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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쿼드' 외면하는 한국, 美 지원 대만에 추월 당하나

코로나 19 모범 방역국, 경제 순항으로 국민소득 한국에 역전 가능성
대미 관계도 요인···중국 견제 위한 쿼드, 문재인 정부 '국익' 고려해야

 

【 청년일보 】 1971년 3월 28일부터 일본 나고야에서는 제3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대회가 끝날 무렵인 4월 5일 미국의 탁구 선수 글렌 코완은 연습을 마치고 앞을 지나가던 버스에 올라탔다. 셔틀버스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버스는 중국 선수단 버스였다.

 

버스 안에는 당시 중국의 탁구 영웅 좡쩌둥((莊則棟)이 앉아 있었다. 중국 선수단은 미국인과의 대화가 금지돼 있었지만 좡쩌둥은 코완에게 중국 명산인 황산(黃山)이 그려진 수건을 선물하며 말을 걸었다. 코완은 미소로 답했다.

 

중국 선수단을 취재 나온 기자들이 버스에서 내리는 두 사람을 찍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일본 신문 곳곳에 이 사진이 실리며 엄청난 화제가 됐다. 코완은 기자들에게 "중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고, 이 말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를 거쳐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에게 전달됐다. 

 

중국은 4월 10일 미국 선수단을 초청했다. 미국 선수단은 여러 차례 탁구 경기를 펼쳤는데, 중국 선수들은 훨씬 실력이 뛰어났음에도 일부 경기는 일부러 져주었다고 한다. 미국 선수단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을 여행하며 귀빈 대접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경우 자국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은 물론 당시의 가장 큰 적(敵)인 소련을 견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이 중국 땅을 밟은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닉슨 대통령은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핵심적인 내용은 대만(臺灣)이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입장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힘은 절대적이다. 이를 반증하듯 대만은 같은 해 10월 유엔(UN) 회원국 지위를 상실하고, 급기야 1979년에는 미국에게 단교 당한다. 저우언라이 총리의 표현대로 작은 탁구공 하나가 지구를 흔든 것이다. 

 

중국은 이전까지 공산주의 국가들과만 교류했다. 하지만 중국이 경제 현대화를 기치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많은 국가들에게 고민을 안겨주었다. '중국이냐, 대만이냐'를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대다수 국가들은 수교와 통상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중국을 택했다.

 

같은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만이 오래 동안 국제무대의 변방으로 밀려나게 되는 순간이었다. 불과 3년 전인 2018년 5월에도 도미니카, 파나마 등이 대만과 단교했다. 대만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는 20개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만이 부상하고 있다. 부활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지난 11일 대만 통계청에 따르면 대만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3.09%를 기록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1.6%보다 2배에 육박하는 것이다. 올해 대만의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최고 8%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 이 역시 4%대 성장률을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보다 2배 높다.

 

이는 모범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대응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차이잉원(蔡英文) 정부는 지난해 코로나 19 발생 초기부터 중국인의 입국을 차단해 추가 확산을 막았다. 방역물자 수출을 통제해 마스크 대란도 없었다. 지난달 11일 기준으로 대만의 누적 확진자 수는 1056명에 불과하고, 이후 0명에 수렴해 사실상 종식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방역 성과는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여러 국가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입지가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 경제도 순항했다. 대만은 지난해 2분기 마이너스(-) 0.73%의 역성장을 기록한 이후 3분기에는 4.34%로 큰 폭의 반등을 이뤄냈다. 이는 2분기 마이너스(-) 3.2%에 이어 3분기 2.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한국보다 회복 속도가 훨씬 빠른 것이다.

 

