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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한국판 엽관제?···국민 '홧병' 돋구는 인사청문회

야당, 임혜숙 후보자 등 3명에게 부적격 판정···여당은 "문제 없다"
내 편만 고집하는 인사 독주는 독선과 오만, 차기 선거 '데스노트'

 

【 청년일보 】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그리고 국정원장은 우리나라 4대 권력기관장으로 불린다. 이들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 뿐인가. 장차관을 비롯해 우리나라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공직은 7000여 개에 달한다. 권력이 '총구'에서 나오는 독재국가를 제외하면 인사권은 권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도 근본적으로는 인사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바로 국회의 인사청문회다. 인사청문회는 지난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되면서 도입됐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삼권분립의 제도적 실천을 위해 국회가 대통령의 자의적 인사권 행사를 막기 위한 취지다.

 

인사청문회는 공직에 지명된 사람이 공직을 수행해 나가는데 적합한 업무 능력이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를 검증한다. 인사청문회가 시행된 지 올해로 21년이 됐지만 전혀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부에서는 '무용론'마저 나오고 있다. 국회에서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는다고 해도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를 임명하는 데 법적인 걸림돌이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인사청문 보고서 없이 임명이 강행된 장관급 인사는 29명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17명), 박근혜 정부(10명), 노무현 정부(3명)의 사례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앞으로 이 기록은 경신될 것이 확실한 상태다. 

 

국민의힘 등 야당은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그리고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리고 낙마 공세를 펴고 있다. 6일에는 이들에 대한 대통령의 지명 철회 또는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야당 패싱'을 통해 임명을 강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사청문 보고서 없이 임명이 강행된 인사가 '29+α'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임혜숙 후보자는 장관으로 지명되면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을 3개월 만에 그만둔 것부터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임혜숙 후보자는 이화여대 교수 시절 하와이, 바르셀로나 등 해외 관광도시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배우자 및 두 딸과 동행했다.

 

국가의 지원금을 받아 가는 해외 세미나에 가족을 데려간 것만 봐도 공사의 구분이 흐릿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임혜숙 후보자는 “사려 깊지 못했다”면서도 ‘관행’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해 무엇이 문제인지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일부에서는 '여자 조국'이라는 말도 나온다.

 

박준영 후보자는 영국 대사관 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부인이 구입한 수천만 원대의 유럽산 도자기를 ‘외교관 이삿짐’으로 들여왔다. 부인의 취미라고 하기에는 수량이 지나치게 많다. 더구나 국내에서 판매까지 했다. 여러 개의 고급 샹들리에 사진까지 등장했다.

 

박준영 후보자는 관세청의 조치에 따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외교관의 특권을 활용한 관세법 위반으로 볼 수 있는 사안이다. 정의당이 “보따리 장수의 밀수보다 더 나쁘다”며 ‘데스노트’ 1순위로 거론한 것도 그런 이유다.

 

집값 급등으로 대변되는 부동산 문제 해결이 급선무인 노형욱 후보자의 ‘관사 재테크’ 논란도 거세다. 공무원 특별공급으로 받은 세종시의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전세를 줘 대출을 갚고, 본인은 관사에 거주하다 2억원 가량의 시세 차익을 얻고 팔아 야당으로부터 ‘갭투기’라는 질타가 나왔다. 

 

현재 정의당의 데스노트에 올라 있는 사람은 임혜숙 후보자와 박준영 후보자 등 2명이다. 데스노트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20대 국회 출범 이후 정의당이 사퇴를 요구한 사람들 대부분이 낙마하며 일종의 징크스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인사청문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청문 절차를 마쳐야 한다. 국회가 거부하거나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대통령은 10일 이내의 기한을 정해 인사청문 보고서의 재송부를 요청하게 된다. 얼마의 시간을 줄 지는 대통령 자유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동안 부여한 재송부 기한은 1인당 평균 4.8일이었다. 야당을 설득하고 민심에 설명하는 충분한 시간을 줬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인사청문 보고서 마감 기한이 끝나면 더 기다리지 않고 다음날 즉각 임명하는 패턴이 문재인 정부 내내 반복됐다.

 

정권 초반에는 인사를 강행할 수밖에 없는 배경과 상황을 설명하기라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런 모습도 찾기 힘들다. 인사청문회를 하나의 요식행위로 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인사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고,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으며,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다"고 밝혔다. 탕평인사를 천명한 셈이다.

 

이에 대한 실천 의지를 과시하듯 엄격한 인사검증 기준도 제시했다.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표절 외에 음주운전과 성범죄를 추가했다. 기준 적용도 인사청문회 대상인 장관은 물론 1급 이상 고위공직 후보자로 확대했다. 하지만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논란에서 보듯 내 편이면 아무리 흠이 있어도 임명을 강행하고, 전임 정권 뺨치는 낙하산 인사가 이어졌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4년간 발탁된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401명 가운데 무려 39.2%에 달하는 157명이 코드 인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401명 가운데 두 차례 이상 발탁된 고위공직자는 66명으로 16.4%에 달한다. 이는 캠코더로 불리는 사람들이 회전문 인사를 통해 고위공직에 임용돼 온 사실이 통계로 확인된 것이다.

 

물론 역대 정부에서도 코드 인사는 있었다. 전두환 정부와 노태우 정부는 티케이(TK), 김영삼 정부는 피케이(PK), 김대중 정부는 엠케이(MK·목포와 광주)가 바로 그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태평성대(성균관대)라는 말이 나왔다. 지연과 학연 등 연고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386 전성시대였다. 이념과 노선이 키워드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는 노무현 정부와 맥이 닿아 있다. 하지만 고위공직자 10명 가운데 4명을 자기 사람으로 채우는 인사 전횡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이 같은 인사는 전문성과 효율성 부재 차원을 넘어 국민통합까지 해칠 수 있다.

 

오직 내편 만을 고집한다는 점에서 보면 1820년 미국에서 출몰했던 엽관제를 연상케 한다. 엽관제는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공직을 일종의 '전리품'으로 취급, 선거운동에 기여한 사람이나 정치적 신념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엽관제는 고작 63년 만에 폐기됐다. 적합한 업무 능력이나 자질을 갖추지 못한 공직자의 아마추어리즘이 국정을 혼란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는 이 같은 엽관제에 도덕성 부재까지 겹친 '한국판 엽관제'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어 보인다.

 

고위공직자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은 법적 임명권자가 대통령이라는 것이지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모든 인사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설득과 타협을 무시한 채 야당 패싱을 밥 먹듯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퇴행이다. 협치는 안중에도 없는 독선과 오만이다.

 

최근 5개 부처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지켜 본 국민의 대다수는 짜증과 울화를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업무 능력이나 자질은 둘 째 치고 도덕성을 엿 바꿔 먹은 인사는 국민의 홧병을 돋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는 곧 민심 이반을 키워 차기 대선에서 부메랑이 될 공산이 크다. 인사의 일방 독주가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해 데스노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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