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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시장의 공감'이 화두 된 주요 그룹 지배구조 개편

SK그룹, SK텔레콤 인적분할 나서···현대차그룹과 한화그룹도 '시동'
주주 반발하면 무산 가능성도, 기업과 주주의 가치 함께 제고돼야

 

【 청년일보 】 우리나라 그룹의 지배구조는 독특하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그룹은 특정 업종의 수직계열화는 물론 비즈니스 간 연계가 거의 없는 사업까지 함께 영위했다. 돈 되는 사업은 다 하는 소위 문어발 확장이 대세였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이 같은 풍토는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상호출자 또는 순환출자로 연결된 복잡한 지배구조는 여전히 남아있다. 상호출자는 두 회사가 서로 출자해서 자본금을 늘리는 것을 말한다. 손 쉽게 자본금을 늘려 대출 등에서 이익을 꾀하는 편법이다. 순환출자는 상호출자의 확장 버전이다. 3개 이상의 기업에서 출자한 자본금이 돌고 돌아 원래 기업으로 돌아오는 형태다.

 

우리나라 그룹이 독특한 지배구조를 갖게 된 것은 자본주의 역사가 짧은 상황에서 압축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자본가, 즉 그룹 오너들이 자본을 축적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부로부터의 수혈(차입)을 통해 자본을 공급받았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겪기 전 우리나라 그룹의 부채비율이 대단히 높았던 이유다.

 

하지만 차입만으로는 부족한 자본을 채울 수 없었다. 자금은 필요하고 경영권은 유지하고 싶었던 그룹 오너들이 활용한 레버리지 수단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상호출자 또는 순환출자다. 이를 통해 그룹 오너들은 최소한의 자금으로 최대한의 사업 영역을 컨트롤하는 독특한 지배구조를 만들어냈다.

 

정부는 우리나라 그룹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기 위해 1999년 지주회사 제도를 도입했다. 2013년에는 기존 순환출자는 인정하되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다만 2015년 말까지 주식 현물 출자나 교환으로 발생하는 이익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와 법인세가 과세 이연되도록 하는 혜택도 주어졌다. 이처럼 정부는 그룹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고,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채찍'과 '당근'을 병행했다.

 

최근 SK그룹을 비롯한 우리나라 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속도를 내는 것도 지난해 도입된 '공정경제 3법'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지배구조 개선과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해 상법 일부 개정안,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지배구조 단순화와 투명성 제고는 이익의 사적 이전과 누수를 어렵게 함으로써 배당이익 확대를 가져오는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룹들은 지배구조 개선, 즉 개편 과정에서 미래 성장 기반 마련과 기업가치 제고 등 다양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물론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주요 그룹 중 지배구조 개편에 먼저 시동을 건 것은 SK그룹이다. 앞서 SK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SK텔레콤은 지난 14일 AI&디지털인프라 컴퍼니(SKT 존속회사)와 ICT투자전문회사(SKT 신설회사)로 인적분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인적분할은 특정 회사의 일부 사업부문을 분리, 하나 이상의 독립된 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말한다. 신설회사의 주식은 기존 회사의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나눠 갖게 된다.

 

SK텔레콤 인적분할의 핵심은 기업가치 제고다. 업계 안팎에서는 인적분할 이후 존속회사와 신설회사의 합산 가치가 3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SK텔레콤의 시가총액은 22조원이다. SK그룹은 이번 SK텔레콤 인적분할을 통해 통신 사업과 신성장 사업을 분리,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인프라 등 혁신 기술 개발에 적극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의 비상장 건설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연내 코스피 상장을 목표로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이다. 현재 현대엔지니어링의 시가총액이 7조5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되는 점을 고려하면 상장 후 기업가치는 1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경우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11.72%를 보유한 정의선 회장은 1조2000억원의 실탄을 쥘 수 있게 된다.

 

업계 안팎에서는 정 회장이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을 통해 확보한 현금으로 현대자동차나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에 나서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고,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 회장이 지배구조의 정점에 오르려면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의 지분 확보가 필수다. 현재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은 0.32%에 불과하다. 핵심 계열사인 현대자동차 지분도 2.62%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으로 현금을 확보하면 현대모비스나 현대자동차의 지분을 추가로 매입해 영향력을 늘릴 수 있다.

김승연 회장이 7년 만에 경영 일선에 공식 복귀한 한화그룹은 향후 세 아들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동관 50%, 동원·동선 각각 25%)를 보유한 에이치솔루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에이치솔루션은 한화에너지의 지분 100%를 갖고 있고, 한화에너지는 한화솔루션과 함께 한화종합화학을 지배하고 있어 사실상 또다른 지주회사 형태를 띠고 있다.

현재 한화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으면서 실질적 지주회사 격인 ㈜한화의 최대 주주는 지분 22.65%를 보유한 김 회장이다. 반면 장남인 김동관 사장은 4.44%, 2·3남인 동원·동선씨는 각각 1.67%로 지배력이 약하다. 한화그룹의 경영권 승계에 에이치솔루션이 키를 쥐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주요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시장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8년 지배구조 개편에 나섰다가 시장의 반발에 밀려 중단한 적이 있다. SK텔레콤의 인적분할 역시 주주 반발의 불씨가 남아 있는 상태다. 인적분할로 신설될 ICT투자전문회사와 SK(주)의 합병 시나리오 때문이다.

SK텔레콤의 주주들은 이 같은 그림이 ICT투자전문회사의 주가를 하락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인적분할이 주주총회에서 부결돼 지배구조 개편이 요원해 질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주주의 가치가 함께 제고돼야 한다. 시장의 공감이 최대 화두로 떠오른 셈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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