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재판(裁判)은 사법기관인 법원이 분쟁사건에 대해 공권적(公權的)으로 내리는 판단이다. 따라서 개인이 재판에 참여할 때는 판사와 검사에 비해 법률적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비전문가인 피고인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변호사다.
보통 변호사 수임료는 처음 사건을 맡길 때 내는 착수금, 그리고 재판에 이겼을 때 내는 성공 사례비로 구성된다. 변호사는 국가 공무원이 아니다. 선임이 개인과 개인의 계약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수임료 역시 천차만별이다. 이 경우 자주 거론되는 것이 전관예우(前官禮遇)다.
전관예우는 판사나 검사로 재직하다 변호사로 갓 개업한 사람이 맡은 소송에 대해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특혜를 말한다. 이들에게 사건을 맡기면 승소할 확률이 대단히 높다. 대신 수임료 역시 비싸다.
전관 변호사에 대한 수요는 민사사건보다 형사사건에 집중된다. 소송 상대방과 상대 변호사가 있어 법정에서의 공방이 벌어지는 민사사건에 비해 형사사건은 전관 변호사의 선후배 판검사를 상대하면 되고, 법리논쟁 역시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구속 수사, 보석 결정, 양형 등 판검사의 재량이 발휘되는 부분에서 전관 변호사의 영향력이 발휘되는 경우가 많다.
피고인, 특히 구속된 상태에서의 피고인은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하다. 절대적 약자다. 피고인 입장에서 보면 재판에서 이기는 것이 우선이다. 돈을 아끼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재판에 개인의 생사는 물론 기업의 흥망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큰 돈이 수임료라는 이름으로 오가는 이유다.
사법부는 그동안 전관예우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018년 10월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직역 종사자 13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 법조 관련 종사자 가운데 전관예우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55.1%에 달했다. 검사는 응답자 중 42.9%, 변호사는 75.8%가 인정했다. 판사들조차 4명 가운데 1명(23.2%) 꼴로 전관 변호사 특혜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전관 변호사가 기소 여부와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응답률도 절반에 가까웠다. 설문조사 참여자 가운데 검사의 15.9%는 전관 변호사가 개입되면 기소와 불기소 여부를 바꾼다고 했다. 판사의 13.3%는 형사재판의 결론을 바꿀 수 있다고 답했다. 특히 법조직역 종사자 5명 중 1명꼴로 "돈이 더 들더라도 전관 변호사를 선임할 것을 권한다"고 답했다.
이를 반증이나 하듯 전직 대법관이나 검사장 출신이 변호사 개업 후 몇 개월 만에 수십억 원을 버는 일은 흔하다. 홍만표 전 검사장은 변호사 개업 후 한 해 동안 챙긴 수임료만 91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만표 전 검사장은 주로 대기업 회장 사건을 맡아 변론한 것으로 유명한데, 수임계를 내지 않은 ‘몰래 변론’으로 수임료 누락과 함께 탈세 혐의도 받았다.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월 '해외의 전관예우 규제 사례와 국내 규제방안 모색'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전관예우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법관이 정년 전에 사직한 후 변호사로 다시 법정에 서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한 사법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일본에도 전관예우는 없다.
법조계에서는 전관예우를 용퇴(勇退) 문화의 산물로 본다. 법원과 검찰 모두 사법연수원 동기 또는 후배가 대법원장이나 검찰총장이 되면 그 위 기수나 동기들이 퇴직하는 관행이 있다. 후배뿐 아니라 대법원장과 검찰총장도 이를 반긴다. 상명하복식 조직 운영의 핵심은 인사권인데, 이 같은 대량 사직은 인사권자의 운신 폭을 넓혀준다.
다시 말해 전관예우가 없다면 조기 퇴직 관행은 지속될 수 없게 되고, 대법원장이나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관료적 사법 시스템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용퇴한 입장에서 이 같은 헌신(?)에 대한 보상이 필요한데, 퇴직자에 대한 편의를 제공해 주는 전관예우가 바로 그것이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전관예우는 우리나라 법조계의 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관예우를 받는 전직 판검사의 퇴직 직후 수입은 재임 때 급여의 10배를 넘는다고 한다. 이는 그들이 현직에 남아 있었더라면 받았을 급여 총액과 대체로 일치한다는 분석이 있다. 이를 액면대로 해석하면 전관예우는 조기 퇴임을 결심한 판검사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퇴직 위로금인 셈이다.
따라서 동시채용 동시승진, 동시 대량 인사이동, 조기 퇴직이라는 관료 체계의 작동원리를 손보지 않는 이상 수임료 제한과 처벌만으로 전관예우를 없애려는 시도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관측이다. 물론 현행 변호사법 제31조 3항에는 퇴직할 때의 근무지에서 1년 동안 사건을 수임하지 못한다는 전관예우 금지 조문이 있다. 하지만 이는 있으나마나 한 조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 법조계는 진입의 기회가 적은 시장이다. 판검사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소수에게 주어진 매우 폐쇄된 시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다. 치열한 승진 경쟁을 거쳐 탈락하는 경우 동기나 후배를 위한 용퇴라는 명분으로 퇴출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사법 시스템의 관료화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전관예우를 없애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가깝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공시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전관예우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판검사와 변호사의 관계, 변호사 수임료, 재판 결과, 형사사건의 경우 동종 사건과의 판단 결과 차이 등을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정보를 공개하면 판검사가 특정 변호사를 봐주고 있는지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지만 여전히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물고 있다.
전관예우는 오래 전부터 심각한 문제로 인식돼 왔고,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 역시 지난해 검찰에서 물러난 후 법무법인 화현으로부터 월 2900만원의 고액 자문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전형적인 전관예우 특혜를 받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오수 후보자는 특히 수임료가 아닌 자문료를 고액으로 받은 점이 논란을 키우고 있다. 수임료가 아닌 자문료를 월 2900만원씩 받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것인데, 수임계를 내지 않고 몰래 변론한 대가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임계를 내지 않고 진행하는 몰래 변론은 형사처벌 대상이다.
김오수 후보자가 법무장관 직무대행으로 있던 2019년 11월 법무부는 '법조계 전관 특혜 근절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전관예우 근절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전관 특혜로 받은 불투명하고 막대한 금전적 이익에 대한 철저한 조사는 물론 공정 과세를 실현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며 철저한 세무조사를 주문했다.
재판은 공정한 권리 구제를 통해 작은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고, 이 같은 작은 정의가 모여 사회적 정의가 실현된다. 그런데 전관예우는 전관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길 수 있는 돈과 권력이 있는 자에게 유리하게 진행될 수 있다. 전관예우로 인해 재판이 공정하지 않게 되면 정의는 실현될 수 없다. 다소 굼뜨더라도 전관예우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는 게 사법제도의 근간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힘있고 재력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돼 평범한 국민들에게 고통과 피해를 안겨준 전관 특혜를 공정과 정의에 위배되는 반사회적 행위로 인식하고, 이를 확실히 척결하는 것을 정부의 소명으로 삼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오수 후보자는 지금 고액의 자문료로 전형적인 전관예우 특혜를 받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에 따르면 척결 대상이다. '방탄 총장', '정권 수호' 같은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관행'이란 말로 임명 강행 카드를 꺼내 들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