 것이 없다.
세종시 아파트 특별공급 논란은 영혼 없는 3류 공무원의 자화상(自畫像)이고, 이 같은 도덕적 해이를 이끌어 낸 것은 4류 정치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할 주체는 공무원이다. 공무원이 본분을 망각한 채 지속적으로 집단이익을 챙긴다면 아파트 특별공급 특혜와 부동산 투기에 대한 전수조사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특히 "공무원의 신분보장을 더 이상 해줘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