대만은 한류 열풍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반한 감정도 널리 퍼져 있다. 한국 제품과 문화에 대해서는 흥미가 많지만 한국이라는 국가와 한국인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이 폭 넓게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언급되고 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1992년 한국-대만 단교로 귀착된다. 장기 우방국으로 지내던 한국이 단교를 통보한 것에 배신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반한 감정의 저변에는 열등감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만과 한국의 경제 발전 양상은 유사했다. 특히 대만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아시아의 4마리 용(龍) 가운데 으뜸으로 꼽혔다. 하지만 중소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진 대만은 한국처럼 세계적 위상을 가진 대기업이 없어 세계 시장에서 열위에 처하게 됐다. 2004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도 한국에 추월당했다. 그래서 한국은 얄미운 나라고, 어떻게 하든 이기고 싶은 나라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018년을 제외하면 지난 2017년 이후 대만의 경제성장률이 한국보다 높다. 대만의 선전이 이어지면서 국민소득 격차도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대만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9230달러로 한국의 3만1755달러를 바짝 쫓고 있다. 현재의 추세라면 2~3년 후에는 1인당 국민소득에서 한국을 역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만의 최근 부상은 국제사회의 탈(脫) 중국 흐름, 특히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 복원이 결정적 요인이라는 분석도 많다. 차이잉원 총통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지지하며, 그 안에 편입되겠다는 의사를 피력하는 등 끊임없이 미국의 문을 두드렸다. 미국 역시 지난해 3월 타이베이법(TAIPEI Act)을 상원과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는 대만이 사실상 독립국가이자 미국의 동맹이라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대만은 중국을 배제하는 경제블록 전략에도 적극 참여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실제 대만은 미국의 중국 제재 이후 화웨이 같은 중국 기업들과 거래를 끊었다. 반도체 대기업 TSMC는 미국 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린 중국 페이텅의 생산 주문을 받지 않기로 했다. 특히 미국에 6개의 신규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미국의 반도체 동맹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대만이 첨단 테크놀로지 시대의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 석유 확보 차원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전략적 협력국으로 삼은 것처럼 이제는 전략자산인 반도체의 공급원인 대만이 그런 위상을 갖는 나라가 됐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이 일본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례적으로 ‘대만 해협의 평화’를 언급하며 대만의 안보 문제를 적극 지원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대만은 중국의 견제 때문에 자유무역협정(FTA) 등 다른 나라와의 통상 분야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그리고 그 수혜를 한국의 기업들이 누려왔다. 하지만 대만이 미국을 등에 업고 통상 협정에 참여하기 시작하면 한국 기업들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양국 관계의 키워드는 '동맹'이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이 꺼내 든 쿼드(Quad)를 줄곧 외면해 왔다. 쿼드는 미국, 일본, 인도,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식 안보협의체다. 미국의 스티브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해 8월 쿼드를 공식 국제기구로 만들 뜻을 밝힌데 이어 한국, 베트남, 뉴질랜드 3개국을 더한 '쿼드 플러스'로 확대할 의도를 내비쳤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미국이 양자회담에서 쿼드 문제를 꺼내도 협의는 있었지만 참여 요청은 없었다는 식으로 선을 그었다. 쿼드 플러스가 거론되면 "4개국도 쿼드의 성격에 대한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며 빠져 나갔다. 오는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간 첫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는 다시 테이블 위에 올라올 공산이 크다.

 

미국은 쿼드 회원국을 중심으로 안보는 물론 5세대(5G) 기술표준 워킹그룹을 만들어 협력을 추진해 나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 쿼드 정상들은 지난 3월 정상회의에서 워킹그룹의 목적을 ‘미래 혁신 기술과 국제적인 기준에 대한 협력 활성화’로 규정했다. ‘국제적인 기준’을 언급한 것은 쿼드를 중심으로 중국이 그동안 교란해 온 글로벌 공급망의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쿼드 회원국들은 5G 기술표준을 필두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기술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할 공산이 크다. 이 때문인지 문재인 정부는 최근 쿼드와 관련해 부분 협력이나 분야별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는 등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이 같은 기류 변화가 근본적인 전략적 입장의 변화가 아닌 정상회담용, 또는 코로나 19 백신을 지원받기 위한 임시방편용 카드일 경우다. 쿼드와 관련한 문재인 정부의 행보가 순간순간 고비를 넘기려는 정치적 접근으로 끝날 경우 한미 관계는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그동안 대만은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미국의 부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냉전시대의 베를린처럼 자유진영의 전초기지이자 반도체라는 전략자산을 제공하는 전략적 협력국이 됐다. 특히 미중 패권 경쟁이 가열될수록 동맹으로서의 지위와 역할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5년 짜리 정권이다. 만일 국익이 아닌 정치적 편향이나 선택으로 한미동맹의 가치를 훼손하면 국가의 운명 자체가 위험해 질 수 있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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