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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손발 묶고 뛰는 격의 이재용 부회장 가석방···경영활동 '족쇄' 풀어야

마이크론, 삼성전자 제치고 4세대 D램은 물론 176단 낸드 플래시도 '양산'
스마트폰, 중국 업체 턱밑까지 따라온 상황···각종 사법 리스크 현재진행형

 

【 청년일보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내년 7월 만기 출소를 11개월 앞두고 광복절 직전인 13일 풀려나게 됐다.

 

삼성전자는 총수(總帥) 부재라는 최악의 리스크에서 벗어나면서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위기의 그림자는 걷히지 않고 있다. 조타수가 자리를 비운 사이 주력 사업인 반도체와 스마트폰 시장에서 잇따라 경고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 '세계 최초' 타이틀을 해외 유수의 경쟁사에 빼앗겼다. 세계 3위 업체인 미국의 마이크론이 삼성전자를 제치고 4세대, 즉 1a D램 양산에 나선 것이다.

 

현재 D램 시장에서는 회로 선폭을 좁히기 위한 기술 경쟁이 뜨겁다. 회로 선폭은 반도체 업체의 기술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선폭이 좁을수록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 한 장에서 나오는 D램의 생산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4세대인 1a D램은 3세대와 비교해 25% 높은 생산량을 보인다.

 

회로 선폭을 좁히면 제품 자체의 성능이 개선되는 효과도 나타난다. 이전 제품과 비교해 속도와 안정성이 강화된다. 소비 전력 역시 줄어든다.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최신 정보통신(IT) 기기와 클라우드 서버에 최첨단 D램이 탑재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반도체 업체들은 구체적인 회로 선폭을 공개하지 않는다. 업체 간 기술 경쟁이 고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 나노미터(㎚) 후반은 1x(1세대), 1y(2세대), 1z(3세대)로 부른다. 또한 4세대는 1a, 5세대는 1b, 6세대는 1c로 통칭된다. 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다. 

 

마이크론의 뜀박질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업계 최초로 176단 낸드 플래시를 공개한 것이 다.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은 128단 낸드 플래시다. 마이크론이 적층(積層) 난이도에서 앞서 나간 것이다. 경쟁사 대비 '초격차'를 내세운 삼성전자로서는 자존심이 구겨진 셈이다.

 

낸드 플래시는 D램과 달리 전원을 꺼도 저장한 데이터를 보존하는 메모리 반도체다. 데이터를 영구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과 PC 등 전자기기 등에서 활용 가치가 높다.

낸드 플래시 제조에서는 기본 저장 단위인 셀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기술력이 중요하다. 같은 면적의 땅에 고층 아파트를 지을수록 수익이 많이 나는 것처럼 낸드 플래시 역시 셀을 동일 면적에 많이 쌓아 올리면 작은 칩에서도 고용량의 데이터 저장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마이크론이 양산하는 176단 낸드 플래시는 기존의 96단 낸드 플래시에서 '퀀텀 점프'를 한 것이다.

 

파운드리(위탁 생산) 부문에서는 세계 1위인 대만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TSMC는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해 향후 3년간 1000억 달러(약 115조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한데 이어 미국, 일본, 독일에 공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인텔은 지난 3월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했다. 200억 달러(약 23조원)의 자금을 투입해 미국 애리조나에 2개의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는 한편 유럽에도 공장 건설을 추진할 예정이다. 인텔은 오는 2025년까지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파운드리 시장에서 선두에 오르겠다는 계획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턱밑까지 따라온 상황이다. 미국의 제재를 받은 화웨이가 빠진 자리에 또 다른 중국 업체인 샤오미가 들어서면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인 카운터포인트리서치와 카날리스 등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삼성전자의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8~19%였다. 애플을 제치고 2위에 오른 샤오미와의 격차는 2%포인트에 불과하다. 삼성전자가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국가 역시 최근 2년 새 57개에서 41개로 급감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이 경영 공백을 메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미뤄졌던 대규모 투자 및 전략적 인수합병(M&A) 결정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희망사항'에 그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보폭은 예전보다 좁아질 수밖에 없다. 남은 형의 집행이 즉시 면제되는 특별사면과 달리 가석방은 잔여 형기가 그대로 남은 채 구금 상태만 해소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당장 등기임원 복귀가 어렵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년간 취업 제한 규정에 묶여서다. 취업 제한을 풀려면 법무부 특정경제사범관리위원회를 거쳐 법무부 장관이 승인해야 한다. 하지만 절차는 물론 심의도 까다롭다.

 

더구나 서울구치소를 관할하는 법무부 수원보호관찰심의위원회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보호관찰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1개월 이상 국내외 여행을 할 때는 미리 보호관찰관에게 신고를 해야 한다. 해외출장에 제약을 받는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각종 사법 리스크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이재용 부회장 앞에 놓인 2개의 재판 결과에 따라 또 다시 수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불균형 합병', 그리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다. 또한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도 기소된 상황이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은 기업 경영자가 국가에 공헌하는 대표적인 길이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李秉喆) 회장이 사업보국의 길을 열었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사업보국 2.0시대'를 개척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들 역시 삼성전자를 지금보다 더 탄탄한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자면 이재용 부회장이 글로벌 경제계의 리더들과 직접 만나서 사업 정보를 교환하고 비즈니스 협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현재로서는 손발 묶고 뛰는 격이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주요국은 글로벌 공급망을 자국에 유리하게 재편하고, 4차 산업혁명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일체가 돼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박범계 법무장관 역시 가석방 결정 사유에 대해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한 고려 차원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가석방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을 하라고 풀어주었으면 실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취업 제한과 보호관찰, 각종 사법 리스크로 경영활동을 제약하는 '족쇄'를 걷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국가와 기업이 2인3각 경주를 벌이는 무한경쟁의 시대다. 정치적 셈법으로 좌고우면할 틈이 없다는 얘기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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